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단원고 생존자의 외상 후 성장

Post Traumatic Growth of Survivors of Danwon High School in the Sewol Ferry Disaster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understand the life after an accident and post-traumatic growth process and experience of the Danwon High School students who survived the Sewol Ferry tragedy. The following are the sub-categories derived from the thematic analysis results: “unforgettable memories”, “the pain of the survivors”, “back to unfamiliar normal daily life without our friends”, etc. The high categories were determined as “to shoulder the pain of life and death”, “to change my daily life because of different relationships” and “to move forward in the world with the name of survivor” It was shown that disaster victims who survived from disasters during adolescence experienced various difficulties related to adolescent development tasks with trauma. However, their post-traumatic growth was differentiated according to individual internal characteristics and environmental factors. It was therefore necessary to discuss intervention and support measures taking youth development tasks and personal characteristics into account. It was also confirmed that trauma symptoms could worsen over time. Hence, the necessity for a psychological support service plan considering the individual recovery status of disaster victims will arise later on. Lastly, in the process of recovering from disasters, family and social support acted as important protection factors for victims. It is necessary for social workers to play roles as advocates who can draw support and social support for strengthening family resilience.

keyword
Sewol Ferry DisasterSurvivors of Danwon High SchoolPosttraumatic GrowthQualitative Research

초록

본 연구의 목적은 세월호 참사 단원고 생존자의 사고 이후의 삶과 외상 후 성장 경험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떠한지 질적 연구방법인 사례연구를 통해 이해하고자 하는 데 있다. 주제별 분석 결과에서 도출된 하위범주는 ‘잊을 수 없는 기억’, ‘살아남은 자의 고통’, ‘친구들 없는 낯선 일상으로의 복귀’ 등으로 나타났으며, 상위범주는 ‘생(生)과 사(死)의 고통을 짊어짐’, ‘달라진 인간관계, 달라진 일상, 달라진 나’, ‘생존자라는 이름과 함께 세상 속으로 나아감’이다. 청소년기에 재난을 경험한 재난피해자는 트라우마와 함께 청소년기 발달과업과 관련한 다양한 어려움을 경험하였으나 개개인의 내적특성과 환경적 요인에 따라 차별화된 외상 후 성장이 나타났다. 이에 청소년 발달과업 및 개인적인 특성을 고려한 개입 및 지원방안 관련 논의가 필요하다. 또한, 트라우마 증상은 시간의 경과와 상관없이 악화 될 수 있음으로 개별적인 회복 상태를 고려한 심리지원 서비스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재난피해자의 회복과정에서 가족과 사회적 지지가 중요한 보호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따라서 사회복지사는 가족 레질리언스 강화 및 사회적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옹호자로서의 역할수행이 필요하다.

주요 용어
세월호 참사단원고 생존자외상 후 성장질적연구

Ⅰ. 서론

세월호 참사는 세월호가 침몰하는 과정을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희생자를 구조하지 못하여 국가 전체에 트라우마를 남긴 참사이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외상은 대인 외상이나 자연재해에 의한 외상이 아닌 인재로 피해자와 가족들, 사고에 연관된 사람들에게 신체적인 상해는 물론 심리적 외상으로 장기간 고통을 줄 수 있다(임정선, 2016). 이중 희생자의 대부분이 단원고 학생이었기에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생존자들은 외상에 따르는 고통과 함께 청소년기의 발달과업을 이뤄야 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단원고 생존자들은 대학생활을 하거나 군복무를 하는 등 성인으로 가는 과도기 적인 단계에 있기에 본 연구는 단원고 생존자들이 외상을 경험하고 어떻게 외적・내적인 성장을 이루어가고 있는지에 관심을 두고자 하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단원고 생존자들은 어떻게 일상의 삶을 마주하며 성장해 가고 있는지 탐색하고 이를 통해 재난을 경험한 청소년들의 트라우마 극복과 외상 후 성장 및 청소년기 발달과업을 이루는데 필요한 사회 복지적 함의는 무엇인지 살펴 보고자한다.

세월호 참사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8분경 대한민국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관매도 서남방 약 2.7km)에서 청해진 해운 소속의 인천 발 제주행 연안 여객선 세월호가 전복되어 침몰한 사고이다. 이 사고로 탑승인원 476명 중 295명이 사망하고 172명이 생존하였으며 5명이 미 수습 되었다(국민안전처, 2018). 172명의 생존자 중 당시 단원고등학교 2학년 생존학생은 75명이다(국가재난정보센터, 2014).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연구용역보고서(2016)에 따르면, 단원고 생존자들은 사고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완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신경정신과적 증상들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악몽과 가위눌림으로 인한 수면장애, 불안장애, 폐쇄공포증, 강박, 분노조절장애, 과각성 증상을 복합적으로 겪고 있었으며 회피, 둔감화 현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하였다(김승섭 외, 2016). 또한 사고당시의 신체적 부상으로 인해 허리통증과 목 디스크 등의 질병을 앓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편두통, 피부병, 아토피 등의 증상을 경험하며 신체적으로도 고통을 겪고 있었다(김승섭 외, 2016). 이와 같이 재난을 경험한 피해자들 대부분은 다양한 심리적・신체적 문제를 겪게 된다. 일반적으로 재난 피해자는 충격적 사건 직후에 다양한 스트레스 반응을 경험하며, 이러한 반응은 상당기간 지속되다가 점차적으로 감소하게 되지만 일부 피해자는 시간이 지나도 심각한 고통 반응을 보인다(정진은, 2015).

그러나 외상을 겪었다고 해서 모두가 정신건강에 영향을 받거나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Waite & Shewokis, 2012). 오히려 외상과 같은 높은 삶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하기도 하는데, 이를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라고 한다(Tedeschi & Calhoun, 1995). 외상 후 성장은 외상사건과 투쟁한 결과 긍정적 심리적 변화를 보고하는 개인의 주관적 경험(Maercker & Zoellner, 2004)으로 정의되며, 외상사건 이전의 적응 수준이나 심리적 기능 수준, 또는 자각 수준을 넘어서 외상경험 이전과 질적으로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긍정적 변화를 의미한다(김영애, 최윤경, 2017). 단원고 생존자들 가운데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진로를 변경하고, 기존의 인간관계를 넘어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확장하고, 삶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거나 봉사활동 하는 등 이타적인 활동에 관심을 갖는 경우도 있었다(김승섭 외, 2016).

최근 국내에서 재난피해자 또는 외상경험자들에 대한 연구가 조금씩 진행되고 있는데 주로 외상사건 자체 및 외상 후 스트레스에 관한 연구(오혜영, 안현의, 김은영, 2011; 정지선, 2008),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주는 요인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가 대다수이다(박은혜, 이민규, 2016; 심서영, 손영우, 박상현, 윤지원 , 2016; 유명란, 최선영, 한혜리, 서유미, 노명인, 2015, 송송희, 2018).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는 유가족 또는 간접피해자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김은미, 김병오, 2018; 신나라, 2015; 이나빈 외 2017; 이동훈, 신지영, 김유진, 2016), 세월호 생존자 및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는 2016년도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진행한 실태조사가 유일하다.

제한적이지만 청소년의 외상경험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정체감이 형성되고 있는 청소년기에 경험한 외상사건은 성인에 비해 생물학적으로 더 큰 영향을 받게 된다(McCormick et al., 2010). 청소년의 외상경험은 신체적・정서적 발달 관련 및 가정환경, 학교생활, 또래 관계 등 성인과는 다른 요인들이 관련되어 나타난다(김현미, 정민선, 2014). 국내 청소년 외상 후 성장 관련 연구는 대부분이 대인 외상 또는 간접외상에 관한 연구이다. 청소년의 외상 후 성장 과정에 대한 경로가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로(김보라, 신희천, 2010), 청소년이 외상 후 경험하는 긍정적인 요소를 밝히는 연구가 필요하다. 따라서 청소년기에 세월호 참사라는 재난을 경험하고 초기 성인기를 맞이한 단원고 생존자들에게 어떠한 긍정적인 변화 즉, 외상 후 성장이 일어났는지 그 경험을 심층적으로 탐색하는 것은 추후 재난에 대한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대응체계 마련과 피해자 지원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성장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 경과가 반드시 필요할 뿐만 아니라 시간경과에 따른 자연스러운 성장의 측면도 혼재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성장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김영애, 최윤경 2017). 외상 후 성장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성장을 지향하는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서 이루어지므로 경험의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유정, 최남희, 2015). 외상 후 성장이란 개인이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고유한 현상이므로 실증적 연구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질적연구방법을 통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왔다(김지경, 장현아, 2014). 이에 본 연구는 세월호 참사를 경험한 단원고 생존자들의 4월 16일 당일의 탈출경험, 사고 이후의 병원 생활, 연수원 및 학교에서의 경험과 대학생활 경험 속에서의 긍정적인 변화를 시간의 흐름에 따른 상황적 맥락 속에서 탐색하고, 단원고 생존자들의 외상 후 성장 경험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사회복지적 함의를 제시하고자 한다.

Ⅱ. 문헌고찰

1. 외상 후 성장 개념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 PTG)이란 인간이 살아가면서 충격적이고 심각한 외상사건을 경험한 이후 이에 대처하고 적응해가는 과정에서 개인이 경험하게 되는 긍정적인 변화를 의미한다(Tededschi & Calhoun, 1995, 2004). 또한 외상사건 이후 개인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심리기능이나 적응 수준을 넘어선 발달과 이를 지각하게 되는 긍정적인 심리변화를 말한다(Maercker & Zoellner, 2004). 이러한 성장의 개념은 단순히 외상 이전의 적응 수준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수준을 뛰어 넘는 변형과 기능에서의 질적인 변화를 포함한다(Tededschi & Calhoun, 1996). 외상 후의 긍정적인 삶의 변화는 외상 후 성장이라는 용어 이외에 스트레스 관련성장(Stress-related growth), 긍정적인 산물(Positive by- products), 역경을 통한 성장(Adversial growth)등의 다양한 용어로 설명되어왔다(양귀화, 김종남, 2014).

Tededschi와 Calhoun(1996)은 외상 후 성장의 주요개념을 자기 자각의 변화, 대인관계의 변화, 마지막으로 인생관의 변화라는 세 가지 범주로 설명하였다. 첫 번째인 자기 자각의 변화는 긍정적인 자기 지각의 변화를 경험하는 것으로 외상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강점과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외상 경험의 대처를 통해 이전보다 강해진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과거의 외상사건 뿐 아니라 앞으로 미래에 생길 수 있는 또 다른 외상사건을 극복할 수 있다는 확인을 갖게 된다. 대인관계의 변화는 인간이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상호지지적 관계 안에서 살아간다는 인식의 증가이다. 외상 이전에는 시도하지 못했던 자기 노출을 통해 감정의 해소와 타인으로부터의 수용을 경험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받게 되기도 한다. 이를 통해 대인관계에서 나타나는 긍정적인 변화는 친밀감,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증가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감사와 실존적인 자각이 증가하는 등의 인생관의 변화가 있다. 이전에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으로부터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기도 하며, 종교나 영적인 세계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다. Tedeschi와 Calhoun(1995)에 따르면, 외상사건으로 인한 고통이 클수록 영적이고 실존적인 변화의 기회 또한 커진다고 한다. 죽음과 삶, 선택 등의 실존적 문제들은 외상을 경험한 개인에게 특별한 의미가 된다.

이러한 외상 후 성장은 외상 그 자체로 성장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외상경험 이후의 대처하는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박신애, 최옥채, 2018). Tedeschi와 Calhoun(2004)은 외상 후 대처를 통해 성장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먼저 외상사건을 경험한 개인은 정서적 고통의 조절이 어려워지고 기존 삶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후 외상경험에 대한 자동적인 반추가 일어나는데 이것을 조절 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면 인지적 숙고 단계에 이르고 나아가 대안적인 신념을 떠올려 적응과 성장을 이루고 결과적으로는 삶의 지혜를 쌓게 된다는 것이다(양귀화, 김종남, 2014). 여기서 중요한 인지과정인 의도적 반추라는 개념은 외상사건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반복적이고 의도적으로 되새김질 하고 탐색하는 과정으로 외상경험자는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합하고 재구성 할 수 있게 되어 궁극적으로 이전보다 성숙한 삶을 살아가게 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외상 후 성장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Tedeschi & Calhoun, 2004).

