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압도하는 과학기술 시대의 보건복지

Health and Welfare in the Age of Science and Technology Overwhelming Humans

미세・초미세 먼지 대란과 규제 샌드박스

최근 한국 보건복지분야의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미세・초미세 먼지 대란과 ‘규제 샌드박스’를 통한 신의료기술의 신속허가이다. 이 두 이슈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이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중 ‘규제 샌드박스’에 대해서는 조금 설명이 필요한데, 이는 신제품이나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할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하는 제도를 말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규제 샌드박스는 총 3가지 종류의 제도로 구성된다. 첫째, 규제와 법령이 없거나 기존 규제와 법령의 적용이 불가능한 경우에 ‘임시허가’를 해주는 것, 둘째, 규제와 법령이 모호・불합리하거나 금지・불허하는 경우에 예외적 실증을 가능하게 해주는 ‘실증특례’제도, 마지막으로, 허가 필요 여부 및 허가 기준 요건 등을 신속 확인 후 30일 동안 관계부처의 회신 없으면 시장 출시를 허용하는 ‘신속확인’ 제도가 그것이다.

지난 3월 28일 ‘규제 샌드박스 5법’ 중 마지막으로 ‘행정규제기본법’ 일부 개정안이 임시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보통신융합법’과 ‘산업융합촉진법’은 1월부터 시행됐고 ‘금융혁신법’과 ‘지역특구법’은 4월부터 시행된다. 법령은 여러 가지지만 이들 법들의 목적은 하나다. 이른바, “신기술이나 신산업 분야의 기업활동 등이 규제에 발목 잡히는 걸 막고 신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건의료부문 시민단체들은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안전성, 효용성이 입증되지 않은 상품을 충분한 검증이 이루어지기 전에 상업화해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전자검사 상업화, 심전도 시계 등을 포함한 의료기기규제완화, 건강관리서비스 민영화, 임상시험 규제완화와 같은 조치들이 계속 강행되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 제도와 미세・초미세먼지 대란과의 관련성은 이들이 과학기술의 발전과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작금의 미세・초미세 먼지 대란은 기존 자연재해와는 달리 인재(人災), 특별히 과학기술의 발전이 만들어낸 재해라는 특징을 가진다. 미세・초미세 먼지의 중요 배출원인 난방, 화력발전, 자동차 등은 모두 과거에는 ‘과학 기술의 승리’로 불리던 것들이다. 핵 기술로 만든 대량 살상무기나 환경오염의 주범인 비닐, 플라스틱도 마찬가지이다. 철학자 한스 요나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프로메테우스로 상징되는 불의 권력이 마침내 근대 과학기술이라는 권력을 낳았고, 그러한 과학기술의 권력은 한때 유토피아를 가져다 주었지만, 지금은 정반대의 디스토피아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Jonas, 1984).

인간을 압도하는 시대의 보건복지

오랫동안 과학기술은 모든 문제의 해결사로서 여겨져 왔고 지금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보건복지 부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실제로 의학기술의 발전은 과거 불치의 병으로 여겨져 왔던 많은 질병에서 자유로워지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고 또한 여러 첨단과학기술을 활용해 장애를 가지고도 과거보다 덜 불편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류는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미세・초미세 먼지, 대량살상무기, 환경파괴 등으로 생존의 위기에 봉착했을 뿐만 아니라 자동화 기술과 로봇기술의 발전은 ‘간병 로봇’과 같은 편리함과 함께 인간의 일자리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중요한 치료나 정책 결정을 인공지능(AI)에게 맡기게 될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또한, 정보화를 통해 개인의 신상정보, 위치, 소비행태, 더 나아가 유전자 정보까지 노출되고 상업화됨에 따라 인간은 빠른 속도로 아감벤(Agamben)이 말한 ‘벌거벗은 생명(nudavita)’이 되어가고 있다. 이에 더하여 유전자 조작 아기, 배아줄기세포 치료 등의 출현은 인간 존재의 의미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더욱이 생명공학을 포함한 과학 기술은 최근 ‘규제 샌드박스’처럼, ‘신성장 동력’, ‘새로운 먹거리 산업’ 등으로 포장되어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국가권력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급기야 지금과 같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멸종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종말론적 예언들이 등장하고 있다. 몇 해 전 유발 하라리(Yuval Harari)와 제러드 다이아몬드(Jared M. Diamond)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약 200년 뒤에는 (지구상에) 인간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엄청난 힘을 얻게 되어, 우리 스스로를 파괴하거나 혹은 완전히 다른 존재로 업그레이드할지도 모른다. 2200년에 지구를 지배할 생명체는 우리가 침팬지나 네안데르탈인과 달랐던 것보다도 더 많이 우리와 다를 것이다.” (Yuval Harari, 2016)

  • “앞으로 50년 간 인류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100년이나 200년 후에는 더 이상 지구에 인간이 살지 않게 되거나 석기시대처럼 살아가게 될 것이다.” (Jared M. Diamond, 2016)

과학기술이 야기하는 문제 극복에서 마주치는 ‘다섯 가지 패러독스’

‘미세・초미세 먼지 대란’과 ‘규제 샌드박스’로 대변되는 과학기술의 이중성을 극복하는 것은 이 시대 인류에게 있어 절체절명의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의 극복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패러독스를 넘어서야 한다.

첫 번째는 ‘지킬박사와 하이드 패러독스’다.

앞서 언급했듯이 작금의 위기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마법의 탄환’으로 여겨왔던 과학기술이 만들어내는 문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학만능주의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미세・초미세 먼지 문제에 대한 중요 해결책 역시 근원적인 문제의 해결보다는 여전히 인공강우, 공기청정기, 플라즈마 등 또 다른 과학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형국이다.

