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국제개발처(Sida) Swedish International Development Cooperation Agency
SIDA는 1968년 이전까지는 우리나라 정부 가족계획사업용 먹는 피임약을 전량 지원하였고, 보건소 현지지도를 위한 소형차량(랜드로버) 80대를 포함하여 대한가족계획협회 홍보지인 가정의 벗 발간 지원 등 물자지원에 적극적이었다.
1968년 7월 12일 ‘가족계획 분야 기술협력에 관한 한국과 스웨덴 정부 간의 협정’을 체결하였고, 1969년 4월 25일에는 보건사회부와 국립가족계획연구소 설립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여 국립가족계획연구소 본관 건물이 준공되었다.
1971년 6월 19일에는 협정내용의 일부 개정으로 가족계획연구원 설립과 함께 본관건물과 연계된 대형 강당, 국제회의실을 완비하여 국내외 전문 인력의 훈련 및 세미나를 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조성되었다.
미국 국제개발처(USAID) 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USAID는 1968년 이전까지는 소규모 연구비 지원과 이동 시술반을 위한 10대의 중고 구급차를 지원하는 정도였으나, 1967년 미국 의회의 승인으로 130만 불 상당의 차량, 자료처리장비, 보건소 의료장비 등을 지원하기로 체결하여 1968년부터 지원이 확대되었다.
USAID는 국립가족계획연구소에 대형 버스 2대를 포함하여 총 5대의 차량과 장단기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연구소의 기능강화와 전문 연구 인력의 양성을 위한 전기를 마련하였다.
1975년 9월 US AID와의 보건시범사업에 관한 차관협정(1975.09.13.)을 체결하고 이에 따라 1976년 4월 한국보건개발연구원을 개원하여 보건시범사업을 실시하게 되었다.
미국 인구협회(PC) The Population Council
1962년 11월 보건사회부는 가족계획 사업을 위해 미국인구협회에 전문가 파견을 요청하였고 이에 M. C. Balfour를 비롯한 4명으로 구성된 조사팀이 내한하여 1개월간 일선 사업기관을 시찰하여 보고서를 작성하고 1963년 3월에 보건사회부 장관에게 제출하였다.
이 보고서에는 가족계획사업에 있어 필수적인 분야로서 조직, 홍보, 교육, 인력훈련, 피임방법 및 보급, 연구평가, 재정부문과 앞으로 PC가 기여할 기술지원 내용을 포함하였다.
PC는 1963년 말 이후 자문관을 계속 상주시키고 국내의 사업기관과 외원기관 간의 조정 역할을 수행하여 외원사업의 효율성 제고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1964년에는 인력훈련, 홍보 교육자료 제작, 조사평가 분야 사업지원을 위해 1년에 20만 불씩 지원하기로 하였고 이에 보건사회부는 1965년부터 모자보건과 내에 조사평가반을 설치하여 15명의 연구직과 자료정리요원 15명의 직원으로 구성하고 정부 가족계획사업의 장단기계획 수립을 위한 진도측정과 결과에 대한 조사평가를 담당하고, 국내외의 기술적인 발전을 학술적으로 파악하여 사업기획과 실시에 반영하여 사업성과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미국인구협회 한국사무소에 배치된 전문가들은 평소 보건사회부 가족계획조사평가반과 유기적인 협조체계가 조성되어 있었고 1970년 7월 국립가족계획연구소가 개소되면서 PC 한국사무소도 국립가족계획연구소 1층으로 이전하여 협조체계를 더욱 공고화하였다.
1971년에는 미국 인구협회의 재정지원으로 전국 규모의 표본조사인 "전국 출산력 및 인공임신중절조사"를 실시하였다.
국제통계기구(ISI) International Statistical Institute
1974년도 ‘세계인구의 해’를 맞이하여 UN에서는 세계출산력조사를 지원했는데 이 조사는 출산력에 관한 제 정보의 국제적 비교연구를 위해 국제통계학회(International Statistical Institute : ISI)가 기획하고 주관한 범세계적인 규모의 조사 연구 사업이었다.