이외에도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는 자아탄력성, 삶의 의미, 사회적지지, 자기효능감, 회복탄력성, 심리적 유연성, 심리적 강인성, 낙관성 등 다양한 변인들이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밝혀졌다(김정옥, 윤재호, 2017; 신선영, 정남운, 2012; 양귀화, 김종남, 2014; 유명란 외, 2015; 윤명숙, 김남희, 2013; 전영미, 고현미, 2019). 그러나 이러한 외상 후 성장 모형은 외상 후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설명이나 경험적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김영애, 최윤경, 2017). 또한 외상 유형이나 치료적 개입에 따라 회복기간이 달라지고 외상 후 성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김영애, 최윤경, 2017). 따라서 외상 후 성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외상 후 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어떠한 경험을 하는지 상황적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재난피해자와 외상 후 성장관련 선행연구

현대 사회에서 재난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각 개인이 재난 사건을 접할 위험의 증가로 인해 재난피해자에 대한 연구들이 이전에 비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전의 우리나라 대형 재난사고 피해자들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삼풍백화점 붕괴와 성수대교 붕괴로 인한 피해자(생존자와 유가족 포함)들은 사람을 기피하고 소극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등의 심리적 문제가 심각하였으며, 대구지하철참사의 생존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원 직장을 이탈하였거나 직장생활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어떤 이들은 심각한 우울 증상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보이기도 하였고, 이러한 결과들은 궁극적으로 가족갈등 및 해체의 계기가 되어 사회적 간접비용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되었다(최남희, 2006). 자연재난을 경험한 피해자들과 재난상황에 대응한 공공기관 재난대책 담당자, 민간기관의 지원자들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심리사회적 영향에 대해서 대부분 간과되어 개입이 이루어지지 않아 사건이 발생한지 1년이 지난 연구 시점에서도 여전히 심리사회적 고통을 겪는 이들이 많이 있었으며, 재난사건 발생으로 인한 공공기관 담당자들과 민간단체 지원자들 또한 격무에 시달리며 스트레스와 과로 등 축적된 신체・심리적인 어려움들이 많다는 것이 밝혀졌다(이현주, 권지성, 2015). 이처럼 재난 또는 재난피해자에 관한 연구 대부분은 재난의 경험으로 인한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증상을 야기하는 요인들을 규명하거나 심리적 부적응에 관한 연구가 대다수였다.

1990년대에 와서 다양한 위기 상황에 처했던 사람들이 그들의 삶에 있어서 중요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했다는 증거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많은 연구자들이 그들이 외상을 대처하는 과정에서 성장을 경험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제를 다룬 체계적 연구들이 상당히 많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Tedeschi & Calhoun, 2004). 재난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외상 후 성장에 대한 경험적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 연구들에서는 재난사건 이후에 새로운 일에 대한 가능성,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의 변화, 개인적 역량의 증가, 삶에 대한 감사, 영적인 세계의 확장 등의 긍정적인 변화를 보고하였다.

이렇게 외상을 경험한 개인들이 긍정적 변화를 경험하고 원래의 삶으로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긍정적 변화와 긍정적 변화를 촉진시키는 요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들도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유명란 외(2015)는 재난피해자들의 외상 후 성장에 어떤 요인들이 영향을 미치는지 검증하였는데 연구결과에 따르면 낙관성, 자아탄력성 등의 긍정심리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서희주(2019)는 포항 지진피해 성인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외상 후 성장에 미치는 매개효과를 확인하였는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지진노출 정도와 외상 후 성장 간에 완전매개(full mediation) 효과를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지진피해 노출정도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영향을 주어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미치도록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주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네팔 지진피해자의 심리사회적 변화와 외상 후 성장 요인에 관해 연구한 황혜리와 라영안(2018)에 의하면, 지진 사고 이후 긍정적 변화와 부정적 변화가 나타났는데 긍정적 변화는 내적인 변화와 사회적 변화로 분류되었고 부정적 변화는 정서, 신체, 사회, 행동적 변화로 분류되었다. 또한 지진 관련 외상 후 성장 요인으로는 개인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으로 구분되었는데 개인적 요인은 몰입과 신앙으로, 환경적 요인은 타인의 공감과 사회적 지지로 분류되었다.

최근 재난피해자를 위한 심리사회적 지원이 증가함에 따라 사회복지 실천현장에서도 클라이언트의 회복을 위한 외상 후 성장을 촉진시키는 방법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이에 본 연구자들은 재난 피해자중 재난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생존자들이 외상 후 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어떠한 경험을 하는지에 초점을 두고자 하였다. 이에 재난을 경험한 세월호 단원고 생존학생들의 외상 후 성장 경험에 대해 깊이 있게 탐색해 봄으로써 외상 후 성장을 지원할 수 있는 사회복지적 개입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Ⅲ. 연구방법

1. 질적 사례연구

본 연구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단원고 생존자들의 외상 후 성장 경험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질적 연구 방법의 하나인 사례연구 방법을 선택하였다. 사례연구란 시간의 경과에 따라 하나의 경계를 가진 체계 즉, 하나의 현상이나 맥락 내에서 사례를 탐색하고 다양한 정보원천을 포함한 심층적인 자료를 수집하여 사례에 대한 기술과 사례에 대한 주제들을 보고하는 것이다(Creswell, 2013). 여기에서 사례란 특정한 인물, 집단일 수도 있으며, 조직이나 기관, 프로그램이나 사회적인 현상일 수 있다(유기웅, 정종원, 김영석, 김한별, 2012). Yin(1994)은 사례연구는 경험적인 연구라고 설명하며 사례연구의 초점은 하나의 현상과 그 현상을 둘러싼 상황을 뚜렷하게 구분할 수 없는 경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실제 삶의 맥락 안에서 그 사건들을 바라봐야 하며 복잡한 사회적인 사건을 연구하는 데 적합하다고 하였다.

단원고 생존자들은 세월호 참사라는 공통된 외상을 경험 하였지만 진로, 또래관계, 가족관계, 가치관과 신념 등의 변화를 각각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하고 있었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저마다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러한 연구 참여자들의 모습은 이들이 처한 각 상황과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여 이해해야만 하는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질적 연구 중 사례연구 방법이 이를 살펴보는 데 효과적이라고 판단하였다. 이에 연구 참여자의 세월호 참사 당일의 경험, 병원 및 연수원 생활, 학교생활, 대학생활을 시간 경과에 따라 외상 후 성장이 어떻게 개인의 삶 속에 투영되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2. 연구 참여자

본 연구를 위한 연구 참여자의 선정은 세월호 참사 단원고 생존자 75명 중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에 사례관리대상자로 등록되어 2015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한 사례관리를 받고 있는 단원고 생존자 중 아래와 같은 선정기준에 따라 총 7명의 연구 참여자를 모집하였다. 첫째, 세월호 참사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왔으며 현재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단원고 생존자로서 인지 및 지적능력에 문제가 있거나 현재 정신과 약물을 복용 또는 치료 중인 경우를 제외한 사람이다. 둘째, 지난 6개월 이내에 PTSD Scale(은헌정, 권태완, 이선미, 김태형, 최말례, 조수진, 2005)상 정상군 범위에 해당하고, 외상 후 성장 척도(K-PTGI) 검사(송승훈, 김교헌, 권선중, 이홍석, 2006)에서 사례관리 등록 대상자의 평균보다 높은 점수를 보고한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의 목적을 이해하고 자율적으로 참여에 동의한 사람으로 하였다. 이러한 기준을 통해 모집된 연구 참여자의 일반적 특성은 대학생과 군복무를 하는 사례와 군복무의 경우 공익근무와 의경으로 복무하는 사례로 차이가 있었다. 현재 대학의 전공은 언론가, 사회복지, 경찰행정 등 각 연구 참여자별로 상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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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연구 참여자의 인구사회학적 특성
연구 참여자 A B C D E F G
성별
직업 대학생 공익근무 대학생 대학생 대학생 대학생 의경복무
전공 언론홍보 영상 벤쳐 중소기업 패션학과 태권도 미디어 사회복지 경찰행정

3. 자료 수집

본 연구의 자료 수집 기간은 2018년 12월 10일부터 2019년 2월 28일까지 이며, 연구 참여에 동의한 7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담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였다. 연구자 1인은 정신건강사회복지사로서 세월호 참사 생존자들에게 서비스를 지원하는 팀에서 근무하며 단원고 생존자들이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신뢰관계를 형성해 오고 있었다. 이러한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연구 참여를 위한 자발적 동의를 받을 수 있었으나 담당사회복지사와 클라이언트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인 문제를 배제하기 위해 연구자가 직접 사례관리를 제공하지 않는 연구대상자만을 연구대상자로 선정하였다. 또한 심층면접은 클라이언트와 사회복지사로서 형성된 선 이해와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하여 질적연구의 경험이 풍부한 사회복지학 박사 과정 생 1인과 함께 연구자 2인이 면접을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 연구자가 참여자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 생각하여 답변을 예상하고 추가적인 질문을 안 하거나 연구 참여자도 연구자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 생각하여 답변을 안 할 수 있는 문제를 보완하도록 하였다.

심층 면담은 연구 참여자 한 명당 새로운 진술이 발견되지 않는 포화시점까지 1-2회씩 2시간 정도 진행하였다. 6번째 연구 참여자의 진술 이후부터 성장과 관련한 의미 있는 내용이 반복되는 것이 발견 되어 자료가 포화되었다고 판단하여 7번째 심층면접 이후 자료 수집을 종결하였다. 심층 면담은 참여자들이 선호하는 날짜와 장소로 정했으며 비밀이 보장될 수 있는 외부 스터디룸, 카페 등 조용하고 독립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심층 면담은 참여자의 동의를 얻어 녹음하였고, 외상경험 및 외상 후 성장과 관련된 ‘사고 이후의 친구와 가족은 어떠한 의미인가요?’, ‘장래희망(학과입학)을 결정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사고이후에 신념이나 가치관이 변화하였는지, 그랬다면 지금까지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나요?’등의 반 구조화된 개방형 질문지를 사용하여 진행하였다.

연구의 윤리적 문제를 고려하기 위해 소속 기관의 생명윤리 위원회(IRB)의 승인을 받고 생명윤리 위원회의 윤리기준에 따라 연구를 수행하였다(승인번호 ewha-201812-0010-01). 연구 참여자들은 현재 PTSD Sacle(은헌정 외, 2005)에서 정상군에 속하며 자발적으로 연구 참여에 동의 하였지만 매우 심각한 외상사고를 경험했으며, 사고의 원인과 수습과정이 아직까지 사회적인 문제로 남겨져 있어 후유증 발생 여지가 남아있을 수 있다. 따라서 연구 참여자를 최대한 배려하였으며 심리적인 상태를 고려하도록 하였다. 연구도중 언제든지 연구 참여를 철회 할 수 있다는 사항과 심리적으로 불편함을 느꼈을 때 전문가로부터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내하였다. 연구 참여자 사생활 보호를 위해 민감한 사항에 대해 익명 처리하였으며 비밀보장을 원칙으로 하였다.

