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의료보험 30년 역사가 주는 교훈

What the 30 Years of History of National Health Insurance Tells Us

올해 7월 1일은 전국민의료보험 시행 30주년이다. 이를 계기로 전국민의료보험의 성과와 향후 과제에 대한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 중 가장 인상적인 것 중 하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의뢰해 이루어진 최근 여론 조사 결과이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우리 국민들의 건강한 삶에 ‘도움이 되었다’는 응답이 82.0%를 차지하였고, 우리 국민 10명 중 8명 이상이 지난 30년간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가 ‘향상되었다’고 응답하였다고 한다(국민건강보험공단, 2019).

객관적인 수치가 보여주는 전국민의료보험의 현주소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이 이루어낸 성과를 굳이 폄훼할 필요는 없지만, 객관적인 수치가 보여주는 평가는 많이 다르다. 무엇보다 전국민의료보험이 실시된 지 어언 3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보장률이 6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치명적이다. 이는 OECD국가평균 80%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이다. 더욱이 이렇게 낮은 보장률은 10%에 달하는 의료 미충족률(김소애 등, 2019)과 4%에 달하는 재난적 의료비 지출 가구(우경숙 등, 2018)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는 실로 국제적으로 부끄러운 지표이다. 이들 지표들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건강권의 훼손과 직접적인 삶의 고통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보험료 미납 등의 이유로 의료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400만 명의 문제를 더하면 ‘전국민의료보험’이라는 표현이 무색해진다.

건강보험 보장률 70%를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2017년 8월에는 ‘건강보험보장성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이후 ‘대학병원 선택진료비 폐지’, ‘종합병원이상 상급병실료, MRI, 초음파 등에 대한 단계적 급여화’, ‘노인 틀니 및 임플란트 부담 경감’, ‘15세 이하 입원진료비 본인부담률 인하’ 등 다양한 보장성 확대정책이 시행 중이다.

얼마 전 전국민의료보험 30주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2주년 성과보고대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그간의 노력으로 건강보험 보장률이 현재 집계가 가능한 종합병원 이상으로만 보면, 2016년 62.6%에서 2018년 67.2%로 크게 높아졌으며, 이런 보장성 강화 정책에 따라 2018년 1월부터 2019년 4월까지 국민의료비 지출이 총 2조 2천 억 원 절감되었다고 발표했다. 또한 임기 내에 전체적인 보장률을 70%까지 높이겠다고 약속했다(문재인, 2019).

보장성 강화라는 점에서 이러한 성과는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우려도 있다. 우선 과연 임기 내에 건강보험보장성 70%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연설에서 제시한 ‘종합병원급 이상’ 건강보장률 지표는 전체 보장률 지표가 아니다. 2017년 이 지표가 64.4% 수준일 때, 전체 건강보험 보장률은 62.7%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장성 강화 정책은 손쉬운 정책위주로 진행하는 일종의 ‘낮은 가지 열매 따기 정책’으로 곧 그 정책들이 고갈될 것이다. 또한 장기 저성장 국면과 급속한 고령화 속에서 지속 가능한 건강보장체계 구축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지불보상체계 개편, 일차의료 중심의 의료서비스 제공 체계 구축, 공공보건의료부문의 질적 양적 강화 등의 구조적 전환 작업은 아직 본격적인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규제샌드박스법, 원격의료, 영리유전자검사, 최근에는 건강관리서비스 등 핵심적인 의료영리화 조치들이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는 상황은 의료서비스의 불필요한 이용과 의료비 증가를 야기할 것이다. 이럴 경우,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는 요원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미래 복지사회의 전제 조건이라 할 수 있는 ‘의료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개혁 과정은 보험료나 세금의 인상, 의료서비스 이용 관행의 변화 등 전적으로 국민들의 동의와 지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정부의 ‘건강보장 강화 정책’의 로드맵에는 가장 중요한 국민의 참여와 동의 과정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것이 전국민의료보험 30주년을 맞아 그 역사가 이루어낸 일부 성과에도 불구하고, 자축만 하고 있을 수 없는 이유이다.

