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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제38권 제3호Vol.38, No.3

editorial

소유양식과 불안정, 그리고 저출산

The “Having” Mode, Instability, and Low Fertility

에리히 프롬(Erich Seligmann Fromm, 1900~1980)은 그의 저작 『소유나 존재냐』에서 자아와 세계가 관계를 맺는 두 가지 방식으로 존재 양식과 소유 양식을 꼽았다. 전자가 세계와 자아가 하나가 되는 실존 양식이라면, 후자는 대상화된 객체를 소유하고 소비하는 방식이다. 그는 현대 사회의 불안과 소외가 소유 양식으로부터 기인한다고 진단했다. 오늘날 ‘그가 누구냐’는 대체로 ‘그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디에(특히, 강남이냐 아니냐) 살고, 어떤 차를 모느냐’에 의해 판가름된다. 그가 무엇을 소유하느냐가 그의 인격에 앞선다. 아니 압도한다. 그래서 모두들 달린다. 앞 사람의 뒤통수만 보고 계속 달린다. 자신이 왜 달려야 하는지 언제까지 얼마나 달려야 하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자본주의의 무한 욕망은 수동성(자동인형)의 욕망이며 끊임없는 소비의 욕망이다. ‘차별화’와 ‘따라잡기’의 끊임없는 숨바꼭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안하고 불편하다. 뒤쳐질까봐 불안하고, 따라잡힐까봐 불편하다.

최근 사회과학 논문들에서 유독 심리학적 용어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이는 본 학술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불안, 우울, 사회적 위축, 자아존중감, 외상후 스트레스, 공격성, 정신건강, 주관적 건강, 삶의 만족도 등이 이번 호에도 빼곡이 등장하는 심리학 용어들이다. “대학생의 사회적 위축이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공격성의 매개효과를 중심으로”에서는 대학생의 사회적 위축이 높아질수록 공격성은 높아지고 삶의 만족도는 낮아지는 것을 통계적으로 검증하고 있다. “고용불안정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고용상태 변화유형과 우울의 인과관계 추정”에서는 고용불안정이 우울수준을 증대시키며, 특히 정규직에서 비정규직 혹은 실직으로의 이동이 우울수준을 높이는 것을 통계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대학 서열화의 심화, 졸업 후 취업의 어려움, 높은 청년실업률과 비정규직 비율과 같은 수치들이 청년들의 위축과 우울을 낳는다는 이야기다. 우울과 공격성은 동전의 양면이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본인의 사회경제적 수준, 특히 명문대 입학과 취업 후 임금에 점점 더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최근 일련의 연구 결과들에서도 청년들의 우울과 박탈감의 징후를 확인할 수 있다. 청년들에게 왜 결혼을 하지 않는지, 왜 자녀를 출산하지 않는지를 묻기 이전에 우리 사회가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무엇을 향해 끝없는 사다리를 올라가고 있는지를 되물어야 한다.

지난 수 년간 막대한 자원을 저출산대책에 쏟아붓고도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는 비판과 2018년 2분기 합계출산율이 0.97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정책결정자와 전문가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사회적 위기, 그 중에서도 ‘재생산위기’를 보여주는 두 개의 지표를 꼽으라면 자살률과 저출산율을 꼽을 수 있다. 전자는 스스로를 재생산할 의지가 없음을, 후자는 자신의 유전자를 세상에 남길 의지가 없음을 ‘공표’하는 것이다. 두 지표에서 모두 한국은 OECD 회원국 중에서는 물론이고 세계에서 최상위를 기록하고 있다. 저임금근로자의 비율, 노인빈곤율, GDP 대비 가계부채 수준과 증가 속도 등의 지표들도 마찬가지다. 잡화점식 정책 꾸러미들로는 근본적인 변화의 흐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교육컨텐츠와 교육체계의 변화, 일-가족에 대한 의식과 실태변화에 조응하는 방식으로 근로조건과 노동시장 정책의 변화, 시장임금과 사회임금(복지) 간의 유연한 전환을 통한 탈상품화와 재상품화의 조절 등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체계적인 설계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공론화 작업도 필요하다. 90%가 행복하지 않는 발전은 지속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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