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배경
코로나19 이전까지 대부분의 국가는 보건의료에 필수적인 의약품 공급을 수입에 상당히 의존해 왔다. 그런데 팬데믹 중 글로벌 공급망이 대거 차질을 빚으면서 세계적으로 의약품 공급 부족 문제가 악화되었다. 국가들은 무역에 의존한 의약품 공급 구조로는 필수의약품의 안정적 공급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것을 확인하였다(Barbieri et al., 2020).
그동안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의 의약품 공급 부족과 관련한 대응은 개별 국가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는데, 코로나19 위기 때 의약품 공급망에 심각한 충격이 발생하면서 EU 차원의 의약품 공급 안정 전략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게 되었다(EC, 2021). 이러한 배경에서 2022년 EU는 보건 위기 시 의료 제품의 공급 안정을 목표로 「Regulation (EU) 2022/123」을2) 제정하였다. 「Regulation (EU) 2022/123」은 EU의 법으로 EU의 모든 회원국에 구속력이 있고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 규정을 통해 유럽의약청(EMA: European Medicines Agency)은 보건 위기에 대응하여 EU 내 의약품 공급 부족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평가하여 공급 부족을 완화하기 위한 조정과 개입을 할 수 있는 권한과 임무를 갖게 되었다. 유럽의 약청(EMA)은 EU 내 의약품 승인을 위한 평가와 감독, 안전성 모니터링을 수행하는 규제 기관이다. 이 기관의 판단과 결정은 유럽위원회(EC: European Commission)를 통해 이행되며 모든 회원국에 영향을 미친다.
이 글에서는 「Regulation (EU) 2022/123」에 따라 EMA가 추진 중인 필수의약품 공급 안정 전략의 추진 동향을 소개한다. 필수 의약품은 의약품의 공급 안정 목표에서 핵심 대상이다. EMA는 먼저 필수의약품 목록을 작성하고, 그것들의 공급망 취약성을 분석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향후 공급 안정을 위한 전략을 구체화하여 추진한다.
2. 필수의약품 선정
EMA는 필수의약품에 관한 의무를 갖게 되면서 첫 번째 과업으로 유럽의약품기관네트워크(HMA: Heads of Medicines Agencies)와 함께 EU의 필수의약품을 선정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일차적으로 두 기관은 2023년 6월 필수 의약품 목록 개발을 위한 방법론을 확정하였다. 필수의약품 목록에 포함할 의약품은 의약품의 ‘중요도(criticality)’를 기반으로 선정하며, 중요도는 ⑴ 치료적 적응증(therapeutic indication), ⑵ 적절한 대체제의 가용성(availability of appropriate alternatives)의 두 가지 기준으로 결정하였다. 각 기준에 대해 3개의 위험 수준(높음, 중간, 낮음)으로 평가하고(표 1), 위험 매트릭스를 적용하여 모든 평가 대상 의약품을 ‘필수의약품(critical medicines)’, ‘잠재 위험 의약품(medicines at risk)’, ‘기타 의약품(other medicines)’으로 분류하였다. 다음 단계로 ‘잠재 위험 의약품’의 공급 취약성을 평가하고, 평가 결과 공급의 취약성이 높다고 판단된 약은 ‘필수의약품’으로 최종 분류하였다(표 2)(EMA, 2023).
| 표 1. 필수의약품 선정을 위한 기준 |
기준 | 위험수준 | 내용 |
---|---|---|
치료적 적응증 | 높음 | - 개인 환자의 건강 또는 공중보건에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적응증: 생명을 위협하는 급성질환, 비가역적으로 진행되는 질환의 치료제 |
중간 | - 개인 환자의 건강 또는 공중보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적응증 | |
낮음 | - 그 외 적응증 | |
적절한 대체제의 가용성 | 높음 | - 동일 성분 또는 동일 계열의 적절한 대체제가 없거나 한 개만 있음. - 적절한 대체제로 전환하려면 고강도의 임상적 상담이 필요하며, 환자 안전이나 질병 예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 |
중간 | - 적절한 대체제로 전환할 때 의료진의 추가적 노력이 필요하나, 환자 안전이나 질병 예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음. - 또는 대체 치료제의 가용성이 제한적일 수 있음. |
|
낮음 | - 동일 성분 또는 동일 계열의 적절한 대체제가 두 개 이상 있음. - 제품은 자유롭게 대체 가능하며 의료진의 추가 노력이 거의 필요 없음. |
출처: “Methodology to identify critical medicines for the ‘Union List of critical medicines’,” EMA, 2023, pp. 2-6.
| 표 2. 위험 매트릭스에 의한 의약품 구분과 필수의약품 선정 |
적절한 대체제의 가용성 | 치료적 적응증 | ||
---|---|---|---|
높은 위험 | 중간 위험 | 낮은 위험 | |
높은 위험 | 필수의약품 | 필수의약품 | 잠재 위험 의약품 |
중간 위험 | 필수의약품 | 잠재 위험 의약품 | 기타 의약품 |
낮은 위험 | 잠재 위험 의약품 | 기타 의약품 | 기타 의약품 |
출처: “Methodology to identify critical medicines for the ‘Union List of critical medicines’,” EMA, 2023, p. 6.
