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행본
자본을 넘어, 노동을 넘어: 자본의 내면화에서 벗어나기
- 서명/저자사항
- 자본을 넘어, 노동을 넘어: 자본의 내면화에서 벗어나기/ 강수돌, 홀거 하이데 저
- 개인저자
- Heide, Holger 지음 | 강수돌 지음
- 발행사항
- 서울 : 이후, 2009
- 형태사항
- 445 p. : 삽도 ; 23 cm
- ISBN
- 9788961570237
- 주기사항
- Beyond capital, beyond work 독일과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이 자본주의에 대해 나눈 소통과 학습 부록: 강수돌·하이데 이메일 인터뷰(연대한 올바른 삶의 목표이자 그 과정) 참고문헌(p.412-425) 수록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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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 | EM042486 | 대출가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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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번호
- EM042486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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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청구기호(출력)
- 자료실
책 소개
노동과 노동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말하다
강수돌과 하이데가 처음 만난 것은 20년 전 독일의 브레멘 대학에서였다. 강수돌은 스승 하이데와 더불어 노사관계에 대해 공부하면서 수평적 유대 관계 속에서 부단한 학문적 교류를 나누는 호사를 누렸다.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두 사람이 20년 동안 나눈 학술적 대화의 정수를 모아 엮은 『자본을 넘어, 노동을 넘어』에서는 독일과 한국의 노동 사회를 넘나드는 보편성, 경제학과 정신분석학의 만남을 통해 일군 참신한 특이성, 한국 사회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은 먼 나라 석학을 통한 소통과 연대의 즐거움을 함께 만날 수 있다. 많은 진보적 학자들이 현대 노동 사회를 분석하고 그 해결책 또한 함께 내놓았지만 강수돌과 하이데는 사람들의 ‘주체성’에 무게중심을 두고 사회를 분석함으로써 독자들이 노동 중독, 공격자와의 동일시, 트라우마 등의 화두를 자기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는 것이 특별하다.
이 책은, 하이데 교수가 먼저 각 부의 앞부분에서 노동의 세계화(1부)와 노동의 주체성(2부), 노동 사회로부터의 탈출구(3부)에 대한 이론적 서술을 열고 나면 바로 뒤를 이어 제자 강수돌이 한국 사회의 구체적 상황에 이 이론을 녹여 내 보여 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2009년, 경제 위기야 고맙다
맑스는 말했다. “새로운 혁명은 오로지 새로운 위기가 와야만 비로소 가눙해진다”고. 강수돌과 하이데는 말한다. “맑스의 위기 이론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그것이 부단히 반복되는 노동과 자본의 신화화 논리를 깨뜨릴 수 있게 돕는다는 데 있다”고.
저자들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결국 자본주의는 잘 돌아가게 될 거라는 믿음으로 철저히 무장된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방식의 삶을 고민하게 만든다. 그래도 자본주의가 사람들의 배를 부르게 하지 않았느냐고, 자본주의가 우리 삶의 질을 개선시킨 것은 사실이 아니냐고, 그러니까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또한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고정관념에 딴죽을 거는 것이다. 두 사람은 지금의 ‘경제 위기’는 과연 우리가 삶의 주인으로 새롭게 설 것인지, 아니면 돈이나 일의 노예로 계속 머물 것인지, 근원적 질문을 던지게 하는 고마운 시간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이나 노동이 만드는 두려움 저 너머에 삶의 희망이,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
경제학과 정신분석학의 만남
강수돌과 하이데는 정치?경제학적 비판만이 아니라 정신분석학적 차원까지 끌어들여 ‘노동 사회’를 벗어나야 하는 필연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자본의 내면화’를 이야기하면서 트라우마라는 정신분석학적 개념을 자본주의 비판이라는 문제의식에 결합시켰다. 그러면서 약자인 노동자들이 강자인 ‘자본’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면서 적군과 아군을 바로 보지 못하고, 소통하고 연대해야 할 아군을 사실상 적군으로 몰아붙이고 있다고 설명한다. 정치?군사적 힘의 우위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범지구적 차원에서 사람과 자연의 공동체에 남긴 치명적 상처, 어릴 때부터 전반적 삶의 과정에서 겪은 물리적 폭력이나 가난, (특히 한국에서) 전쟁과 식민지 폭력을 거치면서 갖게 된 상흔 모두가 ‘강자와의 동일시’라는 결과를 낳았고, 그것이 ‘노동 사회’의 악순환을 불렀다는 것이다.
