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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서양편 799

페미니즘과 자유의 심연

서명/저자사항
페미니즘과 자유의 심연 / 린다 M G 제를리 저 ; 조주현 역
발행사항
서울 : 박영사, 2022
형태사항
366 p. ; 23 cm
ISBN
9791130310114 9791130310077 (세트)
주기사항
영어 원작을 한국어로 번역 참고문헌(p. 341-354)과 색인(p. 355-366)수록
원서명
Feminism and the abyss of freedom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지금 이용 불가 (1)
자료실EM052775대출중2025.03.14
지금 이용 불가 (1)
  • 등록번호
    EM052775
    상태/반납예정일
    대출중
    2025.03.14
    위치/청구기호(출력)
    자료실
책 소개
우리는 무언가를 시작한다. 우리는 우리의 줄을 엮어 관계망을 형성한다. 그러나 그 관계망으로부터 무엇이 나올지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한다. 우리 모두는 말하자면 다음과 같이 배웠다: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인간의 모든 행위에 적용된다. 너무도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그러한데, 왜냐하면 우리는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모험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한나 아렌트 한국어판 서문 Feminism and the Abyss of Freedom의 한국어로의 번역은 특히 현재 한국 사회의 특정한 맥락과 깊이 공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21세기 페미니즘에 대한 이 책의 중심 주제들의 지속적인 관련성을 성찰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민주사회를 형성해온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상황에서, 앞선 페미니즘의 투쟁으로 어렵게 쟁취한 권리와 자격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 정체성의 특수성을 고집하는 것이 이제는 더 어려워지면서 동시에 더 시급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다양한 경제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각 국가가 시도했던 엄격한 긴축 정책은 젠더 평등을 주류화하려는 제2물결 페미니즘의 시도를 차단했습니다. 실제로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리게 하면서 공적 의제를 형성하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일부 국가에서는 경제 정책의 신자유주의화로 보수정당의 놀라운 상승과 함께 “가족 가치”를 장려하는 정책들이 동반됐는데, 이 정책들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삶에서의 성평등 추구를 종식시킬 뿐만 아니라, 앞선 페미니스트 세대가 쟁취한 결과물들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이었습니다. 전통적인 성 역할로의 회귀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점점 더 혁명은 정체된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어떻게 현실적이면서도 열망을 품은 방식으로 페미니즘을 실천은 고사하고 상상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른 모든 정치적 행위자들과 마찬가지로 페미니스트들 역시 자신들이 선택한 세계에서 활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운동에서 동기부여가 되었던 젠더 정의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현실 세계의 제약을 인정하는 것은 끊임없는 투쟁이 됩니다. 정치적 분석에 있어 중요 범주인 성차와, 집합적 동원에 필요한 정체성의 기반을 포기하라는 요구에 직면하면서,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그러한 요구의 배경을 이루는 이른바 포스트‒젠더 후기자유주의가 엉터리라고 비난하며 당연히 반대입장을 표명했습니다. 그들에게 “여성” 정체성 개념은 20세기 후반에 바로 그 개념 아래 평등의 척도가 달성된 것으로서, 그들이 남성 중심적이며 여성의 곤경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비난하고 있는 바로 그 신자유주의의 젠더‒중립적 언어로는 결코 대체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우려에 매우 공감합니다; 그리고 그 우려는 제가 21세기 초입에 이 책을 썼을 때의 제 마음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저의 걱정은 페미니스트들이, “여성 범주”라는 다른 상황에서는 가치 있을 수 있는 비판의 무게 아래서는 이제 더 이상 진정한 정치적 주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여성들”의 이름으로 말할 수 없다면 페미니즘은 누구의 이름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일부 