이상의 방법론에 따라 2023년 12월 EU 필수의약품 목록의 첫 번째 버전이 발표되었고, 이를 업데이트하여 2024년 12월 총 288개 의약품을 포함한 두 번째 버전의 필수의 약품 목록이 발표되었다. EMA는 이 목록이 EU에서 승인된 의약품의 75%에 해당하는 2200개의 성분 그룹을 검토한 결과를 바탕으로 한다고 밝혔다(EMA, 2024a).
필수의약품 목록에 포함된 의약품은 공급의 지속성에서 우선순위를 가지며, 공급 부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목록에 포함되었다고 하여 가까운 시일 내에 공급 부족의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는 아니며, 공급 부족 시 환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안정 공급이 특히 중요하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필수의약품 목록은 주기적으로 검토되며, 선정 기준에 따라 새로운 의약품을 추가하거나 기존 의약품을 삭제할 수 있다(EMA. 2024a).
3. 필수의약품 공급망 취약성 분석
필수의약품 목록 작성의 다음 단계는 공급망의 취약점을 분석하여 공급 안정을 위한 전략을 도출하는 것이다. 공급망 취약성을 평가하기 위해 유럽위원회(EC)는 2024년 파일럿 연구를 수행하였다. 파일럿 평가 대상 의약품으로 11개 성분을 선정하고, 이들 약의 공급망 위험 요소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였다. 11개 성분의 선정은 3단계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표 3)(EC, 2024).
| 표 3. 필수의약품 공급 취약성 파일럿 평가 대상 의약품 선정 절차 |
1단계 | 2단계 | 3단계 |
---|---|---|
필수의약품 첫 번째 버전 216개 약 중에서 2019~2023년 EMA에 공급 부족 보고가 있었던 약 추출 (90개) | 정량 평가: 공급 차질의 위험(공급 부족 보고 건수), 공중보건 영향을 고려하여 위험도 순위 부여 | 정성 평가: 원료 공급처(EU 또는 비EU), 제조업체 수, 운송 및 저장에서의 특성, 환자 집단(소아, 성인), 물질 유형(화합물, 생물의약품), 경제적 특성(비용, 양), 수요의 계절성 등(11개 선정) |
출처: “Assessment of the supply chain vulnerabilities for the first tranche of the Union list of critical medicines,” EC, 2024, p. 5.
공급망의 취약성은 6개 차원의 지표로 구성하여 분석하였고, 의약품의 허가권자와 회원국, EMA로부터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였다. 6개의 평가 지표는 산업 입지, 제조의 집중도, 제조소의 다변화, 예상치 못한 수요에 대한 대응, 공급망의 위험, 경제적 위험이다(표 4)(EC, 2024). 11개 의약품의 공급망 취약성을 6개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원료 의약품 공급의 상당 부분을 비EU 지역에 의존하고 있고, 제조가 단일한 공급자 또는 국가에 집중된 경향이 크며, 수요의 급증에 신속히 대응할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표 5)(EC, 2024).
| 표 4. 필수의약품 공급망의 취약성 분석을 위한 지표 구성 |
지표 구분 | 취약성 수준 | ||
---|---|---|---|
높음 | 중간 | 낮음 | |
산업 입지 | 생산의 30% 미만이 EU에 위치함 | 생산의 30∼70%가 EU에 위치함 | 생산의 70% 이상이 EU에 위치함 |
제조의 집중 | 생산의 30% 이상이 한 개 공급자 또는 국가에서 이루어짐 | 생산의 10∼30%가 한 개 공급자 또는 국가에서 이루어짐 | 생산의 10% 미만이 한 개 공급자 또는 국가에서 이루어짐 |
제조소 다변화 | 제조소가 4개 미만 | 4∼6개의 제조소 | 제조소가 6개 초과 |
예상치 못한 수요 | 공급 부족의 원인에 대한 정보로 평가: “예기치 못한 수요 증가”의 빈도를 허가권자의 시장 점유율로 가중치를 두어 계산 | ||
공급망 위험 | 허가권자가 스스로 “높음”으로 평가 | 허가권자가 스스로 “중간”으로 평가 | 허가권자가 스스로 “낮음”으로 평가 |
경제적 위험 | 허가권자가 스스로 “높음”으로 평가 | 허가권자가 스스로 “중간”으로 평가 | 허가권자가 스스로 “낮음”으로 평가 |
출처: “Assessment of the supply chain vulnerabilities for the first tranche of the Union list of critical medicines,” EC, 2024, p. 9.