또한 노동자 스스로 자본이란 노동이 끊임없이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어야 하는 ‘노동의 다른 얼굴’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노동 사회’ 범주를 뛰어넘는 사고를 못 하는 것이라 분석한다. 노동 사회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자본을 외적인 것, 즉 돈더미나 배부른 사장, 금융기관 같은 것들로 잘못 인식하는 것부터 깨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자도 가해자다?
강수돌과 하이데는 ‘공격자와의 동일시’ 과정이 노동자들에게도 적용되어, 노동자 역시 외부로 책임을 돌리고 피해자 역할에 만족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조심스레 하고 있다. 노동자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두 사람의 이런 주장은 노동자들 사이에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즉자적인 반발을 불러 오기도 했다.
그 지점에서 두 저자는 자신들이 결코 노동계급과 자본가계급의 적대 관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힘주어 말한다. 자본이나 국가의 구조적 책임을 면제시키자는 말 역시 아니다. 모순적 구조가 당연히 일차적 문제지만 그 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우리 자신의 자세나 행위까지 함께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속으로는 분명히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먹고살자니 별 수 있나” 하는 태도야말로 일하는 사람들을 희생자와 가해자의 두 얼굴로 살게 하는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강수돌과 하이데는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자신도 어떤 식으로든 그런 체제 유지에 도움을 주고 있으며 노동 사회 패러다임에 단단히 묶여 있음을 보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저자들은 이미 <노동 사회에서 벗어나기>나 <일중독 벗어나기>를 통해 노동자계급 스스로가 자본을 내면화한 결과 빚어진 문제를 짚어 낸 바 있다. 그러나 이런 논의들이 한국 사회에서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것, 거기에서 보이는 사회적 무관심과 냉소주의야말로 일중독, 노동 중독 사회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대안이 저항이요, 저항이 대안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대안은 무엇인가? 사람과 사람,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삶은 어떤 모습인가? 저자들의 대답은 이렇다.
첫째로는 직업 평준화, 둘째로는 자립 자치적이며 생명 순환적 구조인 1차 산업 중심의 새로운 산업 배치, 셋째로는 과감한 노동시간 단축이다. 물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모든 풀뿌리들이 소통하고 연대하여 새로운 세상을 함께 열어야 하며, 두려움 없이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비인간적 구조 조정에 저항하며, 평화운동에 나서야 한다는 것 또한 필수다.
무엇이 참된 행복이고 삶인지, 노동자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끝없이 되물어야 자본을 넘고 노동을 넘을 수 있다. 추상적 구호나 사명이 아니라 참된 필요에서 출발해야 그 운동이 힘을 가질 수 있다. 소통과 공감, 호혜와 연대를 바탕으로 하는 협동 조직을 만드는 일에 애써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유럽과 한국의 노동 사회를 함께 읽다
하이데 교수가 살았고, 강수돌 교수가 공부했던 독일과 한국 사회를 비교하는 일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 있다. OECD 가입국 가운데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한국과 최단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독일 노동 사회를 비교하는 것은 한국 노동자들이 독일 노동자들보다 연간 4개월에서 5개월 정도 더 많이 일한다는 단순한 수학적 비교를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 강자를 대하는 자세, 인생의 가치관까지를 함께 이야기해 준다. 하이데 교수와 강수돌이 각자, 그리고 교차해 바라본 독일과 한국의 노동 사회 이야기는 한국 노동자들이 무엇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 준다.
부록으로 실어 놓은 하이데 교수와 강수돌 교수의 이메일 인터뷰는 책을 읽고 난 뒤에도 채 풀리지 않은 자본의 세계화, 노동의 세계화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자리가 되어 줄 것이다.