4. 자료 분석

본 연구에서는 자료 분석 방법으로 시간의 경과에 따라 하나의 경계를 가진 체계를 탐색하고 심층적인 자료를 수집하는 Creswell(2013)의 연구 참여자별 분석과 연구 참여자간 분석을 활용하여 참여자별 경험 기술과 경험에 기반 한 주제들을 보고하고자 하였다. 구체적인 분석 절차로는 연구자 2인이 자료수집과 동시에 면담이 끝난 후 녹음한 자료를 있는 그대로 필사하였고, 필사된 내용과 녹음한 자료를 번갈아 가며 비교하며 자료의 누락이나 오기를 방지하고자 하였다. 또한 녹음된 자료를 듣거나 필사된 내용을 반복적으로 읽으면서 줄 단위 분석을 통해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며 시간 순서대로 재배열하였다. 이를 통해 원 자료를 구성하여 연구 참여자들의 외상 후 성장 경험에 대한 개별적 사례를 재구성하며 각 사례에 대한 의미단위를 분석하였다. 자료수집과 분석과정은 동시에 진행되었으며 이렇게 모든 사례를 분석한 후에는 전체적인 맥락 내에서 다른 사례들과 비교하여 개념 틀의 유사성에 따라 하위주제로 합산하여 범주를 분류하였다. 마지막으로 사회복지학 교수와 연구자 2인이 각 의미 단위들과 하위 주제를 포함할 수 있는 중요한 맥락을 찾아 하위범주 및 상위 범주의 주제어를 도출하였다.

5. 연구의 엄격성

본 연구에서는 Guba와 Lincoln(1981)가 제시한 사실적 가치(True Value), 적용가능성, 일관성, 중립성의 4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연구의 신뢰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사실적 가치(True Value)를 위해 연구자는 면담 이후에 의문이 드는 내용에 대해서 연구 참여자와 전화통화 또는 문자 메시지를 통해 내용을 재확인하였다. 적용성(Applicability)을 고려하여 연구자는 대상자가 세월호사고 단원고 생존자로서 자신의 경험을 풍부하게 전달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두었으며, 성별, 직업, 전공 등 다양한 인구학적 특성과 함께 PTSD Scale(은헌정 외, 2005)상 정상군 범위에 해당하고, 외상 후 성장 척도(K-PTGI) 검사(송승훈 외, 2006)에서 사례관리 등록 대상자들 평균보다 높은 점수를 보고한 단원고 생존자를 연구대상자로 선정하였다. 또한 연구결과가 연구 상황 이외에도 적용 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의 직원들에게 본 연구 결과에 대한 의견을 구하고 이를 연구 결과 작성 과정에 반영되도록 하였다. 일관성(Consistency)측면을 높이기 위해 면담 내용을 모두 녹음하고 녹음 내용을 여러 번 청취하며 연구 참여자가 표현한 언어를 있는 그대로 녹취록으로 작성하였다. 또한 본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단원고 생존학생 2인에게 연구결과에 대한 의견을 구하여 연구자의 서술과 해석이 생존학생의 경험과 일치하는지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중립성(Neutrality)을 위해 본 연구자는 인터뷰 과정에서 연구자의 선 이해와 반응이 연구 참여자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연구자 2인이 함께 참여하여 중립적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자료 분석 과정이 논리적이고 객관적인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사회복지학 교수 1인의 자문과 동료집단의 조언 및 지지를 받아 이를 연구결과에 반영하였다.

Ⅳ. 연구결과

1. 사례 내 분석

가. 참여자 A

연구 참여자 A는 세월호 참사 이전에 자신을 부정적이고 지나치게 솔직하고 비판적이었던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참여자 A는 세월호 참사 당일 죽음의 공포 앞에서 유치원 때부터 지금까지의 삶이 스쳐 지나가는 경험하며 필사적으로 배에서 탈출하였다. 배에서 탈출한 후, 참여자 A는 다른 생존자들과 다르게 바로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하루를 집에서 머물렀다. 이 때 언론에서 보도되는 기사들을 접하면서 상황이 심각하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큰 사고가 났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 일로 인해 내 삶이 많이 바뀔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느꼈다. 사망한 친구들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지는 것을 보며 너무 가슴이 아팠다. 사고 첫날 살아나오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앞으로는 희생된 친구들의 이름으로 기부를 해야겠다는 결심 했다고 하였다.

죽음의 문턱까지 직면했던 참여자 A는 ‘나도 언제든지 갑자기 죽을 수 도 있다.’는 생각에 가족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유서로 작성하여 핸드폰에 지니고 다니기도 하였다. 죽음이 가까이 느껴져 ‘내일이라도 가족을 못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족들이 서운하게 행동을 해도 이해하고 용서하면서 생활하였다. 참여자 A는 세월호 참사가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것 같고 참사가 잊히고 있다는 생각에 아버지와 함께 ‘이 사건을 잊지 않고 해결되었으면 좋겠다.’는 의미를 담아 도보행진에 참여하였다. 사고 이후 스트레스로 악화된 아토피성피부염으로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보행진을 하였는데 그 당시 언론과 정치권에서 행사자체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 같아 허무하고 실망스러웠다고 하였다.

참여자 A는 특례입학으로 대학에 입학하였지만 당당하고 싶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입학 당시에 신입생들을 위한 커뮤니티에서 어느 전형으로 들어왔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솔직하게 ‘단원고 특별전형으로 들어왔다’고 하였다. 하지만 커뮤니티 상에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였던 친구가 단원고 특별전형으로 입학하였다는 말을 듣고 싸늘하게 반응하며 참여자 A를 커뮤니티에서 배제시키기 시작하였고, 참여자 A는 ‘내가 사실을 솔직하게 말하면 안 되었나’ 라는 생각에 무서움을 느꼈다고 하였다. 또한 참여자 A는 앞으로 만나게 되는 친구들이 ‘단원고 생존자’라는 편견을 갖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볼까 두려웠다고 하였다.

참여자 A는 중학교 때부터 가장 친했던 단짝 친구의 사망이 사고 후 가장 큰 아픔으로 나타났다. 친구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내는 것과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였다. 사망한 친구의 부모님에게 친구 대신 딸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으로 유가족 앞에 나타날 수가 없다고 했다. 대학에서 새롭게 친구들을 사귀기도 했고 의지할 수 있는 고등학교 친구들도 있지만 마음 한편에 늘 사망한 친구가 있어 그 친구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 만큼의 친구를 사귀는 것이 쉽지 않게 느껴진다고 하였다.

참여자 A는 사고 이후 자신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이타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삶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를 찾기 위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어려운 일이 많았음에도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이겨 낼 수 있었으며 자신 또한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였다. 다양한 봉사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우리가 피해자만이 아니라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스스로의 능력에 자신감도 생겼다고 하였다. 참여자 A는 죽음이 가까이 느껴지면서 ‘내일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평소에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하였다. 본 연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된 동기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재난을 당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하였다. 참여자 A는 일기를 쓰는 습관을 갖게 되었는데 일기를 쓰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미래의 계획을 세우는 것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 앞에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사고 이후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일상생활에서 세월호를 떠올리게 만드는 요소들이 많다고 하였다. 자신은 4시 16분을 보거나 친구 생일인 7월 1일과 관련된 숫자를 보면 아직도 사고 당시의 상황들이 떠올라 마음이 괴롭다고 했다. 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삶 속에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상처가 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나. 참여자 B

연구 참여자 B는 자율성을 강조하는 가정에서 부모님의 지지를 받으며 성장하였으며,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책임져왔다고 하였다. 참여자 B는 세월호 참사 당일 창문으로 컨테이너가 날아가는 것을 목격하며 상황이 심각함을 깨닫고 탈출하기 위해 기울어진 배를 기어 올라갔다. 올라가던 중 학생들이 복도에 있는 것을 목격하고 학생들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구명조끼를 던져주고 어른들과 함께 끈을 만들어 구조작업에 동참하다가 배에 물이 차오르면서 마지막으로 탈출하였다. 참여자 B는 탈출 당시에 굴러 떨어지면서 몸에 상처를 입었지만 친구들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아픈 줄도 모르고 구조 활동을 했다고 당시를 회상하였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참여자 B는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이던 어머니의 친구 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병실에서 오열하는 모습을 목격하였다. 그 모습을 목격한 참여자 B는 머릿속에 전선이 타오르는 느낌을 받아 이 사고와 관련된 일을 무엇이라도 해야겠다고 느껴 자발적으로 생존학생들 중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참여자 B는 연수원에서 생활하는 생존학생들이 하루 중 대부분을 누워서 보내며 무기력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 당시 연수원에는 전문 상담가들 뿐만 아니라 생존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여러 단체들이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그 중 어떤 단체가 참여자 B에게 함께 프로그램을 기획해 볼 것을 제안하였다. 참여자 B는 그 단체 소속의 직원들과 함께 런닝맨, 크라임썬, 음식 만들기, 물총 놀이 등의 프로그램을 함께 기획하여 진행하였고, 친구들이 무기력한 모습에서 벗어나 활력을 되찾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과 함께 스스로에게도 큰 위안이 되었다고 하였다. 특히 연수원 생활동안 받았던 전문 상담보다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단체가 더 도움이 되었다고 하였다. 배가 기울어지고 자신의 상황과 환경이 비정상적인 것을 아는 순간부터는 정상이 되고 싶었고, 세월호 생존자라는 이유로 우리를 ‘자살할까봐 혼자 방에 두지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찍는 것 같아 우리가 괜찮아 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였다.

연수원 생활을 마친 후 학교에 복귀한 참여자 B는 일상생활에서 사소한 일에도 불안이 높아져 강박 증상으로 고통을 겪었다. 특히 집에 문이 잘 잠겼나 30분을 확인하기도 하고, 핸드폰 알람을 설정하고도 알람을 듣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에 시간마다 핸드폰 시간을 확인하기도 하였으며, 버스카드 충전을 반복적으로 하였다. 이러한 증상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어 학교에 상주하던 스쿨닥터에게 치료를 받기도 하였다.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다가올 무렵, 참여자B는 자신을 눈여겨보았던 교장선생님의 권유로 세월호 1주기 추모행사에서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 때 참여자 B는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누가 뭐라고 하든지 우리는 이만큼 컸고 여기까지 와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직접 추모행사를 진행할 팀원들을 뽑고, 안산시내의 다른 고등학교 재학생들과도 협업을 하며, 다른 생존학생들과 밴드부를 만들어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이 때 참여자 B는 추모행사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강박증상이 재발할 정도로 추모제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졌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생기는 친구들’이 있어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하였다. 또한 참여자 B는 추모제 이외에도 학교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가라앉아 있다는 생각에 합창대회를 기획하기도 하고, 매년 열리는 학교 축구대회에 해설을 추가해 축구대회 해설을 주최하기도 하였는데, 이렇게 여러 교내 활동을 하면서 힘든 시간을 묵묵히 견딜 수 있었다고 하였다.

참여자 B는 자신에게 나타난 사고 이후의 가장 큰 변화는 활동적이지도 사교적이지도 않았던 자신이 침체되어 있는 친구들과 학교를 위한 활동을 하면서 개방적인 사람이 되었고, 인생의 위기라고 할 수 있는 큰 문제가 생겨도 잘 극복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하였다. 또한 종교에 관심이 없었는데, 특정 종교는 아니지만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이 생기기도 하였다. 어딘가에 나를 지지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과 함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그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졌다고 하였다. 이 외에도 이전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안전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는데 규정 속도를 무시하고 달리는 버스나 건물에 소화기가 없는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여 안전에 대해 민감해졌다고 했다.

참여자 B 역시 참여자 A와 같이 여전히 사망한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크고 자신이 열심히 생활하는 것만이 이들에 대한 빚을 갚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다. 참여자 C

연구 참여자 C는 세월호 참사 이전에 부모님이 이혼하여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고 부모님과는 관계가 나쁘지는 않았으나 아주 친밀한 관계는 아니었다고 하였다. 참여자 C는 자신의 삶을 생활의 1순위에 두며 스스로를 사랑하며 지내왔다고 하였다. 참여자 C는 세월호 참사 당일 탈출구가 물에 잠기면서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탈출을 위해 잠수하여 기적처럼 탈출구를 찾아 배에서 나올 수 있었다.