세계출산력조사(World Fertility Survey, WFS)의 한국출산력조사(Korean National Fertility Survey, KNFS)는 가족계획연구원과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이 공동으로 실시하였고 UNFPA의 재정지원과 ISI의 기술자문이 있었다. 이를 위해서 1974-1979년 기간 중 UNFPA가 지원한 조사예산은 $234,529이며, 표본설계 과정에서 조사표 설계, 조사요원 훈련, 현지조사, 부호화 작업 등은 동 조사본부 자문단 소속의 J. Y. Takeshita 박사를 포함한 4명의 검토과정을 거처 완결되었으며, 1974년도 조사자료와 조사지침서는 유사 조사를 수행하는데 긴요한 기초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아시아재단 The Asia Foundation
1973년 11월 가족계획연구원은 가족계획 사업 추진을 위하여 아시아재단에 문헌정보실(Documentation Center) 설립과 운영을 위한 자금지원을 요청하였다. 요청 내용은 인력 1인에 대한 운영비와 각종 장비, 가족계획사업 추진을 위한 뉴스레터, 가족계획 및 인구관계 인명록, 기관명부 등의 출판에 관한 자금 지원이었다. 결과, 아시아재단은 미화 7,335불을 지원하였고 관련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가족계획사업 관련 인명 및 기관명록, 연구결과 초록지를 발간하였고, 가족계획요원을 위한 소식과 가족계획 관련 정보 공유를 위한 신문 형식의 뉴스지인 ‘가족계획 소식’을 1974년 6월 창간하여 1976년 8월까지 발간하였다.
국제연합인구기금(UNFPA) United Nations Fund for Population Activities
우리나라의 인구 및 가족계획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협정이 1974년 3월 21일 서울에서 UNFPA 사무총장과 한국 정부 간에 체결되었고, 그 주요 내용은 향후 3-5년간에 기초인구자료 수집, 인구정책, 인구동태, 가족계획, 홍보교육, 다분야 간 통합사업 등 6개 분야에 미화 600만 불을 지원하기로 하였다.
1978년 6월에는 제2차 협정을 통해서 1978년부터 3년 6개월 동안 인구 및 가족계획분야에 226만 불을 지원하기로 하고 우리나라 측 협력 상대기관을 과학기술처로 결정하였다.
1980년 6월 UNFPA는 제3차 협정을 통하여 UNFPA 사업 기간을 1982년까지 연장하고 $2,481,546을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
정부는 1-2차 사업기간 중 사회경제적 발전에 따른 농촌인구의 도시집중에 따라 도시영세지역 가족계획사업, 도시 중산층을 위한 종합병원을 통한 가족계획사업, 산업장의 확산에 따른 사업장 근로자를 위한 가족계획사업, 그리고 현역 및 예비군을 대상으로 하는 가족계획사업 등을 실시하였고, 도시지역 특성에 따른 사업추진전략은 매우 시의적절하고 효과적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UNFPA는 1970년대 가족계획사업 평가 조사, 전국출산력 조사 등 연구와 사업 예산을 지원하였으며, 1980년 10월에 UNFPA 사업 평가단 내한에 따른 국내 카운터 파트로 가족계획연구원이 지정되어 국내 활동에 대한 일정을 총괄하였다.
세계보건기구(WHO) World Health Organization
WHO는 1972년부터 국내에 수많은 연구 및 기술협력센터를 지정하고 이들 기관을 중심으로 연구기관 간의 연구와 협력 강화에 필요한 재정적 지원을 지속해 왔다.
1979년 2월 한국보건개발연구원을 'WHO 보건연구 및 개발에 관한 협력센터'로 지정하였고, 1982년 3월에는 한국보건개발연구원이 한국인구보건연구원으로 통합되면서 한국인구보건연구원을 협력센터로 재 지정하였다.
이에 따라 WHO 국제 훈련생들을 위한 가족계획, 보건 관련 훈련을 수행하였다.
동서문화연구원(EWC) East-West Center in Honolulu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개원한 1970년 이래 동서문화연구원 간에는 인구 및 가족계획 분야의 공동연구와 기술교류가 매우 활발하게 추진되어 왔다.
특히 EWC 5주 과정의 인구문제에 관한 하계 세미나를 매년 개최하였는데 하와이에서 4주간 기본이론을 중심으로 한 세미나 과정을 이수한 후 연속으로 서울 KIHASA에서 가족계획사업 및 인구문제에 관한 사례연구와 사업견학과정을 이수했다.
이 세미나는 1971-1979년 동안 9회에 걸쳐 추진되었으며 참가국은 25개국에 참가자가 593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