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배경
독일에서 임신중단(Schwangerschaftsabbruch)과 임신갈등 상담(Schwangerschaftskonfliktberatung)은 형법 전(Strafgesetzbuch)과 ‘임신갈등의 예방 및 해결에 관한 법률(Gesetz zur Vermeidung und Bewältigung von Schwangerschaftskonflikten, 이하 임신갈등법)’에 의해 규율되고 있다. 임신갈등 상담은 태아의 생명권 보호와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해결하고, 임신 중 상담에 대한 여성의 포괄적인 법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로 1995년 임신갈등법의 제정에 따라 도입되었다(Deutscher Bundestag, 1995). 형법전 제 218조에 따르면 임신중단은 원칙적으로 위법이지만, 임신갈등법에 따른 상담 후 이루어진 임신중단 등 특정한 경우는 형법전 제 218조a에 따라 예외적으로 형사처벌에서 면제될 수 있다. 최근 독일에서는 임신갈등 상담소 앞에서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임신중단 반대 시위 및 임신갈등 상담 방해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임신갈등법 개정안이 연방의회를 통과하여 임신부의 권리 보호와 상담 콘셉트가 한층 더 강화되었다(Deutscher Bundestag, 2024a). 아래에서는 독일에서의 임신중단 처벌 및 임신갈등 상담 제도의 내용을 형법전과 임신갈등법의 주요 규정 및 최근 개정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임신중단의 처벌 관련 규정
형법전 제218조는 임신중단을 시행한 사람은 최대 3년의 자유형(Freiheitsstrafe) 또는 벌금형에 처해지며, 임신부의 의사에 반한 임신중단 등 특히 중대한 경우에는 6개월에서 5년까지의 자유형에 처해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스스로 임신중단을 시행한 임신부에게는 최대 1년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이 내려진다. 이와 같이 독일에서의 임신중단은 원칙적으로 위법이고 임신부, 의사 등 임신 중단에 관여한 모든 이들이 처벌될 수 있다. 그러나 형법전 제218조a에 따라 일부의 임신중단은 형사처벌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으며, 그중 임신갈등 상담과 관련된 처벌 면제의 경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1) 먼저, 제218조a 제1항에 따라 수정 후 12주 이내에 임신부가 형법전 제219조에 규정된 임신 갈등 상담소에서 상담 증명서를 받아 3일의 숙려기간 후 의사에게 임신중단 수술을 받은 경우에는 형법전 제218조의 구성요건(Tatbestand)이 실현되지 않는다. 이는 상담 후 임신중단이 여전히 위법이기는 하나 형사처벌의 대상에서는 제외됨을 뜻한다(Deutscher Bundestag, 2017). 다음으로 형법전 제218 조a 제4항은 수정 12주 이내에 이미 형법전 제219조에 따른 임신갈등 상담이 이루어졌으나 수정 후 22주 이내에 뒤늦게 의사에 의해 임신중단이 시행된 경우, 임신부를 처벌 대상에서 제외한다. 다만 이 경우에도 임신중단은 위법이며, 임신부만 처벌을 면할 뿐 의사는 여전히 처벌된다(Bundesministerium der Justiz, 2023).
3. 임신갈등 상담 관련 규정
가. 형법전
형법전 제219조 제1항은 임신갈등 상담이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에 목적이 있고, 여성이 임신을 지속하도록 격려하며, 아이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상담과 정에서 여성은 태아가 임신의 모든 단계에서 독립적인 생명권을 가지고 있고, 이에 따라 임신중단이 특별한 상황, 즉 아이를 출산함으로 인해 여성이 감당해야 할 부담이 매우 중대하여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는 상황일 때에만 고려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형법전 제219조 제2항에 따르면 상담은 임신 갈등법에 따라 공인된 임신갈등 상담소(Schwangerschaftskonfliktberatungsstelle)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상담소는 상담이 종료된 후, 마지막 상담 날짜와 임신부의 이름을 기재한 증명서를 발급해야 한다. 임신중단을 시행하는 의사는 상담자가 될 수 없으며, 임신갈등 상담에 대한 그 외 세부 사항은 임신갈등법에 규정된다.
나. 임신갈등법
1) 임신갈등 상담의 원칙 및 내용
임신갈등법 제5조 제1항은 형법전 제219조 제1항과 마찬가지로 임신갈등 상담의 목적이 태아의 생명 보호에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상담은 결과를 정하지 않고(ergebnisoffen) 진행되어야 하며, 임신부를 격려하고 도울 뿐 가르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고 규정하여 여성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존중하고 있다. 제5조 제2항은 상담의 내용을 열거하고 있으며, 이에는 임신중단을 고려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 상황에 따라 필요 한 의료적, 사회적, 법적 정보, 모자의 법적 권리에 대한 정보, 특히 임신을 지속할 경우 모자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실질적 지원에 대한 정보, 주거지 탐색 및 보육 관련 지원책 등에 대한 내용이 포함된다.