참여자 C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친했던 중학교 친구들이 병문안을 오기도 하였는데, 친구들 중에 사고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참여자C를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하였고 이러한 친구들의 반응이 상처가 되었다고 하였다. ‘나는 그대로인데 이 사건으로 인해서 내가 우울하고 불쌍한 사람이 된 것처럼 움츠려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주변 사람들이 자신과 생존자 친구들에게 ‘쟤네들은 저런 일을 겪었으니까 되게 힘들겠지?’라고 생각해 배려하는 행동과 선입견이 너무 싫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참여자 C도 친구들을 두고 나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 ‘너희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사망한 친구들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자신의 삶에 동기가 되었기 때문에 희생된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병원에서의 상담과 달리 학교에 복귀한 후에는 스쿨닥터와 상담을 하면서 힘든 부분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였다. 스쿨닥터 선생님과 관계가 쌓이고 신뢰가 생기면서 어려움을 표현하는 것이 시원하게 느껴졌다고 하였다.

대학에 입학했지만 사회적으로 단원고 생존자에 대한 시선이 좋지만은 않다는 걸 알고 있어 학교생활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하였다. 자신은 숨길수도 없고 지워질 수도 없는 단원고 생존자라는 사실이 가장 부담스러웠다. 특히 병원에서 중학교 친구들을 통해 경험했던 단원고 생존자에 대한 편견이 대학교 친구들에게도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컸다고 하였다. 이 때문에 참여자 C는 대학입학 초기에 단원고 생존자임을 밝히지 않았지만 대학친구들과 신뢰가 쌓여 친구들이 자신의 페이스북이나 세월호 팔찌, 리본 등을 보고 생존자인지 물어볼 때에는 굳이 숨기지 않고 대답하곤 하였다. 참여자 C가 세월호 생존자임을 밝히면 친구들은 주로 ‘전혀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이러한 반응에 대해 참여자 C는 대학 친구들도 생존학생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걸로 보인다고 하였다.

참여자 C는 사고 이후 친구관계의 변화를 경험하였는데, 생존자 친구들에게 느끼는 특별함 외에도 중학교 친구들이 자신을 잃을까봐 두려웠다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나를 위해서 울어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그래도 내가 잘 살았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하였다. 가족관계에서도 무덤덤하신 아버지가 사실은 자신을 위해 걱정하는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아버지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며, 이전보다 더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고 하였다.

참여자 C는 누구보다 자신이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그 감사한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대학생활에서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하였다. 또한 사고가 나고 나서 무기력하고 내 자신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으로만 느껴질 때가 있었는데, 이러한 봉사활동을 통해 도움을 받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스스로 ‘나도 되게 쓸모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였다.

참여자 C는 세월호 사고가 자신에게는 큰 사건이었지만 이 덕분에 사소한 것에 감사하며 부모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되었고,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서 그 사람들의 아픔에도 공감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참여자 C는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 삶을 살아가면서 친구들을 기억하고 싶다고 하였다. 잊고 싶다고 잊을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희생된 친구들에게도 떳떳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였다. 또한 이렇게 지내다 보면 언젠가는 주위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아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단원고 생존학생에 대한 편견이 ‘잘못되었다’라는 것을 꼭 이야기해 주고 싶다고 하였다.

라. 참여자 D

사고당일 참여자 D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배가 기울고 물이 차오르면서 죽음의 위협을 느꼈으며 일반인 생존자들의 도움으로 배에서 뛰어내려 해경 구명정을 통해 배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배에서 탈출한 참여자 D는 탈출 직후에 경험했던 인터뷰가 자신의 신상이 보호되지 않고 인터뷰의 내용도 자신이 말한 내용을 맥락 없이 자극적인 부분만 선별하여 기사화 시키는 것을 경험하며 분노를 느꼈다. 참여자 D는 인터뷰 요청을 위해 연락 오는 기자들을 피해 전화번호도 여러 번 바꿨으나 개인정보를 알아내 지속적으로 연락 하는 언론과 기자들로 인해 ‘어른’과 ‘언론’에 대해 신뢰가 저하되었고 인터뷰요청 등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병원 퇴원 후 연수원에 입소한 참여자 D는 연수원 생활을 ‘함께여서 극복할 수 있었던 시간’으로 기억하였으며, 친구들과 함께 생활한 것이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연수원 생활에서도 불편한 부분은 있었는데, 그 당시에 세월호 참사가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참여자 D는 심리 상담을 받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고 하였다. 특히 참여자 D는 사고 이후에 비현실감과 멍한 상태가 지속되었는데, 상담자들이 오늘의 기분이나 상태 등에 대해서 물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하기 위해 애써야 했던 것들이 가장 힘들었다고 하였다.

연수원 퇴소 후, 참여자 D는 생존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집필활동에 참여하기도 하고 국회까지 도보행진도 참여 하였다. 특히 국회까지 도보로 행진한 것이 가장 감동적인 기억이었다고 한 참여자 D는 그 당시 생존학생들에 대한 편견들이 많았는데 처음에 40-50명 정도였던 시민들의 줄이 점점 끝이 보이지 않게 늘어나는 것을 경험하면서 감사함과 위로를 받았다고 하였다. 학교로 전달되는 일반 시민들이 하나하나 정성들여 만든 선물과 각종 단체에서 보내오는 물품을 통해 얼굴도 모르는 익명의 사람들에 의한 관심을 경험하고 자신도 ‘죽을 때 까지 베풀고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하였다.

반면 희생된 친구의 사촌동생을 사칭해서 생존자 친구들에게 접근하거나 참여자 D나 생존자 친구들이 올려놓은 사진을 도용하여 스스로 단원고 생존자를 사칭하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들로 다양한 고통과 피해가 있었다고 하였다.

특례입학으로 대학에 입학한 참여자 D는 ‘자신을 선택해 준 대학에 대한 감사함을 느껴’ 대학생활을 열심히 하기 위해 노력했고 ‘학생회 활동을 하며 학과에 봉사’하였다고 했다. 자신이 단원고 생존자라는 사실을 대학동기들에게 먼저 이야기하고 세월호 참사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해명하거나 진실을 알려주기도 하였다. 여전히 수상관련 활동에 두려움이 있는 참여자 D를 위해 수상레저 활동과 관련된 수업에서는 수상활동 대신 참관으로 수업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배려를 받기도 하였다. 참여자 D는 세월호 사고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 올바르게 기억할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세월호 3주기에 교내에 세월호 참사 관련 부스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세월호 관련 배지, 팔찌, 스티커, 안내문 등을 나눠주었는데, 2시간 만에 물품이 모두 소진되었고, 동기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움을 주는 것을 경험하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하였다.

참여자 D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의 전환이 있었다고 하였다. 특히 가족들 중에서 오빠가 자신에게 표현 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잃을까봐 두려움에 울고 걱정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어 오빠에게 고마움을 많이 느끼고 서로를 더 배려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사고 이후에 안전에 대한 생각의 변화도 경험하였는데, 특히 우리사회는 사소한 안전교육을 받지 않는데, 안전교육을 미리 받는다면 재난 상황에서 대피나 대처법을 알게 되어 도움이 되었을 것 이라고 하였다. 참여자 D는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친구들을 잊지 말아야지’라는 마음이 크지만 평생 따라다니게 될‘세월호 단원고 생존자’라는 꼬리표에 대한 부담감도 있다고 하였다. 특히 참여자 D는 자신은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세월호 참사를 기억할 수 있는 매개체라고 표현하였는데, 자신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사고를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마. 참여자 E

연구 참여자 E는 대학생활 도중 고등학생 때 있었던 트라우마 증상이 재발하여 다음 학기를 휴학하고 다시 치료를 시작할 예정에 있는 예외적인 사례이다. 아직 치료를 시작하지 않고 계획 중이어서 사례에 포함하였다.

참여자 E는 세월호 참사 당일 3층 갑판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가 기울어지고 물이 차기 시작하자 갑판문이 닫히기 전에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에 배에서 뛰어내려 구조정을 통해 배에서 탈출 할 수 있었다.

참여자 E는 자신이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이기 때문에 자신에는 트라우마가 발병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참여자 E는 단원고에서 방송반 동아리활동을 하며 적극적인 학교생활을 하였는데 함께 활동한 가장 친한 친구를 잃게 되었다. 참여자 E는 혼자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세월호 관련 활동에 몰두하며 상담을 거부하면서 어머니와 갈등이 있었다.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그만큼 치료기간도 길어지게 됐다고 하였다. 참여자 E는 모든 것이 정상이었지만 사고 1년 후부터 사고현장에 대한 반복적인 꿈을 꾸게 되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료를 시작했다. 트라우마는 세월호 1주기, 2주기와 같이 사고 날짜 전후와 희생당한 친구의 생일이 가까워지면 나타나는데 심장박동이 빨라지거나 스트레스성 위염, 스트레스성 두드러기 등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을 느낀다고 하였다.

참여자 E는 친구들의 장례식이나 발인에 참석하지 못하여 친구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 어려웠다고 했다. 지금 되돌아간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보내줄 것이라고 했다. 병원과 연수원 생활은 외부와 차단되어 장례식에도 못가고 뉴스도 보지 못하게 하였다. 그동안 세월호 사고는 유가족 및 미수습자 부모님, 생존자의 부모님, 각종 사회단체, 언론과 정치 등 어른들의 세계가 되어버려 정작 그 사고를 겪은 자신들은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장례식 참석을 금지시킨 병원측에 대한 반감이 있었고 상담도 형식적으로만 느껴졌다고 했다. 각자의 아픔이 다른데, 얼굴도 몰랐던 생존자들과 한순간에 단원고 생존자로 묶여 그룹형태로 앉아 아픔을 나누라고 하는 등의 상담방법이 불편하게 느껴졌고, 당시 생존자 친구들에 대한 신뢰도 적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기 어려웠다고 하였다.

참여자 E는 방송반 이었기에 취재에 관심이 많아 ‘세월호 관련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는데 보도하기에 급급하여 자신이 한 이야기가 꾸며지거나 오보되는 것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진실을 보도해야겠다는 생각에 미디어를 전공하였다. 단원고 특별전형으로 학교를 높여 입학하였기 때문에 ‘성적이 낮거나 뒤처지는 모습이 단원고 학생의 모습’으로 일반화 되지 않도록 더 적극적으로 학교생활에 참여 하였다고 했다. 학과에서는 세월호 사고로 인해 이 과를 선택하게 되었다는 자기소개를 종종 들을 수 있었는데 세월호 사고가 생존자인 자신뿐 아닌 일반인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친 사고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세월호와 관련되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더욱 적극적으로 찾게 되었다고 했다. 4월 16일이 되면 SNS에 글을 올리거나 배경사진에 세월호를 연상할 수 있는 사진을 업로드 하는 등 학과 선후배들에게 단원고 생존자임을 자연스럽게 노출하였다. SNS에서는 ‘단원충’이라고 비난하는 글이 많아 스스로 움츠러드는 경험을 했었는데 실제로 대면하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공감해주고 지지해 주었기에 위로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사고 이후에 우리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안전교육이 부족하다고 느껴졌으며 안전 불감증이 문제라는 주제로 소논문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대학에서 미디어를 공부하면서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넓어졌고 다양한 측면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된 것이 자신이 얻은 가장 큰 성장이라며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아직도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미안함이 있어 자신이 누리는 삶에 대해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이 조심스럽다고 했다.

이혼가정이었던 참여자 E는 가족구성원이 엄마와 언니, 그리고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나 사고로 엄마가 연수원에서 참여자와 함께 지내게 되어 혼자 있는 언니를 돌보기 위해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와 자연스럽게 4명이 가족을 이루게 되는 가족관계의 변화도 있었다.

참여자 E는 완벽하지 않지만 스스로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하였는데, 일기를 쓰기도 하고 가족들에게 담담하게 힘든 티를 내는 것들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다고 했다. 단원고 ‘생존자 친구들도 이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참여자 E는 자신처럼 재난을 겪은 생존자들에게 이러한 아픔을 겪기 위해 자신이 노력했던 방법들을 알려주고 자신처럼 상담에 대한 편견으로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안타까워 상담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바. 참여자 F

연구 참여자 F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배가 기울면서 친구들이 헬기를 타기 위해 기울어진 배를 거슬러 올라가다 다치거나 굴러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겁이나 헬기는 타지 못하고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배가 점점 더 기울면서 배에 물이 들어오게 되었고, 숨을 쉬기 어려운 상황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낀 참여자 F는 비상구를 기억해 기적적으로 물살에 떠밀려서 비상구로 탈출하였다.