강수돌과 하이데가 처음 만난 것은 20년 전 독일의 브레멘 대학에서였다. 강수돌은 스승 하이데와 더불어 노사관계에 대해 공부하면서 수평적 유대 관계 속에서 부단한 학문적 교류를 나누는 호사를 누렸다.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두 사람이 20년 동안 나눈 학술적 대화의 정수를 모아 엮은 『자본을 넘어, 노동을 넘어』에서는 독일과 한국의 노동 사회를 넘나드는 보편성, 경제학과 정신분석학의 만남을 통해 일군 참신한 특이성, 한국 사회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은 먼 나라 석학을 통한 소통과 연대의 즐거움을 함께 만날 수 있다. 많은 진보적 학자들이 현대 노동 사회를 분석하고 그 해결책 또한 함께 내놓았지만 강수돌과 하이데는 사람들의 ‘주체성’에 무게중심을 두고 사회를 분석함으로써 독자들이 노동 중독, 공격자와의 동일시, 트라우마 등의 화두를 자기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는 것이 특별하다.
이 책은, 하이데 교수가 먼저 각 부의 앞부분에서 노동의 세계화(1부)와 노동의 주체성(2부), 노동 사회로부터의 탈출구(3부)에 대한 이론적 서술을 열고 나면 바로 뒤를 이어 제자 강수돌이 한국 사회의 구체적 상황에 이 이론을 녹여 내 보여 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2009년, 경제 위기야 고맙다
맑스는 말했다. “새로운 혁명은 오로지 새로운 위기가 와야만 비로소 가눙해진다”고. 강수돌과 하이데는 말한다. “맑스의 위기 이론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그것이 부단히 반복되는 노동과 자본의 신화화 논리를 깨뜨릴 수 있게 돕는다는 데 있다”고.
저자들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결국 자본주의는 잘 돌아가게 될 거라는 믿음으로 철저히 무장된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방식의 삶을 고민하게 만든다. 그래도 자본주의가 사람들의 배를 부르게 하지 않았느냐고, 자본주의가 우리 삶의 질을 개선시킨 것은 사실이 아니냐고, 그러니까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또한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고정관념에 딴죽을 거는 것이다. 두 사람은 지금의 ‘경제 위기’는 과연 우리가 삶의 주인으로 새롭게 설 것인지, 아니면 돈이나 일의 노예로 계속 머물 것인지, 근원적 질문을 던지게 하는 고마운 시간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이나 노동이 만드는 두려움 저 너머에 삶의 희망이,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
경제학과 정신분석학의 만남
강수돌과 하이데는 정치?경제학적 비판만이 아니라 정신분석학적 차원까지 끌어들여 ‘노동 사회’를 벗어나야 하는 필연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자본의 내면화’를 이야기하면서 트라우마라는 정신분석학적 개념을 자본주의 비판이라는 문제의식에 결합시켰다. 그러면서 약자인 노동자들이 강자인 ‘자본’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면서 적군과 아군을 바로 보지 못하고, 소통하고 연대해야 할 아군을 사실상 적군으로 몰아붙이고 있다고 설명한다. 정치?군사적 힘의 우위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범지구적 차원에서 사람과 자연의 공동체에 남긴 치명적 상처, 어릴 때부터 전반적 삶의 과정에서 겪은 물리적 폭력이나 가난, (특히 한국에서) 전쟁과 식민지 폭력을 거치면서 갖게 된 상흔 모두가 ‘강자와의 동일시’라는 결과를 낳았고, 그것이 ‘노동 사회’의 악순환을 불렀다는 것이다.
또한 노동자 스스로 자본이란 노동이 끊임없이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어야 하는 ‘노동의 다른 얼굴’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노동 사회’ 범주를 뛰어넘는 사고를 못 하는 것이라 분석한다. 노동 사회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자본을 외적인 것, 즉 돈더미나 배부른 사장, 금융기관 같은 것들로 잘못 인식하는 것부터 깨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자도 가해자다?
강수돌과 하이데는 ‘공격자와의 동일시’ 과정이 노동자들에게도 적용되어, 노동자 역시 외부로 책임을 돌리고 피해자 역할에 만족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조심스레 하고 있다. 노동자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두 사람의 이런 주장은 노동자들 사이에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즉자적인 반발을 불러 오기도 했다.