2) 임신갈등 상담의 진행
임신부의 상담 요청이 있을 경우 임신갈등법 제6조에 따라 임신부에게는 즉각적으로 상담을 받을 권리가 인정되며(제1항), 상담 과정은 임신부가 원할 경우 상담가를 상대로 익명으로 진행될 수 있다(제2항). 또한 임신부의 동의하에 의료, 심리, 법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임신부의 지인들이 상담에 참여할 수 있으며(제3항), 임신갈등 상담은 무료로 진행된다(제4항). 제7조에 따라 임신 갈등 상담이 완료되면 상담소가 상담 증명서를 발급해야 하며, 증명서에는 상담 일자와 이름이 기재된다.
3) 임신갈등 상담소
임신갈등법 제8조에 따르면 각 연방주는 거주지 근처에 다양한 상담소를 충분히 제공해야 하고(제1문), 이러한 상담소는 국가의 승인(Staatliche Anerkennung)을 받아야 하며(제2문),2) 공공 기관뿐만 아니라 민간단체와 의사 또한 상담소로 인정받을 수 있다(제3문).3) 제10조에 따르면 상담소는 매년 상담 활동에 관한 서면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며, 이 연례 보고서에는 활동의 기준과 전체 상담 경험이 포함되어야 한다(제1항). 상담 전문가들이 각 각의 상담에 대해 작성한 기록이 보고서 작성의 토대가 되며, 이 기록에는 각 상담의 주요 내용과 제공된 지원 방안이 명시되어야 한다(제2항). 보고서는 상담소를 검토하는 데 사용되며, 최소 3년마다 관할 기관에 의해 상담소 승인이 검토된다. 이 과정에서 관할 기관은 앞서 언급된 기록을 열람할 수 있으며, 만약 승인 조건 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승인은 철회된다(제3항).
한편 임신갈등 상담소에 관한 위 제8조 규정에 제2항과 제3항을 신설함으로써 임신갈등 상담소 앞에서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임신 중단 반대 시위 및 임신갈등 상담 방해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임신갈등법 개정안이 2024년 7월 5일 연방의회를 통과하여 시행을 앞두고 있다(Deutscher Bundestag, 2024a).4) 이로써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기본 목적을 유지하되 임신부의 권리 보호와 상담 콘셉트 또한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이루어졌다. 개정안 제8조 제2항에 따르면 임신갈등 상담소의 입구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구역에서 임신부가 상담받는 것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는 행위들이 금지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고의적으로 장애물을 만들어 상담소에 들어가는 것을 어렵게 하는 행위, 임신부의 명확한 의사에 반하여 말을 건 후 임신 지속에 대한 의견을 강요하는 행위, 임신부를 괴롭히거나, 위협하거나, 다른 유사한 방 식으로 심각한 압박을 가해 임신 지속 여부에 대한 결정에 영향을 주려는 행위, 임신부에게 임신이나 임신중단에 관한 거짓된 사실을 주장하는 행위, 임신이나 임신중단에 대한 내용을 임신부가 직접 보거나, 듣거나, 접하도록 하는 행위가 금지된다(Deutscher Bundestag, 2024b). 또한 개정안 제8조 제3항에 따르면 임신갈등 상담소의 직원들이 상담을 수행하거나 상담 증명서를 발급하는 과정을 고의적으로 방해하는 행위가 금지된다(Deutscher Bundestag, 2024b).
4. 맺음말
살펴본 바와 같이 독일에서 임신갈등 상담 후에 이루어지는 임신중단은 위법이지만 형사처벌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2023년을 기준으로 독일에서는 전체 10만 6218건의 임신중단이 시행되었으며, 이 중 96.2%가 임신 갈등 상담 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된다(Destatis, 2024). 임신갈등 상담 제도의 분명한 목적은 상담을 의무화하여 무분별한 임신중단을 방지함으로써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상담 제도의 구체적 내용은 여성의 재생산권 및 자기결정권 또한 보장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양 기본권 간의 균형을 꾀하고 있다. 최근 임신갈등 상담소 앞에서의 임신중단 반대 운동을 금지하는 내용으로 임신갈등법이 개정됨으로써 이러한 상담 및 보호 콘셉트는 전보다 한층 더 강화되었다. 임신갈등법 개정은 여성의 결정권 행사를 방해하는 행위들을 법적으로 규제하여 여성의 독자적 결정에 기반한 최종 책임을 보장하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상담 및 보호 콘셉트와 관련하여 한편에서는 상담을 의무화하는 한 여성의 결정권과 재생산권은 보장될 수 없다는 근본적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Konrad-Adenauer- Stiftung e. V., 2024). 또한 종종 상담 과정에서 임신부가 보호받기보다는 오히려 임신을 지속하도록 설득되는 등 임신부의 의사에 반하는 간섭이 이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Konrad-Adenauer-Stiftung e. V., 2024). 이러한 비판에 근거해 현재 독일에서는 상담이 없이 이루어진 수정 12주 이내의 초기 임신중단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논의 또한 이루어지고 있다(Deutscher Bundestag, 2024c). 논의가 초기 단계에 있기 때문에, 현재의 임신중단 처벌 및 임신갈등 상담 제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예상하기 이른 상황이지만, 여성의 재생산권 강화의 세계적 경향, 현대 사회에서의 형법의 역할 및 형사 처벌의 실질적 효과에 대한 제고 등 구체적으로 관련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앞으로도 독일의 논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Notes
임신갈등 상담 후 이루어진 임신중단 외에도 형법전 제218조a 제2항에 따라 임신부의 생명 또는 신체적·정신적 건강 상태가 위험한 경우 행해지는 임신중단, 제218조a 제3항에 따라 강간 등의 범죄로 인해 원치 않은 임신을 한 경우에 행해지는 임신중단 또한 처벌되지 않는다.