참여자 F는 친한 친구들이 모두 사망하였다고 했다. 연수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사고 이전에는 인사만 하고 지냈던 친구들하고 친한 관계를 맺는 것이 부담스럽고 힘들게 느껴졌다고 하였다. 하지만 참여자 F는 연수원 내에서 생존자 친구들과 같은 방을 쓰거나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했으며, 이렇게 친해진 ‘생존자 친구들은 대학교 친구들과는 다르게 마음속의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고 표현 하였다. 특히 세월호 사고를 직접 겪지 않아 제일 가까운 가족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이렇게 불편한 주제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스스로 예민하고 비정상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아 위축되지만 생존자 친구들은 이런 것들을 모두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가장 편한 친구들이라고 하였다.

참여자 F는 초등학교 때부터 상담이나 심리치료관련 직업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연수원 생활 중 다양한 기관을 통해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상담을 받으면서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에 관심이 생겼고 사회복지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업이라는 생각에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특례입학을 통해 대학에 입학한 참여자 F는 입학 이후에 자신이 ‘단원고 생존자’라는 사실을 대학친구들에게 밝히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았지만 속인다는 느낌이 들것 같아 솔직히 이야기 했고 친구들이 자신을 편견 없이 대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고마움을 느꼈다고 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면서 외상후 스트레스에 대해 공부할 때 세월호 사고가 사례로 언급되었는데 한 학생이 생존자와 유가족이 받는 보상이 충분하고 지겹다는 의견을 제시하여 욱하는 마음에 자신이 세월호 생존자라는 것을 오픈했다고 했다. 이후 자신의 욱한 행동이 후회가 되기도 했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 친구들이 자신의 눈치를 보는 것 같고 자신은 그 친구들을 신경 써야 하는 불편함이 생겼다고 했다.

참여자 F는 세월호 사고로 인해 힘든 점도 많았지만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다고 하였다. 사고 이전에는 남동생에게 쌓였던 감정이 많아 한 집에서도 서로 모른 척 하고 살았는데 사고 이후 남동생이 자신을 걱정해 주는 모습을 보면서 서운한 감정이 사라지게 되었다. 사고 이후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면서 부모님이나 남동생이 자신에게 서운하게 해도 화를 내거나 토라지기 보다는 이해하려고 노력한다고 하였다. 또 다른 변화는 현실에 좀 더 가치를 두거나 상담의 경험으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된 것이라고 하였다. 참여자 F는 사고 이후에 안전에 대한 생각도 변화하였는데, 우리나라의 안전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다고 하였다. 특히 비상벨이 오작동하는 경우가 많음에도 정작 화재 또는 재난 상황 등에 대비해서 비상벨이 울리면 어떻게 대피해야할지에 대한 훈련은 잘 되어 있지 않고, 많은 시민들이 안전 불감증으로 비상벨이 울려도 아무도 대피하지 않는데 오작동이어도 대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정말 재난상황에서 잘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였다.

참여자 F는 사고이후 일기를 쓰는 습관을 갖게 되었는데 혼자 하루 일과와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자신이 열심히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 같아 뿌듯하고 삶에 대한 감사도 느낄 수 있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참여자 F는 언론에 의해 유가족과 생존자들이 많은 혜택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아직은 세월호 사고를 기억하고 잊지 말아주기를 모두에게 부탁한다고 하였다.

사. 참여자 G.

참여자 G는 세월호 참사 당일 점점 기울어져가는 배 안에서 바다와 창문이 가까워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고 하였다.

병원에서 퇴원 후 연수원에서 생활한 참여자 G는 오전부터 저녁까지 계획된 프로그램에 맞춰 생활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꼈다. 특히 심리평가나 상담은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불편함이 컸으며, 아직 말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다고 하였다. 참여자G는 연수원 생활이 길어지면서 프로그램이나 상담일정이 줄어들고 학교수업을 병행하기 시작했을 때, 다시 평범했던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아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연수원 퇴소 후 학교에 복귀한 참여자 G는 주변사람들이 자신과 생존자 친구들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동정과 연민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부담스럽고 싫었다고 하였다. 특히 ‘잊고 살아라’라는 말을 주변사람들이 할 때면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화가 났으며, 오히려 덤덤하게 ‘천천히 잊고 살아봐라, 급하게 하지 말고’라고 해준 위로가 가장 도움 되었다고 하였다.

참여자 G는 고등학교시절 세월호 시위에 참여했을 때 경찰들이 교통을 정리해주며 시민들을 위해 책임감 있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경찰행정을 전공하게 되었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경찰 시험 응시에 도움이 되기 위해 의경으로 안산에서 근무하게 된 참여자 G는 부대에서 자신이 ‘단원고 생존자’임을 솔직하게 밝혔다고 하였다. 이로 인해 참여자 G는 세월호 매 주기 때마다 분향소로 출동하는 대신 부대에 잔류하는 등 배려를 받았는데, 함께 근무하던 부대원들이 근무에 대해 불평하여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였다. 가장 힘든 건 보수단체나 추모안전공원 때문에 집회에 동원될 때였다. 이 당시 보수단체나 일반시민들이 세월호 사고나 유가족에게 막말을 하거나 욕설을 내뱉는 것을 목격하여 분노를 느꼈지만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함께 근무하는 부대원들이 먼저 차에 승차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참여자 G는 우연히 희생된 친한 친구의 형과 함께 군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참여자 G가 생존자임이 알려지자 희생된 친구의 형이 참여자 G에게 찾아와 서로 알게 되었고 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말없이 서로에게 친절히 대했다.

참여자 G는 사고 기억이 자꾸 떠올라 힘들었지만 친구들 또는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다닌 것이 사고를 잊는데 가장 도움이 됐다고 했다. 사고 이후 부모님은 공부가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친구들과의 해외여행도 허락해주시고 집에 늦게 들어오는 참여자를 믿어주고 지지해 주셨다. 특히 혼자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끼게 되었고, 무슨 일이 생겨도 부모님이 방패막이 되어줄 것 같다는 생각에 든든하였다. 또한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말하지 못할 고민을 누나에게 상의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것들이 자신이 회복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하였다.

참여자 G는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도 변화하였다고 했다. 죽음의 직전을 경험한 후 삶의 한순간 한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고, 이 때문에 매사에 더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다고 하였다. 또한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던 일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해보니 매사에 조심하고 자신을 아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하였다. 안전에 대한 인식에도 세월호 사고 이전에는 사고에 대해 민감하지 못했는데 하루에도 몇 건씩 일어나는 사망사고와 이에 대비하지 않는 모습에 안전 불감증이 심각함을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참여자 G는 사고를 계기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이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가 넓어지게 되었다고 했다. 자신에게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자산이라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참여자 G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며 모두 다 안타까운 사고지만 세월호를 연평도나 천안함 사건과 비교해서 세월호 사고를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2. 사례 간 분석

본 연구에서는 연구 참여자들의 외상 및 외상 후 성장에 관련한 진술을 분류하고 일치되는 경험들의 공통 주제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의미단위, 하위범주, 상위범주로 범주화 하였다. 그 결과 6개의 하위범주와 3개의 상위범주가 도출되었으며 이를 표로 제시한 결과는 <표 2>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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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2.
세월호 참사 단원고 생존자들의 외상 후 성장 경험 분석결과
범주 하위범주 의미단위
생(生)과 사(死)의 고통을 짊어짐 잊을 수 없는 기억 ‘죽음’의 공포를 느낀 잊을 수 없는 하루
지나친 언론노출로 더해진 상처
비정상으로 보는 시선에 닫힌 마음
살아남은 자의 고통 몸과 마음이 기억하는 트라우마
작은 위험에도 민감한 나
혼자만 탈출하였다는 자책
전하지 못한 작별인사
달라진 인간관계 달라진 일상 달라진 나 친구들 없는 낯선 일상으로 복귀 텅텅 비어있는 자리
따뜻한 위로로 풀어진 마음
힘들다고 얘기해도 괜찮아
사고로 달라진 우리 단단해진 가족이라는 울타리
슬픔과 위로의 공동체
가치 있는 일로 진로 바꾸기
생존자라는 이름과 함께 세상 속으로 나아감 편견과 아픔에 맞서 고군분투하기 양날의 검 ‘특례 입학’
‘단원충’이라는 편견 뛰어넘기
‘생존자’라는 주홍글씨 마주하기
‘있는 그대로’의 내가 받아들여지는 경험
삶의 소중함과 감사함으로 나를 추스름 아픔 속에서 알게 된 괜찮아지는 방법
감사하고 현재에 충실한 삶 살아내기
나를 지탱해주는 주변 사람들
받은 것을 되돌려 주고 싶은 마음

가. 생(生)과 사(死)의 고통을 짊어짐

연구 참여자들에게 세월호 사고로 겪은 죽음의 공포는 평생토록 잊지 못할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았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수많은 친구들이 희생당한 가운데 혼자만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혼돈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을 견뎌야 하는 고통이 이어졌다. 이처럼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연구 참여자들은 세월호 사고로 인해 생존자라는 이름으로 삶과 죽음의 고통을 짊어지게 되었다.

1) 잊을 수 없는 기억
(1) 인생에서 처음으로 느낀 ‘죽음’의 공포

대부분의 연구 참여자들은 세월호 참사 당일 배가 급격하게 기울고 침몰하는 상황에서 배에 물이 들이차거나 창문이 바다와 가까워지는 상황을 목격하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이들은 당시 침몰하는 배에서 살아남기 위해 잠수를 해서 스스로 탈출구를 찾거나 직접 구명정까지 헤엄치기도 하였으며 헬기를 타기위해 기울어진 배에서 호스나 커튼 등을 몸에 묶고 배를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였다. 이러한 공포의 현장에서의 탈출이 지금까지도 참여자들을 괴롭히는 트라우마의 경험이었던 것으로 보였다. 참여자들에게 2014년 4월 16일은 평범했던 이들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제가.. 그때 딱 굴러 떨어지면서 처음으로 방안에 이렇게 된 것이 있는데 그게 창문이었거든요. 저희가 분명 아침에 갈 때는 하늘이 보였는데 보니까 어두운 색깔 있죠? 바다 밑에 심해는 어둡잖아요? 남색 검은색 가까운 그 색깔인거에요. 그리고 머릿속에 죽기 전에 파노라마 스쳐간다고 하잖아요? 그때 그거 처음으로 느꼈거든요. 유치원 때부터 지금까지 삶이 그 몇 초 안에 진짜 다 지나가는 거예요. 그때 처음으로 나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을 했어요.”(참여자 A)

“저는 3층에서 배가 기울어져 있었는데, 갑판 문 바로 앞에 있었는데, 40분인가 대기하다가 해경이 와가지고 문 열고 해경이 바로 뛰어내리라고 해서 다들 뛰어내렸던 것 같아요. 뛰어내리라고 할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뛰어 내렸고 뛰어 내리기전 10분정도가 제일 무서웠던 것 같아요. 왜냐면 바다와 창문이 가까워지는 게 보여서 그때가 제일 무서웠던 것 같아요. 보통 사람들이 아프면 죽겠다고 하잖아요? 진짜 저 죽을 것 같은 거예요. 진짜 이렇게 가는 구나. 아무 생각도 안 났고 이렇게 살다가 가겠구나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맨 처음에는 설마 죽겠어? 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때는 아마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참여자 G)

(2) 지나친 언론노출로 더해진 상처

연구 참여자들은 배에서 막 탈출한 이후부터 고대병원, 연수원 등으로 이어지는 생활동안 재난 피해자로서 언론 취재에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신상이 노출되었다. 재난 현장이 전혀 통제 되지 않았고 기자들이 보이는 무분별하고 과도한 취재형태는 재난현장에서 막 탈출한 청소년들이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거절하기에는 무리였던 것으로 보였다. 특히 병실까지 들어와 취재를 하거나 모자이크 등을 하지 않고 취재영상을 보도했던 것들로 참여자들은 기자와 언론에 대한 불신과 실망을 갖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추가적인 심리적 피해를 야기하였다.