그 지점에서 두 저자는 자신들이 결코 노동계급과 자본가계급의 적대 관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힘주어 말한다. 자본이나 국가의 구조적 책임을 면제시키자는 말 역시 아니다. 모순적 구조가 당연히 일차적 문제지만 그 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우리 자신의 자세나 행위까지 함께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속으로는 분명히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먹고살자니 별 수 있나” 하는 태도야말로 일하는 사람들을 희생자와 가해자의 두 얼굴로 살게 하는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강수돌과 하이데는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자신도 어떤 식으로든 그런 체제 유지에 도움을 주고 있으며 노동 사회 패러다임에 단단히 묶여 있음을 보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저자들은 이미 <노동 사회에서 벗어나기>나 <일중독 벗어나기>를 통해 노동자계급 스스로가 자본을 내면화한 결과 빚어진 문제를 짚어 낸 바 있다. 그러나 이런 논의들이 한국 사회에서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것, 거기에서 보이는 사회적 무관심과 냉소주의야말로 일중독, 노동 중독 사회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대안이 저항이요, 저항이 대안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대안은 무엇인가? 사람과 사람,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삶은 어떤 모습인가? 저자들의 대답은 이렇다.
첫째로는 직업 평준화, 둘째로는 자립 자치적이며 생명 순환적 구조인 1차 산업 중심의 새로운 산업 배치, 셋째로는 과감한 노동시간 단축이다. 물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모든 풀뿌리들이 소통하고 연대하여 새로운 세상을 함께 열어야 하며, 두려움 없이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비인간적 구조 조정에 저항하며, 평화운동에 나서야 한다는 것 또한 필수다.
무엇이 참된 행복이고 삶인지, 노동자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끝없이 되물어야 자본을 넘고 노동을 넘을 수 있다. 추상적 구호나 사명이 아니라 참된 필요에서 출발해야 그 운동이 힘을 가질 수 있다. 소통과 공감, 호혜와 연대를 바탕으로 하는 협동 조직을 만드는 일에 애써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유럽과 한국의 노동 사회를 함께 읽다
하이데 교수가 살았고, 강수돌 교수가 공부했던 독일과 한국 사회를 비교하는 일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 있다. OECD 가입국 가운데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한국과 최단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독일 노동 사회를 비교하는 것은 한국 노동자들이 독일 노동자들보다 연간 4개월에서 5개월 정도 더 많이 일한다는 단순한 수학적 비교를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 강자를 대하는 자세, 인생의 가치관까지를 함께 이야기해 준다. 하이데 교수와 강수돌이 각자, 그리고 교차해 바라본 독일과 한국의 노동 사회 이야기는 한국 노동자들이 무엇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 준다.
부록으로 실어 놓은 하이데 교수와 강수돌 교수의 이메일 인터뷰는 책을 읽고 난 뒤에도 채 풀리지 않은 자본의 세계화, 노동의 세계화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자리가 되어 줄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 위기 속의 자본주의, 그리고 인간 노동
제1부 자본의 세계화, 노동의 세계화
제1장 노동의 세계화, 무엇이 문제인가/하이데
제2장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삶의 질/강수돌
제3장 한국 사회와 이주 노동/강수돌
제2부 자본의 내면화, 뒤틀린 주체성
제4장 두려움과 자본.신자유주의 시대, 저항이 어려운 까닭/하이데
제5장 노동 중독과 노동조합/하이데
제6장 맑스의 위기론과 노동 사회 벗어나기/하이데
제7장 한국 노동운동, 얼마나 건강한가?/강수돌
제8장 생활 과정과 노동과정.한독 비교 속의 뒤틀린 주체성/강수돌
제9장 세계화와 상흔화.한국의 경험/강수돌
제3부 희망의 길.노동 사회의 지양
제10장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의 인권과 혁명/하이데
제11장 저항으로서의 자조 운동.역사적 경험의 반추/하이데
제12장 정치적 평화 운동의 한계/하이데
제13장 맑스의 공동체론과 현대 공동체 운동/강수돌
에필로그 - 노동에 관한 ‘불편한 진실’과 삶의 희망/강수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