두 번째는 ‘키케로(Cicero) 패러독스’다.

2000여 년 전 로마 정치가 키케로는 “모두들 노년에 도달하기를 바라면서도 일단 도달하고 나면 비난하니, 이 얼마나 어리석고 모순되고 이치에 어긋나는가!”라고 한탄했다. 우리가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한 완벽함을 지향할수록 우리의 노년은 길어지고, 우리의 불완전함은 더욱 부각된다. 그리고 설령 우리가 과학기술을 통해 그 ‘완벽함’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이라 불리던 존재가 아닌 존재가 되고 만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시간 감각 불일치 패러독스’다

현재 과학기술이 만들어내고 있는 위험은 시차를 가진다. 다시 말해 현재의 위험보다 미래의 위험과 불확실성이 훨씬 크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생애 안에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더욱이 미래세대의 목소리는 늘 기성세대의 목소리보다 작고 힘이 없다.

네 번째는 ‘공범 또는 공범 만들기 패러독스’다.

과학기술이 야기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너도 자동차, 비닐, 더 나아가 전기를 사용하고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 곧바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더 크고 근원적인 원인을 제공하는 이들과 사실상 선택권이 없는 이들을 섬세히 구별하지 않는다.

다섯 번째는 ‘증가하는 격차 패러독스’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거대 과학과 거대 자본의 결합은 강화되는 반면, 상대적으로 전문지식에 취약한 일반 시민은 더욱 왜소해진다. 이러한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더 큰 격차를 만드는 악순환을 야기하고 있다.

이렇듯 현재 인류가 맞이하고 있는 위기는 이러한 다섯 가지 패러독스로 인해 그것의 극복이 어려운 위기이며, 과거 인류가 직면하지 못했던 위기이기도 하다.

소결: 패러독스를 넘어서

미세・초미세 먼지바람이 연일 반복되고 이에 못지않게 전 세계 어떤 나라보다 ‘과학만능주의’가 만연한 가운데, 영리 유전자검사, 배아줄기세포, 인공지능, 정보화 등 과학기술 상업화의 광풍은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고 있다. 반대로 이러한 과학기술 정책결정 과정에 민주적 시민참여의 경로는 아예 없거나, 형식화되고, 전문가 집단의 자율규제마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안전장치’의 요구가 ‘발전의 발목을 잡는 규제’라 매도되고, 안전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의 상품까지 공권력의 이름으로 상품화를 허가해 주는 ‘규제 샌드박스’는 갈수로 무소불위의 힘을 더해가는 과학 기술에 고삐마저 풀어버리게 할 것이다.

이런 작금의 상황에서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것이 인간과 생태계의 온존(well-being) 1) 문제이다. 더욱이 보건의료와 복지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이들의 온존이기에 더욱 그렇다. 복지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살아감이 좋은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건강, 물질적인 풍요, 행복, 그 밖의 ‘온존(well-being)’ 에 관한 상태 및 조건’을 의미한다. ‘건강’ 역시 단지 질병이 없는 상태만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온존(well-being)’한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인간의 온존은 당연히 인간을 포함하는 생태계의 온존 없이 있을 수 없는 반면, 현대의 과학기술은 마침내 그것을 파괴하는 주범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 기술은 생태적 온존의 수단이어야 하고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해 인간 기술의 정당성은 오로지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의 지속 가능한 온존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느냐에 두어야 한다.

철학자 한스 요나스는 “아는 것은 힘이다”라는 베이컨의 경구에 의존하여 지식의 힘을 통해 자연을 정복하고 유토피아 세상을 만들어 보자고 했던 인간 중심의 활동이 지금에 와서 그 역풍을 맞이하고 있다고 하였다(Jonas, 1984). 그러면서 그는 정의, 평등, 사랑과 같은 기존의 전통윤리와는 다르게 미래 윤리의 원칙으로 ‘책임’을 강조한다. 전통윤리는 행위의 결과를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인간 상호간의 관계만을 문제시하였기 때문에 그 결과가 먼 미래에 나타나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기술행위를 규제하기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양해림, 2013).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작금의 위기는 앞서 언급한 ‘다섯 가지 패러독스’라는 아주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희망이 없다. 전문가들이 내놓는 전망 역시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그러나 특별히 인간의 온존을 그 궁극적 지향으로 하는 보건복지 전문가들은 이러한 과학 기술 그 자체와 그 발전에 대해서도 ‘현재와 미래세대, 그리고 생태계에 대한 책임’이라는 원칙이 관철되도록 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행동지침은 다음과 같다. 한스 요나스의 말이다.

  • “너의 행위의 효과가 지구 상에서 진정한 인간적 삶의 영속과 양립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Handle so, daß die Wirkungen deiner Handlung verträglich sind mit der Permanenz echten menschlichen Lebens auf Erden)”(Jonas, 1984).

Notes

1)

‘온존’은 ‘well-being’의 필자 번역어이다. 구체적으로 ‘온전(穩全)’하게 ‘존재(存在)’함을 말한다.

References

1 

Jonas H. (1984). Versuch einer Ethik für die technologische Zivilisation. Frankfurt: Suhrkamp. 이진우 옮김, 『책임의 원칙: 기술시대 생태학적 윤리』, 서광사 1994., Das Prinzip Verantwortung.

2 

양 해림. (2013). 한스 요나스의 생태학적 사유읽기: 책임의 원칙 독해. 대전: 충북대학교출판문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