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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제39권 제4호Vol.39, No.4

editorial

보건·복지·사회정책분야 ‘하지 않는 연구’ 또는 ‘언던 사이언스(Undone Science)’를 넘어서

Beyond ‘Undone Science’ in Health, Welfare and Social Policy

‘하지 않는 연구’ 또는 ‘언던 사이언스(Undone Science)’

‘하지 않는 연구(undone science)’란 연구비가 없고, 불완전하며 일반적으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무시되지만 사회 운동이나 시민사회 조직에서는 더 연구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연구영역을 말한다(Hess, 2016). 이 개념은 미국의 과학기술학자이자 과학운동가인 데이비드 헤스(David Hess)와 그의 동료들이, “정부, 산업, 사회운동의 제도적 매트릭스 속에서 특정 지식에 대한 체계적 비생산(the systematic nonproduction)이 이루어진다”라고 주장하며, ‘체계적으로’(또는 의도적으로) 생산되지 않은 지식들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현재환, 2015).

기본적으로 ‘하지 않는 연구’는 주류 담론과 다른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지배 집단과 불화할 가능성이 큰 연구이다. 그 시대 그 공간에서 지배적인 도그마와 신화를 만들어 내는 집단은 주로 큰 정치, 경제, 문화적 영향력을 가진 집단이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근거와 담론을 생산하는 연구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그 지원의 방식은 해당 연구에 대한 연구비 지원, 높은 평가, 연구자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보상 등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렇게 생산된 정보와 지식은 공적인 교육·훈련 체계를 통해 재생산되고 다양한 정책의 근거 자료로 활용된다.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진 집단이란 구체적으로 정부, 주류 학계, 종교계, 문화계 집단과 기업이다. 그 범위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확대될 수 있다. 실제로 전 세계 연구의 단지 10%만이 전 지구적 건강문제의 90%에 해당하는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Davey, 2004). 이 10/90 격차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 않는 연구’의 문제점

‘하지 않는 연구’ 문제는 일차적으로는 자연과학, 공학, 의학 등 실험과학 영역에서 제기된 것이지만, 정치, 사회, 경제적인 요인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사회과학 영역에서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 않는 연구’가 초래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비뚤어진 선택 편견(selection bias)’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비뚤림은 연구자, 연구 주제뿐만 아니라 기반 이론의 선택, 연구방법론에도 영향을 미친다. 비판적 이론의 선택은 논문의 ‘게재불가’ 이유로 작용하기도 하고, 영세 소규모 연구집단이나 시민단체들은 고가의 첨단 장비를 이용한 분석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것 또한 선택 편견을 강화시킨다. 궁극적으로 이 선택 편견은 특정 집단에 대한 이익 문제를 넘어 보다 객관적인 참 값에 접근하지 못하는 ‘체계적인 에러(systematic error)’를 야기한다.

그 밖에도 ‘하지 않는 연구’ 문제가 초래한 문제의 예들은 수 없이 많다. 일례로 우리는 소수자·취약계층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어 그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고, 이들을 위한 효과적인 개입 근거(evidences)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는 수 많은 개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효과적인 사업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개선을 위한 개입 시도 자체가 없었고 설령 있었다하더라도 해당 사업의 효과를 확인 하는 연구가 수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러한 연구의 빈약은 “효과적인 소수자· 취약계층 사업이 없다”는 이유가 되어 이들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의 논문 분석

우리 『보건사회연구』는 어떨까? 1개년도 분석만을 가지고 해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참여자, 참여기관, 재원 등에 대한 다층적이고 다부문적인 평가가 필요하지만, 연구주제, 자료, 분석방법을 중심으로 간략히 검토해 보면 주요 양상은 다음과 같다.

