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In the first year following the implementation of the Crisis Pregnancy Protection Act, 107 women in Korea sought support for “protected birth.” Germany’s Trusted Birth System and France’s Anonymous Birth System were discussed at length prior to the implementation of this law. In the end, Korea adopted a model similar to Germany’s, prioritizing children’s right to know their biological origins. In contrast, in the French system, maternal anonymity takes precedence over the child’s right to know their parentage. Today, an average of 600 children are born anonymously under this system every year in France. The Anonymous Birth System has been in place in France for a long time, reflecting a societal preference for protecting the mother’s anonymity over a strict adherence to the biological truth of the mother and the child.
초록
한국 사회에서 위기임신보호출산법이 처음 시행된 1년 동안 107명이 보호출산을 결정하였다. 이 법의 도입 전에 독일의 신뢰출산제도나 프랑스의 익명출산제도와 관련한 논의가 많이 있었다. 그리고 출생한 자녀의 알권리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독일의 신뢰출산과 유사한 제도가 도입되었다. 프랑스의 익명출산제도는 자녀의 알권리보다는 친생모의 익명성을 좀 더 보장하고 있는데, 매년 평균 약 600명이 이 제도를 통해 출생하고 있다. 프랑스의 익명출산제도는 오랜 기간 유지되어 왔다. 자녀와 친생모 사이의 혈연진실주의보다는 익명성을 원하는 친생모의 의사를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 들어가며
2023년 6월 30일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즉 의료기관을 통한 출생통보제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으로써 한국의 출생신고제도는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의료기관을 통한 출생통보제와 함께 2023년 10월 31일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안’, 일명 위기임신보호출산법(이하 보호출산제)이 제정되어 2024년 7월 19일 함께 시행되었다. 보호출산제 시행 전 출생한 자녀가 자신의 출생 증서 공개를 청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해당 제도의 활용에 의문이 제기되었으나, 시행 후 약 1년 동안 107명이 보호출산을 선택한 것으로 조사되었다(보건복지부, 2025).
한국의 보호출산제는 친생모의 신상정보가 요구되고, 자녀가 성장한 후에 해당 신상정보의 공개를 청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독일의 신뢰출산제도와 유사성이 존재한다. 한국 사회에 보호출산제가 도입되는 과정에서 독일의 신뢰출산제도나 프랑스의 익명출산제도에 관한 논의가 있었고, 출생한 자녀의 알권리를 보장하고자 독일의 신뢰출산제도와 유사한 제도가 도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달리 말해 한국의 보호출산제도나 독일의 신뢰출산제도에 비해 프랑스의 익명출산제도는 자녀의 알권리보다는 친생모의 익명성을 좀 더 보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익명출산제도는 프랑스 사회에서 오랜 기간 유지되어 왔다. 현재까지도 매년 평균 약 600명의 자녀가 익명출산제도를 통해 출생하고 있다(Epinat, 2011; Cordier, 2016). 이는 약 600명의 영아가 익명출산이라는 제도가 보장하는 적합한 의료 조건에서 출생하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동일한 수의 영아가 자신의 신상정보에 대한 알권리를 침해받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프랑스 사회에서 익명출산에 대한 전통은 불법 낙태, 영아 유기 또는 영아 살해를 방지할 목적으로 오래전부터 베이비박스 형태로 존재해 왔다. 즉 프랑스의 익명출산제도는 프랑스 사회라는 지역적, 시대적 특수성의 산물로 이해될 수 있다. 프랑스의 익명출산제도는 자녀와 친생모 사이의 혈연진실주의보다는 익명성을 원하는 친생모의 의사를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를 ‘자녀의 신상정보에 대한 접근권(알권리) vs 친생모의 익명출산’의 대립으로 보기도 하지만, 좀 더 본질적 측면에서 보면 이러한 대립 이전에 ‘자녀가 안전하게 출생할 권리=생명권’ 보호에 중요한 법익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역사를 가진 익명출산제도에 대해서도 출생한 자녀의 알권리나 친생부의 친자관계 성립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해당 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도 존재한다(안문희, 2023).