페미니스트들에게 있어 인종, 계급, 민족성, 그리고 성적 지향성을 젠더와 동등하게 피억압적인 사회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은 여성을 페미니즘의 통일된 주체로 설정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며, 효율적인 정치운동의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걱정의 긴박감을 인식했지만 그 결론에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이 왜 자신들의 정치적 행동이 문제 삼는 “여성”의 규범적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지 않으면서도 여성들의 이름으로 말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 페미니즘이 어떻게 여성들의 주장을 진전시키면서 동시에 여성들의 우려를 다른 소외된 집단들(민족, 인종, 그리고 성 소수자들, 저임금 노동자들과 이주민들)의 정당한 주장과 공명하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 그리고 페미니즘을 다른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회운동 및 정치운동과 (녹색 행동주의, 진보적 좌파주의, 인권 국제주의) 연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정체성이 아니라 자유의 측면에서 우리의 투쟁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유는 신자유주의의 유행어는 아니라 하더라도, 고삐 풀린 소비주의와 이제는 느슨해진 복지국가에 대한 자유방임 자본주의의 승리를 상징하는 유행어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의 이상은 분명히 반정치적이고 반페미니즘적인 것입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서구 전통에서 물려받은 의지의 현상으로서의, 주체의 특성으로서의, 그리고 주권이라는 이름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자유 개념에 자신들이 지속적으로 얽혀있다는 것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현대의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서 더욱 집요해진 자유는 고도로 개인주의적인 용어로 정의되고,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로 수용되며, 그리고 정치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경험됩니다. 그러나 제가 이 책에서 주장하듯이, 페미니즘에 있어 자유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구축의 창의적이고 집합적인 실천으로서, 근본적으로 시작을 여는 특징을 보이며, 새로운 공유 대상 및 공동의 관계를 설정합니다. 자유의 세계‒구축적 실천으로서의 페미니즘 정치는 정체성을 출발점으로도 종착점으로도 택하지 않습니다. 자유‒중심적 페미니즘 정치는 언제나 환상에 불과하고 멸종위기에 처한 주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이 불확실하고 위험한 시대에 우리가 전진하면서 페미니즘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하는 공동행동과 공동 관심사의 새로운 대상을 창출할 가능성을 추구합니다. 신자유주의의 압력과 복지국가의 후퇴로 페미니스트들은 새로운 공동 존재의 형태와 새로운 시작의 자발성을 열 수 있는 자신들의 능력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남아 있는 과거의 이득을 고수하면서 다른 사회 운동들—특히 그러한 이득을 손실로 보는 사회 운동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을 피하려는 것은 분명 유혹적입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의 주장을 결코 다른 집단들의 주장에 종속시켜서는 안 되며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대변될 것을 계속해서 요구해야 하지만, 그 요구는 다양한 투쟁들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저는 저의 최근 연구에서 페미니즘의 관심사와 다른 진보적 운동의 관심사를 연계시켜야 하며, 공동의 정치적 열망을 형성하고 실현하는 데 있어 판단이 중심 역할을 해야 함을 주장했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정치적 현실에 대해 페미니즘이 방심하지 않고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는 것은 공유된 정체성이 아니고, 비판적이면서 성찰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공유된 능력입니다. 페미니스트들이 제가 현실적이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가져오기 위해 현재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자유는 행동의 우연성에 열려 있는 한, 현실적인 관점과 일치합니다. 