| 표 5. 필수의약품 공급망의 취약성 분석 결과 |
결과 | 설명 |
---|---|
비EU(non-EU) 지역의 원료 의약품 공급자에게 상당히 의존 | 11개 성분 중 4개 성분이 비EU 국가의 원료 의약품 공급처에 의존하고 있음. 이들 공급처에서 제조 문제 발생 시 공급망의 위험이 커짐. |
제조 집중에 의한 위험 | 11개 성분 모두 한 개 제조소 또는 국가로부터 공급의 30% 이상을 충당함. 지리적 문제, 교역 제한, 생산 차질 시 공급망의 위험이 커질 수 있음. |
생산의 회복력이 불안정함 | 제조소의 다변화에서 혼재된 결과가 나타남. 국지적으로 공급 차질이 발생할 위험을 낮추기 위해서는 제조소 다변화를 위한 목표 지향적 전략이 필요함. |
시장 역동의 불확실성 | 예기치 못한 수요가 복잡한 양상을 보여 시장 조건의 급변에 취약함을 보여 줌. 시장 수요의 변화에 신속히 적응하기 위해서는 유연하고 반응성 있는 공급망 시스템이 요구됨. |
경제적 이행 능력의 우려 | 4개 성분에서 경제적 위험이 확인되어 장기적 지속 가능성과 수익성이 위협받을 수 있음.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경제적 도전 과제를 해결해야 함. |
출처: “Assessment of the supply chain vulnerabilities for the first tranche of the Union list of critical medicines,” EC, 2024, p. 16.
회원국들은 11개 의약품의 공급 부족 원인으로 제조상의 문제를 가장 많이(38%) 언급하였으며, 다음으로는 예상치 못한 수요 증가(31%)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회원국들은 이들 의약품의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다각적 조치를 이행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⑴ 규제의 유연한 적용, ⑵ 유통 통제, ⑶ 처방 및 조제 지침 변경, ⑷ 이해관계자와의 소통, ⑸ 수출 금지로 요약할 수 있다(EC, 2024).
4. 필수의약품을 중심으로 한 공급 안정 전략
필수의약품 목록은 EU에서 의약품 공급 부족을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데 활용될 것이다. 필수의약품으로 선정된 의약품은 유럽의 의약품 공급 차질의 위험을 최소화하고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한 EU 차원의 활동에서 우선순위를 갖는다(EMA, 2024b).
EMA는 필수의약품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하여 ⑴ 기업이 EU 내 제조를 늘리고 공급을 다변화하며, ⑵ 수요, 공급, 재고를 모니터링하고 안전 재고(safety stock)를 유지하여 단기적 공급 부족에 대응할 수 있게 하고, ⑶ EU 공동구매 기전을 마련하여 필수의약품 공급 계약을 강화하며, ⑷ 기업은 필수의약품 공급 부족 방지 계획을 수립・운영하고, ⑸ 공급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한 행정규제 절차를 신속히 이행하며, ⑹ 유럽 내 필수의약품의 제조 촉진을 위한 재정 지원을 촉진할 것이라고 밝혔다(EMA, 2024c).
현재 개정을 추진 중인 EU 의약품 법률(pharmaceutical legislation)에서는 의약품 허가권자와 국가 당국에 부여되는 추가 의무를 확정할 계획이다(EMA. 2024a). 또 2025년 3월 유럽위원회(EC)는 필수의약품의 공급 안정 전략을 구체화한 필수의약품법(Critical Medicines Act)을 공식 제안하였다(EC, 2025).
5. 맺음말
코로나19 이후 ‘필수의약품의 공급 안정’은 국내외 모두에서 국가 보건정책의 주요 목표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EU는 필수의약품 목록 작성에서 우리나라보다 늦었지만, 공급 안정을 위한 취약성 분석과 제도화 작업을 체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필수의약품 목록 선정의 방법론과 공급망 취약성 분석 방법 및 결과는 우리나라의 국가필수의약품 공급 안정 전략에서도 참고할 만하다. 향후 필수의약품 공급 안정 전략을 제도화하는 EU 의약품 법률(pharmaceutical legislation) 개정과 필수의약품법(Critical Medicines Act)의 추진 상황을 계속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References
(2025). Commission proposes Critical Medicines Act to bolster the supply of critical medicines in the EU, https://ec.europa.eu/commission/presscorner/detail/en/ip_25_733 .
(2023). Methodology to identify critical medicines for the “Union List of critical medicines.”, https://www.ema.europa.eu/en/documents/other/methodology-identify-critical-medicines-union-list-critical-medicines_en.pdf .
(2024a). Questions and answers on the Union list of critical medicines, https://www.ema.europa.eu/en/documents/other/questions-answers-union-list-critical-medicines_en.pdf .
(2024b). Union list of critical medicines, https://www.ema.europa.eu/en/human-regulatory-overview/post-authorisation/medicine-shortages-availability-issues/availability-medicines-during-crises/union-list-critical-medicines .
(2024c). MSSG recommendations to strengthen supply chains of critical medicinal products, https://www.ema.europa.eu/en/documents/other/mssg-recommendations-strengthen-supply-chains-critical-medicinal-products_en.pd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