최근 도입된 한국의 보호출산제는 의료기관을 통한 출생통보제의 도입으로 자신의 신상정보 공개를 원하지 않는 임산부의 출산과 관련한 문제에 대한 대안이자 해결책으로 신설되었다는 점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프랑스의 익명출산제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하에서는 익명출산제도의 시대적 배경, 해당 제도의 구체적 내용 및 유럽인권법원의 해당 제도에 대한 판결을 통해 프랑스의 익명출산제도를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봄으로써 익명출산제도가 프랑스라는 사회와 역사의 산물이라는 점을 이해하고자 한다.
2. 프랑스 익명출산제도의 역사적 배경
프랑스의 익명출산제도는 이후에 살펴볼 유럽인권법원에서 인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프랑스 사회의 특징 및 역사적 산물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의 익명출산제도를 프랑스 혁명 전후로 나누어서 그 역사적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해당 제도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가. 프랑스혁명 이전: 가톨릭교회를 통한 익명출산
가톨릭교회의 영향으로 프랑스 사회에서는 낙태가 금지되어 왔고, 낙태 금지에 대한 대안으로 자녀가 출생한 직후에 친권을 포기할 수 있는 전통이 존재해 왔다. 1556년 앙리 2세는 영아 살해에 대한 처벌을 규정하게 되는데, 이 처벌 규정의 신설로 인해 예전과는 다르게 여성들에게는 임신 사실과 출산 사실을 신고해야 하는 의무가 부여되었다. 출산 사실을 은폐하거나 가톨릭의 세례나 장례 절차에 따르지 않는 경우에는 처벌받게 되었다. 해당 규정으로 프랑스 사회에서는 16세기 중반 이후부터 영아 살해와 신생아 유기를 구분하게 되고, 신생아 유기에 대해서는 사형선고를 면제해 주게 된 것이다(Bonnet, 1990). 해당 입법으로 산파의 보조에 의한 신생아 유기가 급속히 증가하였는데, 그 이유는 산파만이 산모의 신분을 익명으로 하면서도 출산 사실 및 출생한 신생아의 세례를 입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가톨릭교회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던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낙태는 허용되지 않았고, 설사 시행한다 해도 당시의 의료 수준으로는 산모 또한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신생아 유기는 사실상 익명출산이 필요한 당시 여성들의 ‘사회적 필요’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Dreifuss-Netter, 1994). 이러한 필요성에 대해 왕정은 여성들에게 익명으로 출산할 장소(Hôtel-Dieu)를 허용하게 되었다(Trillat, 2003).
프랑스의 이러한 익명출산에 대한 관행은 수도원(또는 요양원)의 벽에 회전할 수 있는 접수구(tours)를 1638년 도입한 뱅상 드 폴2)에 의해 발전되었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수도원 벽 사이에 설치된 접수구에 신생아를 넣고 벽의 외부에 있는 종을 울리면 반대쪽 벽인 내부에서는 종소리를 듣고 접수구에 있는 신생아를 찾을 수 있는 방식으로 설치되었다.3) 이러한 회전문 형태의 접수구가 프랑스 베이비박스의 초기 형태로 이해된다.
나. 프랑스혁명 이후: 제도로서의 익명출산
수도원이나 요양원 중심으로 운영되던 베이비박스는 프랑스혁명을 기점으로 제도로 변화를 겪게 된다. 프랑스혁명 이후 베이비박스는 익명출산제도로서 다음과 같이 3단계를 거친다.
첫 번째 단계(1789년 프랑스혁명∼1904년 6월 27일 법 이전)는 1789년의 프랑스혁명 직후 제정된 익명출산 및 친권 포기에 대한 1793년 6월 28일 데크레를 통해 출산 비용을 비롯하여 출산 이후 일상생활로 복귀하기 위한 비용까지 국가가 부담한다는 내용이 신설되었다. 해당 데크레를 통해 친생모는 자녀의 출생신고서를 작성하는 경우, 친생모인 자신의 성명을 기재하지 않고자 하는 경우 이러한 불기재가 허용되는데, 1793년 6월 28일 데크레는 익명출산 및 친권 포기에 대한 최초의 입법으로 평가된다. 해당 입법으로 1780년경 약 250개의 베이비박스가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감소하여 1869년에 마지막 베이비박스가 철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번째 단계(1904년 6월 27일 법 이후∼1941년 9월 2일 법 이전)는 1904년 6월 27일 법을 통해 ‘열린 사무소(bureau ouvert)’4)라 불리는 영유아포기사무소를 설치하고 익명출산에 관한 운용을 국가가 전담하게 되면서인데, 현대적 의미의 익명출산제도가 시작되었다고 평가된다.