일반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도구적 정치개념들이 가정하는 방식으로는 우리는 우리 행동의 결과를 예측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한나 아렌트가 우리에게 권유했듯이 연합을 구축하고 공동세계를 만든다는 생각은, 모든 형태의 현대정치를 지배해온 것처럼 페미니즘을 지배해온 수단‒목적적 정치 개념에 대한 환상, 즉 환상적 주권이라는 모래 위에 세워진 환상을 포기할 때, 상당히 다르게 보이게 됩니다. 아렌트와 함께 저는 자유‒중심적 페미니즘을 주장합니다. 자유‒중심적 페미니즘은 실현된 목적의 보장이 아니라, 말과 행위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 사이에 정치적 공간을 창조하는 방식에 공유된 관심과 공유된 기획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식입니다. 그 정치적 공간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데, 그들이 우리와는 다른 입장을 갖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그들은 우리의 세속적 현실감각을 확장시켜줄 수 있습니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형상과 형태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은 아렌트가 정치적 판단의 조건이라고 주장했던 확장된 관점을 요구합니다. 정치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비판적이고 성찰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으로, 아렌트가 현대 민주주의 시민권의 핵심적 특징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세계‒구축의 다양한 실천에 참여하는 참여적인 자유‒중심적 페미니즘은 그 행동의 기반으로 공유된 정체성에 의존할 수 없습니다. 자유‒중심적 페미니즘은 완전히 비교할 수 없는 관점들은 아닐지라도 종종 상충되는 관점들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합니다. 페미니즘을 포함한 현대정치는 아렌트가 전통의 단절이라고 불렀던 것에 의해 새롭게 창조된 공간에서 작동합니다: 거기에는 그야말로 보편적인 판단기준도 없고, 우리의 판단실천을 안내할 수 있는 선에 대한 초월적이거나 권위적인 개념도 없습니다. 공유된 판단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 페미니스트들은 항상 불확실한 정치적 지형을 탐색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비판적 판단을 형성하기 위한 기반으로 우리가 각기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능력에만 의존하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공유된 정체성에—우리가 할 수 있다 하더라도—의존할 수 없게 됩니다. 전통의 단절은 더‒이상도 아니고 아직은‒아닌 것도 아닌, 현시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공간과 도전을 열어놓습니다. 자유의 열린 구조가 번창할 수 있는 곳은 바로 거기, 그 불안정하고 불안한 공간에서입니다. 서문 필자는 한때 필자를 페미니즘으로 인도했던 그 길을 다시 찾기 위한 시도로 오랫동안 이 책을 구상해왔다. 필자를 페미니즘으로 인도했던 것은 정치적 자유를 향한 급진적 요구와 사회문제에 참여할 수 있는 여성들의 권리였다. 페미니즘은 광범위한 실천들, 예컨대 미학적,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실천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필자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공론장의 남성중심주의에 대한 페미니즘의 도전과 대안적 자유공간들의 조성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제2물결과 제3물결 페미니즘이 발전해가는 방식에 대해, 특히 제2물결과 제3물결이 각기 정체성과 주체성 문제를 중심에 두고 논의를 발전시켜나가는 방식에 대해, 한편으로는 매료되면서도 다른 한편 갈수록 회의적인 감정을 갖게 되었다. 필자에게 여성의 정체성과 주체성 문제는 중요한 문제로 보였고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문제로 보이지만, 필자는 정체성과 주체성 논의가 제기되는 방식이 걱정스러웠다. 필자는 제2물결과 제3물결이 제시한 정체성과 주체성의 틀에서, 그동안 필자에게 영감을 주었던 정치적 자유를 향한 페미니즘의 요구를 찾을 수 없었다. 페미니즘은 정치적 자유를 끈질기게 요구하는 대신 규범적 남성성과 여성성의 문화적 제약을 극복하는 문제에 몰두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한 투쟁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면, 필자는 필자가 이해하고 있는 바로서의 자유에 대한 요구가 부재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러한 투쟁이 가능하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유를 주체화의 예속에서 해방되는 것으로 정의하는 이 같은 자유의 재구성 방식에 우려를 표하는 한편으로, 필자는 정체성 정치와 관련된 논쟁이 시작되면서 1990년대를 장악하기 시작한 초기 제2물결 페미니즘에 대한 향수 어린 그리움에 대해서도 저항했다. 