“병원에서도 저희보고 단원고냐고.. 알아보고.. 와서 어떻게 들어오셨는지 모르겠는데.. 왜냐하면 통제가 되어 있었잖아요. 그때는. 근데 와서 물어보고 병실 안까지 찾아오고 이러더라고요. 모르는 척 했거든요. ‘어? 저 아닌데요.’ 이러면서 피하고.. 전화도 아예 안 받고.. 아직도 연락이 오는 데도 있어요.”(참여자 C)

“사고 직후에 거슬렸던 거는 제가 한번 뉴스에 나왔는데.. 모자이크 처리 안 되고 뉴스에 나왔었어요. 근데 고대 들어갔을 때 TV에 계속 뉴스가 틀어져있으니까 고대 내에서 지나다니면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는 거예요.” (참여자 D)

(3) 비정상으로 보는 시선에 닫힌 마음

연구 참여자들은 재난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심리적 어려움이 있다는 전제하에 강제적으로 심리 상담을 받거나 치료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는 연구 참여자들에게는 평범했던 자신들이 비정상으로 낙인찍히는 경험이었으며 결국 상담과 치료에 대해 불신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참여자들은 병원과 연수원 생활을 거치면서 다양한 심리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하지만 병원에서 시행된 반복된 검사는 연구 참여자들이 상담자와 충분한 신뢰관계를 쌓기에 부족함이 많았고, 시기적으로도 사고에 대한 비현실감이 컸기에 감정이나 기분을 표현하는 것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러한 전통적인 상담과 심리치료와는 다르게 대학생 단체가 멘토가 되어 바리스타, 십자수, 축구 등 참여자들의 욕구를 반영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고, 이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무기력함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프로그램 참여하고 성취감도 경험하였다.

“얼굴도 모르는 같은 생존자 친구들끼리 모여서 갑자기 서로의 아픔을 나누라고 하면 당연히 나누기 힘들 수밖에 없고, 또 정해진 시간에 갑자기 미술치료 하겠다고 올라오라고 해서 집 한 채를 그리라고 해서 너무 귀찮고 짜증이 나니까 세모에 네모를 그렸더니 마음이 허 하구나 그렇게 말을 하면 그 신빙성이 저희한테 오지 않을 수밖에 없었어요. 물론 저희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체계자체가 너무 형식적이었고, 사실 그 상담 샘들한테 저희에 대한 진정한 온기를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사실이었기에 그때는 그 체계 자체가 마냥 부정적이었어요.” (참여자 E)

“상담 선생님들하고 유대감이 조금 형성이 안 되었는데 형, 누나들이 오니까. 그러니까 사람의 맘이 편해요. 일단 편해지고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그 형들이랑 같이하는 것을 기다린 애들도 생기고, 너무 긍정적이었고, 너무 너무 좋았고, 그 당시에는 너무 너무 위안이 되었어요. 어떻게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좋았어요.”(참여자 B)

2) 살아남은 자의 고통
(1) 몸과 마음이 기억하는 트라우마

참여자들은 사고 이후 일상생활에서 ‘트라우마’라고 불리는 경험을 시작하였다. 밀폐된 공간에 가면 탈출구를 찾고, 비상벨이 울리면 배에서 탈출 당시와 같은 공포와 신체감각을 느끼고, 잊고 싶어 했던 기억들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것을 겪기도 하였다. 또한 악몽을 꾸고, 사소한 일에도 불안을 느끼며,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에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겪기도 하였다. 이러한 증상은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약물치료를 받거나 정신과 상담을 받는 등 치료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 심각한 트라우마를 경험하지 않은 친구들은 언제라도 자신에게 트라우마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하기도 했다.

“저랑.. 저 항상 친구들이랑 말할 때 항상 생각하는 게 저는 새로운 장소에 오면 좀 이런데서 항상 주위를 훑어봐요. 그게 약간 습관이 생겼고, 특히 영화관처럼 밀폐된 곳에 가면 저희는 절대 그 탈출구 나오는 거를 안보는 애들이 없어요.” (참여자 A)

“아 왜 이러지..왜 이러지? 하다보면 아 사고 날이 다가오는구나. 몸이 먼저 반응을 하고 특히 사고 때 다가 오면 심장박동수가 굉장히 빨라지고 뭐 그런 거를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참여자 E)

“아직까지 그렇다할만한 트라우마가 느껴지지 않는 경우는 친구들이 두려워하기도 해요. ‘너희가 다 괜찮아졌을 때 나 혼자 아프면 어떻게 하지? 그래서 두려워. 나만 괜찮아진 것 같아서 나는 이 사고가 아무렇지도 않았나? 죄책감이 들어.’ 이런 것도 많은 것 같아요.”(참여자 E)

(2) 작은 위험에도 민감한 나

참여자들은 작은 위험신호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사고 이전에는 뉴스를 통해 접한 안전사고가 ‘설마 나한테 일어나겠어?’라고 무심하게 여겼었는데 이제는 언제라도 나에게 발생 가능한 위험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규정 속도를 무시하고 달리는 버스나 건물에 소화기가 없는 것들이 눈에 띄고 오작동 하는 비상벨에도 탈출을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며 여전히 우리사회는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특히 우리사회가 안전 불감증이라는 것에 공감하며 재난상황에서는 스스로가 자신의 안전을 지키고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에 안전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근데 저희는 진짜 무조건 위치 파악해놓고. 저희는 항상 이런 말해요 무조건 소화벨 울리면 무조건 나가야 한다. 저희 학교 기숙사가 자꾸 실수로 그 소화방전이 진짜 잘 울려요 제가 그거 울릴 때마다 심장이 엄청 덜컹덜컹 한단 말이에요. 2주전에도 또 그게 오작동이.. 심지어 새벽에 1시에.. 그래서 저랑 룸메이트 언니랑.. 저는 이제 그러면 진짜 신발이랑 노트북이랑 가방이랑 바로 챙겨서 바로 나오는데 근데 다른 방들은 나오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벨이 울렸는데도.. ”(참여자 A)

“저희는 변했죠. 뭔가 기분이 안 좋으면 일단 의심하고 보는.. 그런 게 생겼는데.. 그때도 그렇게 큰 배에서 사고 나본 적이 없으니까.” (참여자 D)

“그냥 어디를 가든 다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참여자 F)

(3) 혼자만 탈출하였다는 자책

참여자들은 ‘친구들 두고 혼자만 탈출하였다’는 생각 때문에 희생된 친구들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사고에 몰두하여 관련 기사를 반복적으로 찾아보거나 세월호 관련 활동을 과도하게 열심히 하며 친구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사고 직후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자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 하였지만 이러한 말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탈출 당시에 희생된 ‘친구와 함께 나올 수 없는 방법은 없었을까?’라는 생각을 되새김질 하는 등의 행동을 보이게 되었다. 참여자들에게 이러한 죄책감이 결국 유가족 부모님들과의 관계에 두려움을 갖게 하거나 가족들과의 갈등을 만들기도 하고 일상생활의 질을 저하시키기도 하였다.

“그런 것 있잖아요. 넌 잘못한 것 없다. 어쩔 수 없었다. 불가항력이었다. 컨트롤 할 수 없는 통제 밖의 영역이었다. 다 이해를 해요. 이해를 해도 그건 좀 다른.. 다른 범위의 느낌이에요. 아후.. 그런 거 있잖아요. 진짜 아직 쉽지 않아요.”(참여자 B)

“저희는 그때 저희가 잘못한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저희가 뭔가 죄인인 것처럼.. 뭔가 우리만 살아남았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근데 어른 분들이 말씀해 주셨잖아요. 너희가 잘못한 거 아니라고. 근데 그런 말을 들어도 그렇게 생각이 안 드는 거예요. 저희만 나왔으니까. 친구들은 못 나왔으니까. ‘내가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도 되나?’ 이런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었죠.” (참여자 C)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게, 제가 뛰어내렸다고 했잖아요. 근데 뛰어내리기 전에 말이라도 소리라도 한번 질러줬으면 걔네도 나왔지 않을까.. 이런 생각.” (참여자 D)

(4) 전하지 못한 작별인사

참여자들은 병원 입원 중 희생된 친구들의 장례식이 있었지만 병원 측에서 장례식 참석이 참여자들과 유가족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판단하여 허락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참여자들과 병원, 가족 간에 갈등이 있었다. 병원 측은 학생들의 외출을 엄격히 제한하였고, 참여자들은 통제와 감시받은 일상에 분노를 느꼈다. 일부 학생들은 다른 친구들에게 외출복을 전해 받아 몰래 장례식에 다녀온 학생들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참여자들은 친구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친구들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여전히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어른들의 결정에 따라야만 했던 상황에 무력감과 분노를 느끼기도 하였다.

“지금도 정말 그게 후회가 되고, ‘그걸 왜 안 보내 줬을까?’이런 게 너무 아쉬웠어요. 정말 오롯하게 친구와 이별할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서도 못 가진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제가 사실 아직까지 친구들 죽음을 못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요. 왜냐면 저는 친구들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지 못 했잖아요. 그래서 저는 아직까지도 친구들과 긴 방학이 있는데 서로 그래서 못 만나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저는 그때 내가 오히려 걔네랑 인사할 시간을 가졌다면.. 그런 생각을 항상 해요.”(참여자 A)

“동아리 활동을 했던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발인을 할 때 동아리 방에 온다는 거예요. 다른 친구들은 학교, 집을 들르는데 그 친구는 동아리 방을 오는 유일한 친구니까 꼭 무언가 저를 불러낸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때는 유가족 분들이 놀라고 저희가 놀란다는 이유로 저희가 장례식장을 가는 것을 병원에서 전부 차단했었거든요. 그래서 내가 가장 아끼는 친구의 마지막조차도 배웅하지 못하는 상황들이 계속 있었어요. 사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 사고를 받아들이고 우리가 친구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을 줬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우리가 충격 받아서 트라우마가 커졌다고 하더라도 그것 역시도 내 몫인데 내가 이겨내고, 찾아가야 하는 건데 ‘어른들이 그렇게 정했어.’ 라는 이유로 너무 우리가 인사할 시간, 받아들일 시간을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참여자 E)

나. 달라진 인간관계, 달라진 일상, 달라진 나

연구 참여자들은 일상으로 복귀하였으나 연구 참여자들의 삶은 사고 이전과는 달랐다. 여전히 친구들의 빈자리는 크게 느껴졌고 학생으로서 학업에 집중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러나 타인의 지지와 위로로 마음을 녹이며 심리적인 어려움을 더 이상 회피하지 않고 이야기하게 되었다. 사고 후 가족관계가 더욱 견고해 졌으며 생존자 공동체는 서로를 위로하고 공감해주는 지지체계가 되었다. 사고로 인해 삶에 대한 가치관이 변화되어 진로를 바꾸는 등 연구 참여자들은 사고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1) 친구들 없는 낯선 일상으로 복귀
(1) 텅텅 비어있는 자리

연수원 생활을 마친 연구 참여자들은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한 첫 관문으로 학교 복귀를 택하였다. 12 반까지 있었던 교실은 생존자로만 구성된 4개의 반으로 재편성되었다. 빈 책상과 교실들을 마주하면서 멀게만 느껴졌던 희생된 친구들의 죽음을 머리와 가슴으로 받아들여만 하였다. 매일 함께 학교생활을 하였던 가까운 친구가 옆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세월호 참사 전과는 다르게 바뀌어버린 학교 분위기는 연구 참여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으며 학교에 다시 적응하는 것을 어렵게 하였다. 참여자들은 고등학생으로서 학업과 학교생활을 이전과 같이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괴로웠다고 하였다. 특히 참여자들은 수업에 집중할 수 없고 사고 이전과 같이 학업에 시간을 투자하여도 성적이 하락하는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 사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불안감도 컸다고 하였다.