세 번째 단계(1941년 9월 2일 법 이후)는 현행 프랑스민법 익명출산 규정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1941년 9월 2일 법으로, 출산 전과 후의 각각 한 달의 기간 동안 공공의료기관의 무상입원을 보장하였다.5)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의 비시(Vichy)정부6)하에서도 유지되었고,7) 여러차례 개정을 통해 현재까지 익명출산제도는 프랑스 사회에서 유지되고 있다.8)
3. 프랑스의 익명출산 관련 내용
프랑스는 민법과 가족 및 사회활동법(CASF: Code de l’Action Sociale et des Familles)을 통해 익명출산과 신상 공개에 관한 세부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이를 순차적으로 살펴본다.
가. 익명출산의 요청 및 절차
1) 익명출산으로 인한 친자관계의 불성립
익명출산에 관한 직접적인 프랑스민법 규정은 제326조의 단 하나의 조문이다(Neyrinck, 1996).9) 프랑스민법 제326조는 출산 시 모는 자신의 신상정보에 대한 익명성 보장을 요청할 수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해당 규정을 통해 친생모가 원하는 경우 자신의 출산 사실을 비롯하여 출생한 자녀와의 친자관계를 모두 익명으로 할 수 있다.10) 이와 함께 출생신고를 하는 경우 신분 등록 공무원에게 부나 모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부모에 관한 어떠한 사항도 출생신고서에 기록되지 않도록 함으로써(프랑스민법 제57조 제1항) 익명출산과 출생신고를 조화시키고 있다.
친생모가 익명출산을 결정한 경우 친생부는 출생한 자녀에 대해 어떠한 친권도 행사할 수 없었고, 당연히 친자관계 또한 성립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프랑스 사회에서 제기되어 왔고, 이에 따라 2005년 7월 4일 법규명령11)을 통해 친생부가 익명출산으로 출생한 자신의 자녀를 찾는 인지 소송이 가능해졌다(프랑스민법 제62-1조).
2) 익명출산의 요청과 진행 과정
익명출산을 요청한 여성은 어떠한 신상 관련 조사도 요구받지 않는다(프랑스 가족 및 사회 활동법(CASF) 제L. 222-6조 제4항). 출산하고자 하는 여성이 대상 의료기관에 익명출산을 요청하면 해당 의료기관에서는 ① 일반적으로 인간에게는 본인의 출신과 과거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는 사실, ② 익명출산 요청에 대한 사법적 판단의 효력을 친생모에게 고지해야 한다. 익명출산을 결정한 친생모는 이러한 설명을 듣고 난 후 ① 본인의 신상에 관한 인적 사항, 자녀의 출신, 출생 상황, 본인과 친생부의 건강에 관한 정보를 밀봉된 봉투에 남기도록 권유받고, ② 본인의 의사에 따라 (본인의) 신상을 언제라도 공개할 수 있다는 점을 고지받으며, ③ 본인이 정한 자녀의 이름, 자녀의 출생 일시 및 장소, 자녀의 성별을 봉인된 봉투의 겉면에 기재할 수 있다는 점도 고지받게 된다. 이러한 절차는 해당 전문가 또는 의료기관장의 책임하에 진행된다(프랑스 가족 및 사회 활동법(CASF) 제L. 222-6조 제1항).
익명출산을 통해 출생한 자녀는 2개월 동안 국가 후견을 받게 되는데(프랑스 가족 및 사회 활동법(CASF) 제L. 224-4조), 해당 기간에는 친생부 또는 친생모는 어떠한 절차도 없이 자녀를 즉시 데려갈 수 있다(프랑스 가족 및 사회 활동법(CASF) 제L. 224-6조 제2항). 이 때문에 익명출산을 통해 자녀를 출산했다고 하더라도 친생모나 친생부에게는 해당 2개월 동안 자녀와 친자 관계를 성립시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임시 거소, 출산 등 익명출산 관련 비용은 해당 의료기관 관할 지역 소재지의 ‘아동에 관한 사회원조 서비스(Aide Sociale à l’Enfance: ASE)’가 부담하는데, 친생모에 대한 사회적・심리적 지원도 가능하다(프랑스 가족 및 사회 활동법(CASF) 제L. 222-6조 제2항 및 제3항).