즉 필자는 단일한 여성 범주를 페미니즘의 주체로 설정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제3물결 비평가들의 비판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그러한 문제 제기가 가져올 정치적 결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안해하는 한편으로, 그에 못지않게 여성 범주의 일관성에 대한 제3물결의 비판을 정치적으로 파괴적인 회의론으로 치부해버린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새로운 교조적 경향에 대해서도 걱정하게 된 것이다. 어떤 면에서, 페미니스트들은 누군가의 신중한 선택의 결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쨌든 이미 성취해서 기정사실이 된 것에 대해 서로 다투면서 각자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단일한 여성 범주가 붕괴된 것은 “후기구조주의” 페미니즘 이론가들의 잘못 때문이고, 그보다 덜하긴 하지만 “유색인종 여성” 개념 역시 단일한 여성 범주를 붕괴시키는데 일조했다는 견해는 메시지 전달자를 죽임으로써 메시지를 죽이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필자를 놀라게 했다. 그것은 또한 페미니즘 정치 그 자체의 걱정스러운 변위로 보였다. 우리가 더 이상 여성을 아무 생각 없이 공동의 정체성과 관심사를 가진 단일한 집단으로 상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오로지 혹은 주로,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샹탈 무페Chantal Mouffe, 혹은 조앤 스콧Joan Scott과 같은 대표적인 제3물결 사상가들의 괄목할만한 비판적 에너지 때문이 절대로 아니다. 후기 자본주의의 경제적, 사회적 발전은 (예컨대 노동운동의 붕괴, 지구화, 그리고 가구 경제homework economy) 국내외적으로 여성들 사이에 대단히 복잡한 계층화를 가져왔고, 여성문제는 이제 단지 젠더 관계로만 포착할 수는 없게 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페미니즘 스스로가 단일 집단으로서의 여성을 해체하는 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주로 수동적으로 주어진 공동의 여성 정체성이라는 착각이 전제하고 있는 자연의 이치에 따른 여성성 개념에 반박함으로써, 자유를 향한 투쟁에 여성들을 결집시키려고 분투해온 정치운동이다. 당시의 버틀러, 무페, 그리고 스콧은 의도적으로 여성 범주를 파괴하려 했다기보다는, 단일 집단으로서의 여성 범주화가 페미니즘의 미래에 가져올 역사적 손실의 정치적 결과를—대단히 비판적이고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갖지 않는 방식으로—분명히 드러내고자 했다. 여성 범주 관련 논쟁들에 나타난 파토스pathos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필자는 이 같은 파토스가 제2물결 페미니즘 대부분과 심지어 제3물결 페미니즘이 명료화하고 있는 인식론적 틀의 징후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필자에게는 허무주의적 학문의 산물이기보다는 역사와 정치의 산물인 무언가의 상실을—우리가 상실을 말할 수 있는 한에 있어서—후기구조주의자들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이상해 보였지만, 필자에게 더 이상해 보인 것은 정치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의 미래가 페미니즘 이론의 분석 범주의 지위에 달려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페미니즘 활동가들 중에 이론이 실천의 가이드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경우는—아주 느슨한 의미를 제외하고는—거의 없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필자는 “페미니즘 주체” 논쟁의 구체적인 내용에서 벗어나 그들의 기본전제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의 이름으로 발언하는 어떠한 주장도 그것이 조금이라도 정치적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모든 특수성을 포괄하는 규칙처럼 기능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이 시점에서 페미니즘은 정치와 자유, 그리고 규칙과 그 적용의 관계에 대해 사유했던, 페미니스트가 아닌 연구자들에게서 어떤 지침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과 의문들은 필자를 한나 아렌트의 사상으로 다시 이끌었다. 아렌트는,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지만, 전통적인 사상 범주들이 손실된 상황에서 정치 현실을 이해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았다. 그런데 이 전통적인 사상 범주들의 손실이 필자에게는 여성 범주의 위기로 표현되는 손실이자, 제2물결 페미니스트들이 제3물결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도둑맞았다고 생각하며 탄식하는 바로 그 손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렌트의 견해에 따르면, 전통과의 단절은 17세기 과학혁명에서 이미 시작되었고, 20세기의 정치적 파국으로 절정에 달했다. 