우선 전체 게재 논문 중 보건분야가 50.7%를 넘었고, 복지(17.8%), 사회(13.7%), 보건복지(9.6%), 노동(8.2%) 순이었다. 연구대상은 일반 성인이 대다수(54.8%)였으나 상대적으로 노인의 비중(26.0%)이 높았다. 핵심주제로는 건강행태, 정신건강, 주거환경이 각각 13.7%로 제일 많았고, 돌봄, 노동조직문화(9.6%), 헬스커뮤니케이션, 성폭력·비행·학대 관련 주제가 그 다음 순(5.5%)이었다. 분석자료는 46.6%가 정부생산 대규모 자료를 이용하고 있었고, 74%가 계량연구였다. 이주민, 장애인 등 취약집단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도 일정 비율이상을 차지하고 있었고, 최근 관심사를 반영하듯 돌봄 관련 논문이 7편이나 있었으며 헬스 리터러시 등 헬스 커뮤니케이션(4편)과 대중매체 분석(2편)도 실렸다. 방법론적으로는 체계적 문헌분석(2편)과 메타분석 논문(1편)도 게재되었다(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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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지난 1년간 『보건사회연구』 게재 논문 분석(2018년 제38권 제4호-2019년 제39권 제3호)

합계 보건 복지 보건복지 사회* 노동
소계 (%) 73 (100.0) 37 (50.7) 13(17.8) 7 (9.6) 10 (13.7) 6 (8.2)
대상 연령 일반성인 40 (54.8) 22 (59.5) 5 (38.5) 4 (57.1) 4 (40.0) 5 (83.3)
노인 19 (26.0) 8 (21.6) 7 (53.8) 3 (42.9) 1 (10.0) 1 (16.7)
아동·청소년 13 (17.8) 7 (18.9) 1 (7.7) 0 5 (50.0) 0
핵심 주제 건강행태 10 (13.7) 10 (27.0) 0 0 0 0
정신건강 10 (13.7) 7(18.9) 2 (15.4) 0 1 (10.0) 0
거주환경형태 10 (13.7) 4 (10.8) 5 (38.5) 0 1 (10.0) 0
돌봄 7 (9.6) 1 (2.7) 1 (7.7) 4 (57.1) 0 1 (16.7)
노동조직문화 7 (9.6) 2 (5.4) 0 0 0 5 (83.3)
의료이용 4 (5.5) 4 (10.8) 0 0 0 0
소득보장 4 (5.5) 0 3 (23.1) 0 1 (10.0) 0
헬스커뮤니케이션 4 (5.5) 4 (10.8) 0 0 0 0
성폭력·비행·학대 4 (5.5) 2 (5.4) 0 0 2 (20.0) 0
커뮤니티 케어 3 (4.1) 1 (2.7) 0 2 (28.6) 0 0
결혼·출산 2 (2.7) 0 0 0 2 (20.0) 0
기타 8 (11.0) 2 (5.4) 2 (15.4) 1 (14.3) 3 (30.0) 0
분석 자료 정부 생산 자료 34 (46.6) 20( 54.1) 5 (38.5) 0 5 (50.0) 4 (66.7)
질적, 사례 11 (15.1) 3 (8.1) 2 (57.1) 4 (57.1) 1 (10.0) 1 (16.7)
소규모 설문 6 (8.2) 0 4 (30.8) 2 (28.6) 0 0
체계적·메타분석 3 (4,1) 2 (5.3) 0 0 1 (10.0) 0
매체내용분석 2 (2.7) 2 (5.4) 0 0 0 0
비계량/2차 자료 6 (8.2) 0 4 (30.8) 2 (28.6) 0 0
분석 방법 계량 연구 54 (74.0) 33 (89.2) 8 (61.5) 1 (14.3) 7 (70.0) 5 (83.3)
질적 연구 11 (15.1) 3 (8.1) 2 (15.4) 3 (42.9) 2 (20.0) 1 (16.7)
비계량정책연구 8 (11.0) 1 (2.7) 3 (23.1) 3 (42.9) 1 (10.0) 0