나. 친생모 신상정보의 보존 및 공개
익명출산을 결정한 친생모가 밀봉된 봉투를 남긴 경우(물론 남기지 않을 수 있음) 해당 봉투나 관련 정보는 일반심의회(conseil général) 장의 책임하에 보존되고, 이후 개인 신상에 관한 접근을 위한 국가심의회(Conseil national)에 전달되어 보존된다(프랑스 가족 및 사회 활동법(CASF) 제L. 224-7조 제1항 및 제2항).
국가심의회가 보존하는 정보는 익명으로 출생한 자녀가 자신의 신상정보에 대한 공개를 청구한다면 다음의 4가지 경우에만 공개할 수 있다(프랑스 가족 및 사회 활동법(CASF) 제L. 147-6조 제1항 및 제3항). 첫째, 친생부 또는 친생모가 본인의 신분을 공개한다는 명백한 의사표시가 존재하는 경우, 둘째, 친생부 또는 친생모가 자신들의 신상정보를 익명으로 하겠다는 명백한 의사표시를 하지 않은 경우, 셋째, 심의회 구성원 중 1인 또는 친생부나 친생모의 위임을 받은 자가 사생활 존중의 범위에서 친생부 또는 친생모의 익명을 철회한다는 명백한 의사를 전달받은 경우, 넷째, 친생자의 신상정보 청구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않고 친생부 또는 친생모가 사망했을 때 심의회 구성원 중 1인 또는 친생부나 친생모의 위임을 받은 자가 친생모의 가족들에게 이를 고지한 경우이다.
4. 프랑스 익명출산제도에 대한 유럽인권법원의 법적 논쟁
익명출산을 통해 출생한 자녀는 친부모, 자신의 신상과 관련한 어떠한 정보도 알 수 없다는 점을 이유로 ‘신상정보를 알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익명출산제도의 폐지에 대한 요구도 존재한다. 특히 프랑스의 익명출산제도가 유럽인권협약(Convention européenne des droits de l’homme)에 대한 위반이라는 주장을 익명으로 출생한 자녀가 유럽인권법원에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이하에서는 프랑스 익명출산제도에 대한 유럽인권법원의 가장 대표적인 판례12)를 살펴본다.
가. 익명으로 출생한 청구인을 둘러싼 사실관계
청구인 파스칼 오디에브르(Pascale Odievre: 1965년 3월 23일 파리 출생)의 친생모는 익명출산제도를 통해 청구인을 출산하였다. 이후 청구인은 ‘미성년자 보호 및 아동의 사회적 원조 서비스(DASS: Direction départementale des Affaires Sanitaires et Sociales)’에 기아로 위탁되어 있다가 4세에 오디에브르 부부의 완전양자(adoption plénière: 한국의 친양자와 유사)로 입양되었다. 1990년 청구인은 자신의 친생모와 3명의 형제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자 센 지역의 ‘아동을 위한 사회원조서비스(ASE)’에 해당 정보를 문의했으나, 문의 사항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듣게 되었다. 그러자 청구인은 다시 ‘DASS에 형제들의 신상정보를 요청하였으나, DASS 또한 이를 거부하였다. 이에 청구인은 파리지방법원에 자신의 출생과 관련한 신상정보에 대해 익명성을 철회해 달라고 소를 제기하였다. 1998년 2월 2일 파리지방법원은 청구인이 제기한 소는 행정법원이 관할권을 가지므로 파리지방법원의 관할이 아니라고 판결하였다. 그러자 청구인은 프랑스를 상대로 프랑스의 익명출산제도로 인해 자신의 사생활 및 가족생활(유럽인권협약 제8조)이 침해되었으며, 자신이 다른 형제와 차별받았다고(유럽인권협약 제14조) 주장하는 소를 유럽인권법원에 제기하였다.