아렌트는 현재의 정치적, 역사적 맥락과 더 이상 공명하지 않는 사상 범주를 복원시키려고 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렌트 역시 인정했듯이, 전통이 끝났다고 해서 전통적 개념들의 장악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개념들은 더 큰 횡포를 부릴 수 있는데, 왜냐하면 아무런 지향성이 없는 것보다는 혼란스럽다 하더라도 특정한 도덕적, 정치적 지향성을 갖는 것이 좀 더 호소력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정치이론과 페미니즘 정치사상의 범주로 작동해온 여성 개념의 상실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전통과의 단절에 대한 아렌트의 발언은 필자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이 서문을 쓰고 있는 2004년 현재, 필자는 한때 상호 대립적인 정치적 이해관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상당히 공격적인 표현을 야기했던 문제들에 대해 우리 페미니스트들이 도달한 이상한 타협에 충격을 받는다. 여기에는 더 이상 파토스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사상이라는 계승된 범주가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이론화하거나 정치적으로 행동할 것인지에 대한 어떠한 분명한 감각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성들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의 중요성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다른 한편 끈질기게 페미니즘은 하나의 단일한 주체를 요구한다는 생각으로 되돌아간다. 반대로, 우리는 격렬하게 하나의 단일한 주체를 거부하면서도 특수한 사례 너머에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말하거나 요구해야 할지 모른다. 이 책이 이 책에서 제시되는 모든 난해한 문제들을 다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가 지금 여기에 어떻게 도달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페미니즘 이론의 정치적 자유, 정치적 주장, 그리고 정치적 역할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지에 대해 명백히 밝힘으로써, 우리가 그 문제들을 깊이 생각해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르네 샤르René Char를 인용하며, 아렌트는 “우리의 유산은 아무런 유서도 없이 우리에게 남겨졌다,”라고 말한다. 페미니즘을 포함해서 후기 근대의 정치를 특징짓는 전통과의 돌이킬 수 없는 단절을, 아쉬워하기보다는, 환영하기 위한 도전으로 이 불투명한 격언을 받아들인다면 어떨까? 그 가능성의 정신으로, 필자는 숙고 끝에 얻은 필자의 생각을 여기에 제시한다. 감사의 말 이 책을 완성하기까지 많은 분들의 기여가 있었다. 먼저 벤자민 바버Benjamin Barber, 수잔 캐롤Susan Carroll, 신시아 다니엘스Cynthia Daniels, 사만다 프로스트Samantha Frost, 마르시아 이안Marcia Ian, 그리고 럿거스대학교 시절의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감사드린다. 이들은 필자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도록 이끌어주었다. 노스웨스턴대학교에 있으면서 필자는 지식인 공동체를 만났고, 이들 역시 필자의 연구를 적극 지지해주었다. 특히 사라 모노슨Sara Monoson, 미구엘 바터Miguel Vatter, 피터 펜브스Peter Fenves, 로버트 구딩‒윌리엄스Robert Gooding‒Williams는 필자에게 매우 유용한 논평을 해주었다. 필자는 또한 노스웨스턴대학교 젠더학 프로그램의 친구들과 학과장이었던 테시 리우Tessie Liu와 알렉산드라 오웬Alexandra Owen에게 특별히 감사드린다. 이들은 필자가 이 책과 관련된 주제로 교수 세미나를 진행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마찬가지로 필자는 앤 올로프Ann Orloff에게도 감사드린다. 올로프는 이 책의 초기 버전의 글들에 대해 통찰력 있는 비평을 해주었고, 필자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상기시켜주었다; 마이클 핸차드Michael Hanchard는 이 연구의 사각지대를 보았고, 그의 두터운 우정으로 필자가 견딜 수 있게 도와주었다; 리처드 플라트만Richard Flathman은 이 책의 여러 장들에 대해 논평을 해주었는데, 특히 플라트만의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 연구는 필자에게 영감을 준다; 크리스틴 프룰라Christine Froula는 이 책의 제4장에 대해 매우 사려 깊은 비평을 해주었다; 커스티 맥클루어Kirstie McClure는 밀라노여성서점조합에 대한 필자의 해석에 영감을 주었다; 그리고 피터 메이어스Peter Meyers의 수사학적 전통에 대한 창의적인 연구와 아렌트의 정치사상에 대한 깊은 이해는 필자 자신의 생각을 자극했다. 메리 디츠Mary Dietz와 에르네스토 라클라우Ernesto Laclau는 시카고대학교 출판부가 최종 완성한 필자의 원고를 읽은 후, 대단히 유용한 논평을 해주었다. 조지 슐만George Shulman에게 필자의 원고 전체를 관대함과 함께 비판적으로 읽어준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 조지 슐만은 필자에게 지적 호기심과 관대함의 모델로 남아있다. 