임신갈등법 제9조에 따르면 임신갈등 상담소에 대한 승인은 상담소가 개인적, 전문적 자격을 충분히 갖춘 인력을 보유하고, 불가피한 경우에 추가 전문 인력을 즉시 투입할 수 있으며, 모자 지원을 제공하는 모든 기관과 협력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또한 임신중단을 시행하는 시설과 조직적, 경제적으로 결탁되어 있지 않으며, 임신중단 시행에 대한 경제적 이익이 배제되어야 임신갈등 상담소로 승인될 수 있다.
주로 종교 단체 및 복지 단체와 그외 민간단체 및 협회 등이 임신갈등 상담소로 인정받고 있다. 예를 들어 노동자 복지협회(Arbeiterwohlfahrt), 독일 적십자사(Deutsches Rotes Kreuz), 디아코니아협회(Diakonisches Werk), 도눔 비테(donum vitae), 프로 파밀리아(pro familia) 등이 임신갈등 상담을 제공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 보건소와 의사들이 상담을 제공하기도 한다(Bundesministerium für Familie, Senioren, Frauen und Jugend, 2024).
연방정부 제출 법률안인이 개정안에서 연방정부는 임신갈등 상담소 또는 임신중단 시술을 제공하는 병원 앞에서 임신중단 반대자들의 시위가 증가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임신부들 또는 상담가들이 원치 않게 임신중단에 대한 다른 의견을 강요받거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내용들을 접하게 된다고 지적하였다. 이는 상담가와 상담 과정 및 결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특히 임신부가 이미 신체적, 정신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더 큰 부담을 느끼게 만들어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설명하였다(Deutscher Bundestag, 2024b).
References
(2024). Schwangerschaftsberatung § 218. https://www.bmfsfj.de/resource/blob/95282/194c0c750952e093b7c1a4cb29ea5004/schwangerschaftsberatung-218-data.pdf .
(2023). Welche strafrechtlichen Regelungen gibt es zum Schwangerschaftsabbruch?. https://www.bmj.de/DE/themen/gesellschaft_familie/kinder/schwangerschaftsabbruch/abbruch_node.html#:~:text=Ein%20Schwangerschaftsabbruch%2C%20der%20von%20einem,Absatz%204%20Satz%201%20StGB%20 .
(2024). Schwangerschaftsabbrüche. https://www.destatis.de/DE/Themen/Gesellschaft-Umwelt/Gesundheit/Schwangerschaftsabbrueche/_inhalt.html .
(1995). Beschlußempfehlung und Bericht des Ausschusses für Familie, Senioren, Frauen und Jugend (13. Ausschuß), https://dserver.bundestag.de/btd/13/018/1301850.pdf .
(2017). Regelungssystematik der §§ 218, 218a StGB, https://www.bundestag.de/resource/blob/541290/4654eee8823c4fd7efb68cc1d85b1954/WD-7-161-17-pdf.pdf .
(2024a). Schutz von Schwangeren vor Belästigungen an Beratungsstellen beschlossen. https://www.bundestag.de/dokumente/textarchiv/2024/kw15-de-schwangerschaft-99536`10 .
(2024b). Entwurf eines Zweiten Gesetzes zur Änderung des Schwangerschaftskonfliktgesetzes, https://dserver.bundestag.de/btd/20/108/2010861.pdf .
(2024c). Fragen zur Vereinbarkeit der Aufhebung der Strafbarkeit des Schwangerschaftsabbruchs mit dem Grundgesetz, https://www.bundestag.de/resource/blob/1011304/a199cd6198861de6dea7bb7e1b3a2692/WD-3-045-24-pdf.pdf .
(2024). Verpflichtende Beratung im Schwangerschaftskonflikt, https://www.kas.de/documents/d/guest/verpflichtende-beratung-im-schwangerschaftskonflik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