전국민의료보험 30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이유

전국민의료보험의 30주년은 새로운 30년 미래를 설계하는 해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지난 30년 동안 반드시 이뤄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장성 강화정책을 이루어내지 못한 이유를 점검하고, 그러한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의지를 가다듬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과 사용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솔선수범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 시민단체들은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이의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의료보험 통합 당시 지역가입자에 대한 국고지원 약속을 계기로 1992년 36.1%를 지원한 이래 국고지원은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18년 현재는 13%대로 떨어졌다. 이는 일본의 46%, 대만의 33%(시행 예정)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치이다.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정부의 국고지원액의 확대는 건강보험 재정의 안정화뿐만 아니라 상병수당 등을 포함하여 OECD국가 평균수준까지 보장수준을 높이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또한 의료보장체계에서 정부의 리더십과 책임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향후 국민건강보험의 대폭적인 보장성 확대와 지속 가능한 운영체계 구축을 위해 정부의 책임 확대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개혁의 전 과정에서 그 중심에 국민들을 앉히는 작업이다. 1977년 의료보험의 시행과 1989년 전국민의료보험의 시행이 ‘정치적 정당성 확보(legitimation)’를 위한 정치권력의 결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 설명하는 이들이 있으나(Kwon, 1998), 의료보장의 역사를 좀 더 긴 안목에서 바라보면, 상호부조의 정신에서 출발한 ‘두레’의 전통과, 1928년 ‘원산노동병원’과 1968년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의 설립 운영이 보여주는 노동자와 지역 주민들의 자조적 연대 운동이 그 골간 흐름에 자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의료보장체계의 연대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10년 넘게 분투한 의료보험통합운동, ‘암부터 무상의료’ 운동과 같은 의료보험 보장성 강화 운동 등 노동·시민사회의 치열한 노력으로 현재 이 만큼의 결실이라도 만들어 낼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신영전, 2010; 신영전, 2017).

따라서 현 한국의 국민건강보험이 적어도 OECD국가의 평균 수준인 80% 이상의 보장성을 확보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안전망으로 든든하게 서기 위해서는 재정, 공급, 지불체계 등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포괄적인 개혁이 필요하고 그러한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민건강보장제도가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제도가 될 수 있도록, 기존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건의료기본법), ‘사회보장위원회’(사회보장기본법),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국민건강보험법) 등을 비롯한 의사결정 구조 전반의 개혁을 통해 국민들이 실질적인 주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국민건강보험의 거버넌스 체계를 우선적으로 전면 개편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지난 30년의 전국민의료보험 역사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교훈이며, 이러한 성찰이 전국민의료보험 30주년을 다시 돌아보는 이유가 되어야 할 것이다.

References

1 

국민건강보험공단. (2019). 전 국민 건강보장 30주년 보장성 강화 2주년 국민인식조사. 원주: 국민건강보험공단.

2 

김소애, 서영원, 우경숙, 신영전. (2019). 국내 미충족 의료 현황 및 영향요인 연구에 관한 체계적 문헌고찰. 비판사회정책, 62, 53-92.

3 

문재인. (2019. 7. 2.).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2주년 성과 보고대회 모두발언. 2019.7.2.. 서울: 청와대.

4 

신영전. (2010). 건강보험 통합 쟁취사. 월간 복지동향, 141, 4-8.

5 

신영전. (2017). 한국의료보장의 기원을 찾아서: 일제 식민지기 [원산노동병원]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사회보장학회 정기학술발표논문집, 2017(1), 349-377.

6 

우경숙, 박찬미, 신영전. (2018). 재난적 의료비 지출이 가구의 빈곤화에 미치는 영향: 재정적 대응의 매개효과를 중심으로. 보건경제와 정책연구, 24(2), 25-57.

7 

Kwon H. (1998). The welfare state in Korea: the politics of legitimization. New York: Sprin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