“가장 큰 거는 친구들이 항상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잖아요 저한테 제일 친한 친구들도 있었을 테고 그 친구들이랑 친했어가지고 같은 고등학교를 가자고 해서 왔었거든요. 근데 그런 친구들도 없고 제일 친했던 친구들도 없으니까 너무 학교생활 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어요.”(참여자 F).

(2) 따뜻한 위로로 풀어진 마음

참여자들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비난 여론이 형성되면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을 더 꺼려하고 위축되었다. 연구 참여자들을 자신들을 이해하고 지지해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사람들을 믿지 못하였고, 참사 자체의 본질이 흐려지고 정치적 이슈로 변질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어른들에 대한 적개심을 갖게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1주기 추모식, 도보행진, 세월호 관련 행사, 다양한 기관을 통해 일반 시민들, 시민단체, 또래, 기관 관계자들에게 받은 위로는 세상과 타인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고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있었던 연구 참여자들이 세상에 다시 첫 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하였던 중요한 경험이었다.

“사실 마주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지지 받는 게 힘들었던 게 SNS에 들어가면 너무 저희 욕밖에 없어서 온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 줄 알았어요.. 우리를. 그래서 애들이 말하지 못했고 숨겼던 게 사실이었고 근데 나중에 보니까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들을 마주하니까 아니었던 거구나 깨달았던 거지 처음에 저희들은 온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만 바라보고 있는 줄만 알았어서..”(참여자 E)

"누군가는 우리를 지지를 해주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런 것들을. 그 언제죠? 그 목포시청인가 어딘가에서 진도로 걸어간 적이 있었는데, 시찰단이 도착했을 때 20~30명으로 시작을 했어요. 끝날 때 되니까 줄이 끊기질 않는 거예요. 그런 거라든지, 국회 걸어갈 때 처음에는 우리끼리 걷고 있었는데, 서울 도착할 때 즈음엔 우리 줄 뒤로 계속 사람이 붙어 다니는 거, 막 버스 타려고 하니까 뒤에 사람들이 떼거지로 있는 그런 거, 누군가는 나를 지지를 해주고 있다는 것을 느꼈죠.”(참여자 B)

(3) 힘들다고 얘기해도 괜찮아

참여자들은 심리적 어려움을 숨기고 회피해야 할 것으로 인식하였다. 이 때문에 정신과 상담이나 심리지원서비스에 부담을 느끼고 어려움을 표현하지 않았다. 참여자들은 정신과 상담이나 심리지원서비스를 받지 않아야 할 것으로 인식하였기에 일반적인 상담이나 병원 시스템은 형식적으로 느껴졌고, 잦은 상담자의 교체는 반복적으로 외상을 떠올리게 하였으며 신뢰감이 적은 상담자에게 어려움을 터놓기 힘들었다. 하지만 교내에 스쿨닥터가 상주하여 참여자들과 일상을 공유하고 도보행진, 추모행사 등을 함께 준비하기도 하며 오랜 기간 동안 신뢰관계를 쌓을 수 있었다. 참여자들은 형식적인 상담이 아닌 개인 대 개인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존재로 스쿨닥터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며 어려움을 표현하고 정서적 안정을 찾아갔다.

“상담을 찾게 된 것은 나중에 000선생님이 정말 한 명 한 명의 마음상태를 체크해주시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분들이 나를 단지 사고 생존자로서 환자와 의사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 나를 존중해주고 이해하고 있구나 하는 모습을 봤을 때, 그 상담을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참여자 E)

“학교에서 있었을 때가 그래도 제일 힘들었는데, 항상 상담 선생님이 개개인에게 관심을 주셨던 것 같아요. 처음에 그게 부담스러워서 피했는데, 선생님이 항상 학교에서 보면 이렇게 얘기 걸어주시고, 뭐 잘 지내냐 이러면서 그때 그랬었는데, 지금은 괜찮냐?.. 그게 뭐라고 해야 되지? 사소한 것 기억해주시고 물어봐주셔서 선생님이 이제 올라와라 하면 선생님 따라서 올라가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그랬었는데,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저는..” (참여자 F)

2) 사고로 달라진 우리
(1) 단단해진 가족이라는 울타리

참여자들은 사고 이후 병원생활과 연수원생활을 가족들과 함께 하며 가족관계의 형태와 관계의 질에서도 변화를 경험하였다. 평소에 어려운 일이 있어도 서로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던 가족들이 자신을 걱정하고 어려움을 함께 나누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서로에게 절대적인 지지체계가 되었다.

“저는 이제 가족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죠. 엄마한테 전화하니까 울면서 받고 있고 또 누나도 엄마가 전화했을 때 학교 도착했을 때 그거 들었을 때 울면서 집에 왔다고.. 그거 듣고 이래서 내가 가족이 소중하구나. 평소에 서로 웃기만 하지 울거나 그런 건 못 봤는데..”(참여자 G)

“엄마랑 아빠랑 항상 친구 같아서.. 이별을 하셨지만 사고 이후에 친구처럼 지내시거든요. 그래서 저희 문제나 저희가 졸업식 날이라든지 특별한 날에는 같이 밥을 먹어요. 근데 그냥 친구처럼 지내시고 그래서 저도 아빠랑 통화하다가 엄마 바꿔주고..”(참여자 C)

(2) 슬픔과 위로의 공동체

참여자들은 대부분 친한 친구들이 희생되었고, 충분한 애도기간이 끝나지 않은 채 서로 안면만 있거나 인사만 하고 지냈던 친구들하고 다시 친구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연수원에서 게임이나 프로그램을 함께 하고 일상생활을 공유하면서 생사를 함께한 생존자 친구들에게 위로를 받았다. 특히 사고 당시의 경험들은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였기에 공감과 위로를 나눌 수 있었고, 이렇게 서로에게 의지하며 회복되어 갔다. 연수원에서의 단체생활로 생존자들은 서로를 잘 알게 되었고 서로에게 굳건한 지지체계로서의 역할을 하였으며, 고통을 잊고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하였다.

“연수원 때 다 같이 있었던 게 괜찮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다 떨어져있으면 자기 혼자 그런 것 때문에 더 힘들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다 같이 있으니까 누구 힘들면 다 같이 위로해주고, 다 같이 놀고.. 갇혀있어서 좀 안 좋긴 했지만 다 같이 있는 게 오히려 더 빨리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참여자 D)

“저녁에 힘든 것 있으면 같이 이야기하고 수업도 하긴 했는데 예를 들어 4교시까지만 정상 수업을 하고.. 사실 제가 봐도 수업할 분위기가 아니었던 게 수업하다가 우는 애들이 엄청 많았어요. 힘들어서. 그래서 약간 저희 회복? 그런 거나 서로 더 알아가고 왜냐면 저도 사실 진짜 친했던 친구는 다 죽었거든요. 서로 안면은 있지만 진짜 친했던 친구가 있었던 경우가 별로 없었어요. 그러니까 그때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연수원 생활이 저희에게 서로를 알게 하고... 서로 힘들었잖아요. 그게 공통 시간이 되면서 저희를 이렇게 지금까지 잘 잡아주는 유대관계를 만들어줬다고 저는 생각해요.”(참여자 A)

(3) 가치 있는 일로 진로 바꾸기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연구 참여자들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거나 참사로 인해 발생되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경험하면서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일로 진로를 변경하기도 하였다. 비윤리적인 언론의 취재 행태를 경험하며 언론분야를 진로로 선택하거나 자신이 도움을 받았던 사회복지사들에게 고마움과 감사함을 느끼며 자신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회복지로 진로를 선택하기도 하였다. 또한 세월호 사고에 대처하는 우리 사회의 많은 어른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 책임감이 삶에 중요한 가치가 되면서 시민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어 경찰행정을 진로로 결정하기도 하였다.

“저도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까 지금까지.. 그래서 저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사회복지를 배우려고 대학교에 들어 왔어요” (참여자 F)

“책임감을 가지고 싶었는데, 그냥 사람이 급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게 경찰이니까, 가장 급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직업이 경찰이라서 소방관도 있기는 한데, 소방관은 무슨 일이 터져야지 가서 해결해주는 사람인데 경찰은 무슨 일이 터지기 전에 해결해주는 직업인 것 같아요. 거기서 나온 책임감..”(참여자 G)

다. 생존자라는 이름과 함께 세상 속으로 나아감

연구 참여자들은 단원고 대학특례입학이 특혜라는 사회적 비난으로 위축되기도 하였으나 편견을 뛰어넘기 위해 삶에 대해 더 적극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 다시 얻게 된 삶의 소중함에 감사하며 자신을 성찰하고 봉사활동을 하는 등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며 새로운 인생관을 정립해 나가고 있었다. 이처럼 연구 참여자들은 평생 지울 수 없는 단원고 생존자라는 이름을 갖고 한 발자국씩 세상과 마주하며 성장하고 있었다.

1) 편견과 아픔에 맞서 고군분투하기
(1) 양날의 검 ‘특례 입학’

학교 복귀 후 학업에 집중할 수 없거나 내신하락 등을 경험한 생존학생들의 대다수는 특별전형제도를 통해서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언론 보도를 통해 특별전형이 큰 사회적 논란이 되면서 ‘단원고 생존학생’이라는 것이 낙인으로 작용하였고, 참여자들은 학교에 적응하는 것에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이과반의 경우 10명도 채 안 되는 학생들끼리 경쟁하여 내신 등급이 정해지는 등 내신점수를 받을 수 있는 구조가 못 되었다고 했다. 특별전형제도가 자신들에게는 꼭 필요했으며 함께 입시를 준비했던 당시 고3 학생들의 마음을 이해하기도 하고 자신이 입학한 학교에 감사한 마음을 갖기도 하였다.

“잘하고 잘못하고 라기 보다는 다른 사람은 솔직히 안 좋게 볼 수도 있지만.. 솔직히 대학 입시가 되게 큰 거잖아요. 그래서 그럴 수 있지만 제 입장에서는 그냥 완전 세상 감사한 일이죠. 그거 아니었으면 전 아예 이 학교에 발톱도 못 들이밀 사람인데.. 그런 기회로 했으니까.. 저는 학교에 항상 감사해요.”(참여자 D)

“안 그래도 저희 엄마가 약간 서울에서 얘기하지 말라고, 이런 식으로 말을 했었거든요. 그게 좀 상처였는데.. 이해가 가긴 해요. 왜냐하면 그때 엄마랑 오빠가 서울에서 살고 있으니까 서울 사람들은 안산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욕을 되게 많이 했나 봐요. 그래서 그거에 대해서 제가 상처 받을까봐 엄마가 얘기를 안했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주변사람들이 안 좋게 봤겠죠. 그래서 제가 더 나서는 걸 안 좋아하게 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가족들도 그렇게 얘기하고 걱정을 하니까.”(참여자 C)

(2) ‘단원충’이라는 편견 뛰어넘기

참여자들은 특별전형제도를 이용하여 대학에 입학하게 되면서 학업수준의 차이로 인해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할까하는 두려움이 컸었다. 이 때문에 각 대학에서 제공하는 예비 대학프로그램에 참여하여 학점을 취득하기도 하고, 생존학생들을 위한 기관들에서 제공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고등학교 영어, 수학 등의 과목들을 복습하기도 하였다. 또한 참여자들은 대학 입학 후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이 전체 단원고 생존학생들의 모습으로 일반화 될까 두려워 학교생활을 더 열심히 하기도 하였다.