필자는 샹탈 무페, 소니아 크럭스Sonia Kruks, 윌리엄 코널리William Connolly, 그리고 파첸 마켈Patchen Markell과의 대화에서 도움을 얻었다. 필자의 스승이자 친구인 질라 아이젠슈타인Zillah Eisenstein은 이 책의 가장 초기 단계 기획 시에 통찰과 격려를 주었다. 노스웨스턴대학교 재직 시절 필자의 대학원 세미나에 참여한 학생들에게도 감사드린다. 학생들은 무엇보다도 한나 아렌트가 왜 페미니스트들과 관련이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필자를 자극했다. 필자는 정말 운이 좋게도 럿거스대학교와 노스웨스턴대학교 모두에서 훌륭한 연구조교들을 둘 수 있었다. 크리나 아처Crina Archer, 리다 맥스웰Lida Maxwell, 엘라 마이어스Ella Myers, 로리 나란치Laurie Naranch, 그리고 토리 섕크스Torrey Shanks는 모두 이 프로젝트의 여러 단계에 참여하면서 논문을 수집하고, 인용문의 출처를 확인하며, 수북이 쌓여있는 논문더미 한가운데서도 필자가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특히 최종 원고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준 리다 맥스웰과 크리나 아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필자의 동료이자 절친인 보니 호니그Bonnie Honig는 우리 둘이 기억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판본의 원고를 읽었다. 호니그의 창의적인 에너지, 지적인 집중력, 그리고 현명한 판단은 필자에게 말할 수 없이 소중한 것이었다. 필자가 호니그에게 얼마나 많은 빚을 졌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필자는 또한 필자의 스승인 마이클 로긴Michael Rogin에게 말할 수 없이 많은 빚을 졌음을 말하고 싶다. 로긴의 지적인 활력과 도덕적 인격은 그의 때 이른 죽음을 넘어 하나의 선례로 남을 것이다. 필자는 다시 한번 필자의 가족—마리 A. 제를리, 아르망 F. 제를리, 아만다 제를리, 그리고 제프리 제를리—의 사랑과 지원에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필자의 동반자인 그레고르 그내디히Gregor Gnädig에게 그의 긍정의 정신과 함께 필자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보여준 것에 감사드리고 싶다. 필자는 그레고르에게 이 책을 바친다. 프로젝트는 럿거스대학교와 노스웨스턴대학교 모두로부터 연구 휴가라는 관대한 지원을 받았다. 또한 프린스턴고등연구소와 특히 이 프로젝트의 가장 초기 단계에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준 조앤 스콧에게 감사드린다. 이 책의 제2장은 󰡔모니크 위티그에 대하여: 이론적, 정치적 그리고 문학적 논평들󰡕 (샴페인: 일리노이대학교출판부, 2005)에 실렸다. 이 책의 제3장은 󰡔차이: 페미니스트 문화비평 저널󰡕 (여름 2004) 15(2): 54‒90에 게재됐다. 제4장의 일부는 󰡔정치이론󰡕 (4월 2005) 20(10): 158‒188에 게재됐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 iv 서문 / ix 감사의 말 / xiii 서론 왜 페미니즘(Feminism)과 자유(Freedom)는 둘 다 F로 시작하는가 / 1 1. 사회 문제로서의 자유 6 2. 주체 문제로서의 자유 19 3. 세계 문제로서의 자유 36 4. 페미니즘의 “잃어버린 보물” 50 01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 59 1. 이론─일반성에 대한 갈망? 63 2. 페미니즘 토대론 논쟁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식 읽기 70 3. 젠더 하기, 규칙‒준수 하기 88 4. 급진적 상상력과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형상들 110 5. 자유‒중심적 페미니즘 이론을 향하여 116 02 페미니스트들은 시작을 여는 사람들이다 / 123 1. 의심의 한계 135 2. “전쟁 기계”로서의 언어 144 3. 반전 151 4. 더‒이상‒아닌 그리고 아직은‒아닌 160 5. 그들Elles—환상적 보편성 163 03 페미니스트들은 약속을 하는 사람들이다 / 171 1. 사회계약 파기하기 179 2. 보상에의 욕망 185 3. 평등의 문제 192 4. 격차 발견하기 199 5. 성적 차이의 정치적 실천 210 6. 권리 재구성하기 217 04 페미니스트들은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이다 / 225 1. 판단과 “새로운 것의 문제” 230 2. 객관성의 오래된 문제 237 3. 개념에 의존하지 않고 판단 내리기 240 4. 정당성의 한 개념 246 5. 정당성의 정치적 개념 254 6. 감춰진‒세계‒드러내기에서 새로운‒세계‒열기로 259 7. “나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내가 속하지 않은 곳에서 존재하고 생각하기” 268 8. 상상력과 자유 276 9. 공통감각과 자유의 실천 284 결론 페미니즘에서 자유의 문제 재구성하기 / 295 1. 창립에 대한 페미니즘의 역설 301 2. 정치적 주장이란 무엇인가 305 3. 페미니즘은 세계‒구축적 실천이다. 315 4. 페미니즘의 “잃어버린 보물” 되찾기 319 옮긴이 해제 / 323 참고문헌 / 341 찾아보기-용어 / 355 찾아보기-인명 / 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