나. 익명출산제도와 사생활 침해(유럽인권협약 제8조)
유럽인권법원은 청구인이 주장하는 프랑스 익명출산제도로 인한 유럽인권협약 제8조 ‘사생활 보호’13)의 침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유럽인권법원은 사생활 보호에 해당하는 자신의 신상정보를 알권리에 대한 침해라는 청구인의 주장에 대해 인간 존재로서의 자아 성립에 관한 권리 및 친부모의 인적 사항과 같은 중요하고 필수적인 정보의 알권리는 유럽인권협약 제8조가 보장하는 사생활 영역에 해당한다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유럽인권법원은 해당 청구의 본질적 문제는 한편으로는 ‘자신(청구인)의 신상정보를 알권리’ 및 ‘(익명출산으로 출생한) 자녀의 생명’이라는 법익과 다른 한편으로는 친생모의 건강을 위해 적합한 의료 조건에서의 출산을 보장하는 ‘친생모의 익명성’이라는 법익의 충돌이라고 보았다. 유럽인권법원은 충돌하는 두 법익이 자녀와 친생모 각자가 향유하는 별개의 법익으로, 두 법익의 조화가 쉽지 않음을 인정하면서 무엇보다도 청구인의 양부모, 친생부 또는 혈족과 같은 제3자의 이익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즉 4세에 입양되어 현재 38세인 청구인이 요구하는 친생모의 신상정보에 관한 익명성 철회는 청구인의 친생모, 양부모, 친생부 및 혈연관계의 형제자매에게까지 적지 않은 위험이 될 수 있으며, 이들도 유럽인권협약 제8조의 사생활 및 가족생활 보호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유럽인권법원은 ‘출산 시에 모와 자녀의 건강을 보호하고, 불법 낙태와 영아 유기를 방지하기 위해 차용한 방식에 대한 (국가의) 재량 및 익명출산에 대한 일반적 이익이 프랑스법상 존재하며, 사생활에 대한 권리 또한 프랑스 사법 체계 내에서 보장되고 있음’을 인정하였다. 궁극적으로 유럽인권법원은 “양부모, 친부모 및 나머지 혈연관계에서 각 개인이 가진 권리에 비추어 익명출산으로 출생한 자녀의 신상정보에 대한 익명성 철회와 같은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에 대한 판단의 한계 범위를 프랑스가 초과하지 않았으므로 프랑스의 익명출산제도가 유럽인권협약 제8조의 사생활 보호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라고 결론지었다.
다. 익명출산제도와 차별금지(유럽인권협약 제14조)
청구인은 프랑스의 익명출산제도로 인해 친생모와의 친자관계가 성립될 수 없고, 이러한 친자관계 불성립으로 인해 친생모의 재산에 대한 자신의 상속권이 제한받는다는 점에서 유럽인권협약 제14조의 차별금지에 대한 위반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유럽인권법원은 청구인의 주장은 프랑스의 익명출산제도로 인한 친자관계 불성립과 상속권 제한에 유럽인권협약 제14조가 금지하는 어떠한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또한 유럽인권법원은 청구인은 양부모와 친자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양부모와의 양친자 관계를 통해 상속 및 재산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는 점을 제시하였다.
5. 나가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프랑스에서 익명출산을 통해 출생한 자녀의 수는 최근에도 매년 약 6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익명으로 출산하고자 하는 여성에 대해 단순히 출산 비용만이 아니라 출산 전후의 거주 및 생활과 관련한 비용을 비롯해 출산 후의 취업 보조에 이르기까지 익명출산을 선택한 산모에 대한 지원을 보장하고 있다. 또한 익명출산제도가 가장 비판받고 있는 지점인 출생한 자녀의 신상정보에 관한 알권리와 관련해 익명출산을 결정한 친생모나 친생부가 본인들의 신상정보에 대해 익명성을 철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친생부가 익명출산으로 출생한 자녀에 대해 인지 청구를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익명출산을 통한 권리 침해를 보완하는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앞서 살펴본 프랑스의 익명출산제도에 대한 유럽인권법원의 판결 이후 약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익명출산제도에 대한 찬반 논쟁은 프랑스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해당 판결에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메시지는 청구인이 주장하는 ‘알권리’는 ‘익명출산으로 안전하고 건강하게 출생할 수 있었던 청구인의 생명권’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의 경우 혼인외 출생자 수가 전체 출생아의 약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매년 약 600명의 익명출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통해 프랑스 익명출산제도의 필요성을 이해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보호출산제가 시행되기 전에 친생모의 신상정보가 공개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해당 제도의 활용에 대한 우려가 있었음에도 제도가 시행된 1년의 짧은 기간 동안 보호출산을 결정한 107명이라는 수는 보호출산제도에 대한 필요성을 입증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보호출산제를 통해 친생모의 건강은 물론 출생한 자녀의 생명과 건강이 보장된다는 결과뿐만 아니라 심층 상담 과정을 거쳐 원가정 양육을 결정한 160명이라는 수치는 이러한 점에서 더 의미있게 다가온다.