* ‘사회분야’는 보건, 복지, 노동 제외 사회분야

반면, 사회정책과 연구의 근간이 되는 이론 그 자체에 대한 비판적 연구는 없었고, 정부 생산 대규모 자료를 이용한 연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았는데, 이는 ‘해야 할 연구’나 ‘하고 싶은 연구’ 보다는 해당 데이터로 ‘분석이 가능한 주제’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했을 가능성이 큼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논문이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하거나 국내적 이슈에 국한 되고, 국제정치, 경제, 사회 이슈를 다룬 연구는 적었다. 또한, 특정 지역 주민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원전, 미세먼지 관련 정책 연구, 생활조건이 열악한 미등록 이주노동자, 만성 정신장애인, 노숙자 등과 같이 상대적으로 정책에서 소외되고 있는 대상 연구, 의·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시민적 평가 논문 등은 없었다. 방법론적으로는 개입 연구, 다방법론(multi-methods)에 입각한 연구, 시민이나 환자 참여 연구(participatory research) 등은 제한적인 시도만 있었다. 결론적으로, 우리 학술지 역시 ‘하지 않는 연구’ 문제에서 전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소결: ‘하지 않는 연구’ 또는 ‘언던 사이언스(undone science)’를 넘어서

그렇다면 ‘하지 않는 연구’ 또는 ‘언던 사이언스(undone science)’문제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2000년 전후 미국의 여성 운동가들은 중년 남성을 ‘보편적 인간’으로 상정한 현대 의학과 과학연구에서 여성 질환인 유방암이 오랫동안 경시되어왔다고 비판하면서 다양한 운동을 전개하였다(현재환, 2015). 그 중에는 2002년 여성건강주도연구(Women’s Health Initiative)도 있었는데, 이 연구를 통해 호르몬 요법이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낮춘다는 기존의 연구결과에 결정적인 반론을 제기함으로써 호르몬 치료 시도를 크게 낮출 수 있었다(Krieger, 2018).

국내에서도 시민·노동단체들이 재원을 마련하여 정부나 기업이 진행하지 않는 연구를 진행하기도 하고, 시민들의 돈을 모아 기존 출판계나 시장에서 선호하지 않은 책을 출간하는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성소수자와 그 옹호자들이 클라우드 펀딩을 통한 ‘트랜스젠더 건강연구’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하지 않는 연구(undone science)’의 병폐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시민 사회와 헌신적인 시민학자들의 결합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연구의 주제뿐만 아니라 이론 면에서도 보다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비판 이론(critical theory)과 이에 입각한 연구들의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새로운 이론의 탄생은 다른 사고와 평가를 가능하게 하므로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 좋은 정책은 좋은 이론을 필요로 한다(Levins & Lopez, 1999). 방법론 면에서도 생애주기적 접근(life-course approach), 다수준적(multi-level), 다방법론적(multi-methods/triangulation) 분석, 참여 연구(participatory research) 등의 시도 필요성이 공감대를 얻어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러한 활동만으로는 막대한 예산과 인력 그리고 공권력의 지원 하에 진행되는 연구들을 넘어서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하지 않는 연구’를 만들어내는 구조를 허무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작업에서 학문과 연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모든 연구자들이 다음의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학문은 기본적으로 위험하다. 조금 더 극단적으로 이야기 하면 “위험하지 않은 학문은 학문이 아니다.” 왜냐하면 학문의 기본정신은 ‘비판’이며, 도그마를 깨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학자는 ‘신화 파괴자(myth-buster)’다.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의 다음과 같은 말은 철학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적 작업에 해당한다. 그런 전투를 수행해야 하는 연구자들과 우리 『보건사회연구』는 늘 함께 할 것이다.

“철학은 언어를 무기로 인류의 지성에 걸린 주문(呪文)과 싸우는 전투다(Wittgenstein, 1953).”

References

1 

Davey S.. (2004). The 10/90 report on health research 2003-2004: Global Forum for Health Research..

2 

Hess D. J.. (2016). Undone science: Social movements, mobilized publics, and industrial transitions. MIT Press.

3 

KriegerN.. (2018). 역학이론과 맥락(신영전, 김유미, 이화영, 표준희, 신상수, 이호준, 공역). 한울.

4 

Levins R., Lopez C.. (1999). Toward an ecosocial view of health. International Journal of Health Services, 29(2), 261-293.

5 

Wittgenstein L.. (1953). Philosophical Investigations(AnscombeG. E. M., 역). Basil Blackwell.

6 

현재환. (2015). 언던 사이언스: 무엇이 왜 과학의 무대에서 배제되는가. 서울: 뜨인돌. ((원서출판 2011))



Health and
Social Welfare 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