다만 보호출산을 통하여 출생한 자녀는 성년이 된 후 자신의 출생증서 공개를 청구할 수 있어 가장 빠른 시기인 2043년에는 해당 청구를 통해 자녀에게는 친생모의 신상정보가 공개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는 보호출산제가 보장하는 자녀의 알권리라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자신의 신상정보를 비롯한 출산 사실이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 친생모에게는 고통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프랑스의 익명출산제가 자녀의 알권리를 위한 보완적 조치를 마련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보호출산제 또한 친생모의 익명성을 위한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Notes
김상용, 안문희. (2023). 베이비박스, 익명출산, 신뢰출산 - 끝나지 않는 논쟁(중앙법학, 87)과 안문희. (2013). 프랑스법의 익명출산제도-2003년 2월 13일 유럽인권법원판결(ODIÈVRE c. FRANCE)과 관련하여(중앙법학, 15(4))를 정리하고 보충한 내용이다.
Vincent de Paul(또는 Vincent Depaul)은 16, 17세기 프랑스의 수도승으로, 베이비박스의 설치뿐만 아니라 버려진 아동을 위한 보육원과 같은 시설(Enfants-Trouvés(기아))을 1638년에 설립하였다(안문희, 2013).
이러한 프랑스의 접수구는 베이비박스(baby box) 중 하나의 형태로 볼 수 있다. 베이비박스는 모가 누구와도 접촉할 필요 없이 자녀를 두고 갈 수 있는 시설로, 베이비박스에 대한 기준은 없다. 한국 사회에서는 서울 관악구의 한 교회에 베이비박스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베이비박스의 설치 및 운용이 아동의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2013년 9월 27일에 판단했다(김상용, 2013).
그러나 20세기를 기점으로 익명출산제도와 익명출산으로 출생한 자녀에 대한 입양 문제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먼저 입양 아동에 관한 1939년 9월 29일 법-데크레는 자녀에 대한 일시적 포기를 혈연과의 완전한 분리를 허용하는 규정을 담고 있었다. 이어 익명출산권의 현대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 1941년 9월 2일 법-데크레는 영아 살해 방지라는 목적보다는 신생아 입양을 용이하게 하려는 목적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Aubin, 2003).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이 프랑스를 침략하였고, 프랑스는 비시 지역을 기점으로 1940년 7월 11일 페탕 정권이 성립되어 1944년까지 유지되었다. 이후 드골과 레지스탕스에 의한 프랑스의 독립은 비시 정권에 대한 숙청 작업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비시 정권에 대한 평가는 그것이 독일의 직접적 수탈로부터 프랑스를 방어한 차선책이었는지, 아니면 프랑스의 불이익과 국민들의 고통을 가져온 이적행위였는지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박원순, 1996).
해당 법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과의 사이에서 자녀를 출산한 프랑스 여성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제정되었는데, 해당 여성 중에서도 특히 성매매 및 강간 피해자를 보호하고자 하였다.
1941년 9월 2일 법을 통한 익명출산 규정은 1953년 11월 29일 데크레를 통해 삭제되었고, 1959년 1월 7일 데크레를 통해 다시 재규정된 이후 1986년, 1993년과 2002년 1월 22일 법 및 익명출산에 의한 신상정보 공개 청구의 인용을 용이하게 하려는 목적을 가진 2009년 1월 16일 법의 개정까지 이어지고 있다.
References
. (2025. 7. 18). 위기임신보호출산제 시행 1년, 위기임산부 및 아동의 지지체계로서 역할 수행, [보도자료]. https://www.mohw.go.kr/board.es?mid=a10503000000&bid=0027&list_no=1486904&act=view& .
(2016. 6. 2). L’accouchement sous le secret, une spécificité française. Le Monde. https://www.lemonde.fr/famillevie-privee/article/2016/07/03/l-accouchement-sous-le-secret-une-specificite-francaise_4962761_1654468.html .
(2011. 2. 16). L’accouchement sous X : comment ça se passe. Libération. http://www.liberation.fr/societe/2011/02/16/l-accouchement-sous-x-comment-ca-se-passe_7154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