“고등학교 졸업도하기 전에 저희 학교에 그런 게 있었거든요. 수시 입학하는 애들 예비대학이라고 해가지고, 학교 일찍 다니고 하는 그런 게 있어요. 괜히 안 그래도 되는데, 그런 거 신청해가지고 다니고 그랬었고.. 또 조급한 게 있었죠.”(참여자 B)

“제가 맨 처음에는 부담이 됐던 게 저로 인해서 저희 애들이 다 욕먹을까봐 그게 부담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잘해야 되니까.. 내가 열심히 해야 되지 아니면 단원고, 그냥 단원고 애들이기 때문에 애들이 더 많이 한꺼번에 묶여서 안 좋게 바라보게 될까봐. 그래서 그게 좀 부담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게 제일 걱정이 컸어요. 근데 숨길 순 없는 거잖아요. 그 일이 지워질 수도 없는 거고.”(참여자 C)

(3) ‘생존자’라는 주홍글씨 마주하기

대학입학 후, 연구 참여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자신이 ‘단원고 생존자’임을 친구들에게 밝히는 것이었다. 특별전형제도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았던 참여자들은 ‘단원고 생존자’임을 밝히게 되어 친구관계가 깨지거나 학과에서 비난을 받게 될 것을 가장 두려워했다. 일부 참여자들은 친해진 친구들이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받을 충격이나 서운함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고 했다. 지금까지도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이성교제를 하는 등 연구 참여자들이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늘 ‘단원고 생존자’임을 밝히는 것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존재하며 그 사람들이 어떠한 편견을 갖고 있을지 잘 모르기 때문에 낯선 관계는 늘 긴장되고 불안하다고도 하였다.

“정시는 12월 그때 되니까 생기고 수시는 11월 초에 발표가 나니까 바로 단톡방이 생긴단 말이에요. 그래서 거기서 갑자기 있는데 너는 어느 전형으로 왔어? 이러는 거예요. 개인톡으로 얘기를 할 때 저는 말했어요. 나 단원고 특별전형이라고 얘기를 했더니 갑자기 반응이 너무 다른 거예요. 그래서 그거 보고 무섭다. 처음에는 무서웠어요. 다 나를 이렇게 받아들이면 어떡하지? 나라는 자신이 있는 건데 내가 세월호 생존자라고 해서 그런 기준으로 날 이렇게 생각하는 게 너무 싫은 거예요. 그래서 이제 친해지면 말해야겠다. 누가 물어보면 말은 하겠는데 이렇게 따로 내가 먼저 하지 않겠다고 생각을 했어요.”(참여자 A)

“거의 둘 중 하나였는데, 처음에는 엄청 놀래요. 진짜냐고. 안 믿는다고, 그러다가 이제 진짜 이야기하면 그랬냐고. 힘들었겠다고. 두 번째는 왜 이 학교를 왔느냐 위로 안가고. 더 갈 수 있는 시스템 아니었냐 그런 애들이 있으면 이야기 하죠. 거기 가면 어차피 졸업도 못하고, 경고나 뒈지게 맞다가 나갈 거 뻔한데. 그래도 조금 비슷한데 와서 너네 따라가는 게 좋지 않느냐. 그러냐고 그 뒤로 제 앞에서, 제 등 뒤로 들리게끔 뭐 나쁘게 얘기하는 애들이 생각보다 없었어요. 대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그게 엄청 큰 고민이었거든요. 그 시기에.” (참여자 B).

(4) ‘있는 그대로’의 내가 받아들여지는 경험

참여자들은 ‘단원고 생존자’임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친구들 덕분에 위로를 받고 도움을 받으며 대학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 또한 참여자들은 자신이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것들은 참여자들에게 긍정적인 부분으로 작용하였다. 이로 인해 참여자들은 낯선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나 드러남을 당하는 것에 불편함이 줄어들었고, 자신들에 대한 비난에 대해서도 수용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다.

“실제로 학과 커뮤니티 말고 학교전체 커뮤니티에서 단원고 학생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는데, 깨게 됐다는 말을 익명으로 접하게 돼서 그냥 되게 괜찮았던 것 같아요.” (참여자 E)

“제가 생각했을 때는 똑같은 친구들처럼 편견 없이 대해주려고 많이 노력하는 것 같아요. 딱히 이 얘기를 꺼내지 않아도 괜찮아 이런 식으로 티를 내주는 게 아니라 아무렇지 않은 척 그냥 내가 그거랑 관련된 학생이 아닌 것처럼 대해주려고.. 제가 생각했을 때는 그런 것 같아요.” (참여자 F).

2) 삶의 소중함과 감사함으로 나를 추스름
(1) 아픔 속에서 알게 된 괜찮아지는 방법

참여자들은 세월호 참사가 5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외상경험이 고통스럽지만 스스로 이러한 고통을 경감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찾아가고 있었다. 봉사활동을 통해 재난의 피해자에서 봉사활동의 기여자로 역할을 전환하며 자존감을 회복해가기도 하고 세월호 참사를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활동을 통해 희생된 친구들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 내기도 하였다. 또한 일기를 쓰며 감정적 환기를 하여 불면을 다루기도 하고 사회복지사나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과 지지를 받거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회복을 위해 노력하기도 하였다.

“봉사활동 간 것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인데 저의 능력을 다시 확인하고 나도 저렇게 도움을 주는 사람, 사람들에게 도움이 돼서 내가 작지만 크게 막 안 알려져도 나 자체로도 뿌듯하고 그런 것을 준 것 같아요.” (참여자 A)

“이번 연도 4월 16일 날 학교에서 이번에 제가 직접 행사해서 리본 나눠주는 거 했었거든요. 학교 앞에 부스 만들어서 했거든요. 원래는 혼자 하려고 기획을 다 해놨는데 혼자 하는 게 좀 벅찰 것 같아서 친한 친구들한테 말해서 시간 날 때 도와달라고 하고 친구들이 와서 도와주고 그랬어요.” (참여자 D)

“우선 일기를 매일 썼어요. 자기 전에 생각이 많아진 것도 못자는 거에 큰 영향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자기 전에 내 생각을 일기에다가 털어놓으면 좀 더 자기 전에 생각 없이 금방 잘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내 고민, 걱정, 오늘 생각을 일기에 적어놓고 자려는 습관을 들기 위해 노력을 했어요.” (참여자 E)

(2) 감사하고 현재에 충실한 삶 살아내기

참여자들은 사고 당시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극적으로 탈출하며 ‘살아있음’에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또한 참여자들은 평범한 하루의 삶에 만족하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매 순간 느껴요. 내가 이렇게 행복할 때 있잖아요. 페스티벌을 가도 ‘아, 진짜 그때 못나왔으면 나는 이렇게 못 즐기고 있겠지?’ 이런 식으로 생각도 하고 어느 날 문득 혼자 음악을 듣더라도 ‘아, 내가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 자체가.. 너무 소중하다.’ 이렇게 삶이 소중하다는 걸 항상 매 순간 느껴요. 그래서 그게 동기가 되는 것 같아요.” (참여자 C)

“삶의 소중함을 찾은 것 같아요....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참여자 G)

(3) 나를 지탱해주는 주변 사람들

참여자들은 사고를 계기로 기존의 인간관계를 넘어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면서 관계의 범위가 지역사회의 다양한 사람들로 확대되게 되었다. 이 뿐만이 아니라 가족,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지지를 받으면서 내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고, 삶에서 주변사람들이 주는 의미나 소중함이 더 커지거나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더 중요해진 것은 확실하죠. 더 내 삶에 차지하는 퍼센테이지가 더 커진 것은 확실하죠. 명확하게 제시할 수는 없지만,” (참여자 B)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나 친구나 나한테 도움을 줬던 사람들한테 그전까지는 솔직히 저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도움을 주어도 감사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잘.. 그냥 개인적으로 친구들한테 연락이 오는 것도 그냥 당연하게 생각을 하고 그랬었는데, 친구들이 항상 관심을 가지고 연락을 해주는 것도 고맙게 생각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참여자 F)

(4) 받은 것을 되돌려 주고 싶은 마음

참여자들은 사고 이후에 시민단체, 일반시민, 사회복지사, 상담사, 가족, 주변 친구들 등에게 도움을 받았던 것에 대하여 감사한 마음이 크다고 하였다. 참여자들은 사고 이후에 자신이 받았던 직・간접적 도움을 다양한 방법으로 환원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하였다. 또한 참여자들은 사고 이후 힘든 시간을 겪어 보면서 자신들과 비슷하게 어려운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 존경이 더욱 깊어졌으며, 이타적인 태도가 생겼다고 하였다. 실제로 참여자들은 이렇게 연구에 참여하는 것이 추후 자신들과 같은 재난피해자를 돕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하며 앞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고 싶다고 하였다.

“제 삶을 행복하고 남에게 도움이 되고.. 이런 인터뷰 같은 것도 꼭하겠다고 생각이 드는 게 저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이런 일을 혹시나.. 사실 사람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니까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됐을 때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참여자 A)

“그냥 봉사활동이 중요해진 것 같아요. 왜냐면 제가 받았던 게 있었으니까 제가 받은 만큼 돌려주자..” (참여자 G)

Ⅴ. 결론 및 제언

본 연구에서는 세월호 참사 단원고 생존자의 외상 후 성장 경험을 질적 사례연구 방법을 통해 심층적으로 살펴보았다. 사례 내 분석에서는 각 사례의 독특한 경험을 이해하고 사례 간 분석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외상 후 성장 경험을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분석한 결과 3개의 상위범주와 6개의 하위범주, 21개의 의미단위가 도출되었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논의점은 다음과 같다. 먼저 연구 참여자들의 개별적인 외상 후 성장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구 참여자들은 세월호 참사라는 동일한 재난을 겪고 비슷한 경험을 하였지만 이를 받아들이고 외상을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모두 차이가 있었고 개인의 내적특성과 함께 환경적인 요인이 영향을 주었다. 또한 세월호 참사 이후에 사회적인 지원은 심리적인 부분과 단기적인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연구 참여자들은 생물, 심리, 사회적 측면에서 어려움이 존재하였으며 개인의 내적특성이 문제해결능력이나 낙관성, 삶의 목적과 가치 추구, 대인관계 능력 등에 영향을 주어 대인관계, 가치관, 자기지각에서 외상사건 당시의 적응 수준을 넘어서는 성장을 경험하였다. 이나빈(2016; Kaniasty & Norris, 1995에서 재인용)에 의하면, 개인 외상사건과 달리 재난피해자들의 회복은 개인 내적 조건, 집단의 역량이나 취약성에 의존해 있다고 하였으며, 416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보고서(2016)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이후 생존학생 및 가족의 상황과 환경적 조건은 공통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각각 서로 다른 수준으로 드러났다고 하였다. 본 연구 결과 참여자 B의 경우 사고 전에는 소극적인 성격이었으나 사고 후 희생자를 위해 자신이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추모행사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리더로 변화되었고 참여자 A는 봉사활동을 통해 자신이 무엇인가를 해 낼 수 있다는 자기인식의 변화를 경험하였다. 참여자 D는 스스로 자신을 사고 이전에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고 칭했으나 사고 이후에 다양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던 것에 대한 보답으로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변화된 인생관을 갖게 되었다. 이처럼 재난피해자의 성장은 개개인의 내적특성과 환경적 요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므로 개인적인 특성을 고려한 지원 방안이 포괄적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청소년의 외상 후 성장에는 개인의 특성도 고려되지만 가족과 친구의 도움, 다방면의 사회적 지지가 연구 참여자의 회복탄력성을 높이고 성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이 나타났다(김정옥, 윤재호, 2017; 박민아, 이동귀, 2019; 심서영 외, 2016; 유희정, 2014). 연구 참여자들은 ‘단원고 생존자'라는 낙인으로 대인관계와 사회에서 고립감과 무기력감을 경험하였지만 이들과 가장 가깝게 접촉할 수 있는 지역사회, 시민단체, 친구, 가족들의 지지를 경험하며 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나누고 그에 대한 정서적 지지를 받는 긍정적인 상호작용 통해 자신들을 괴롭게 하였던 죄책감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완화되었고, 스스로의 문제를 숙고하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었으며, 문제 해결을 위한 조언과 긍정적인 피드백도 받을 수 있었다. 재난과 정신건강(2015)에 의하면, 사회적 지지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그것을 견딜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외상경험의 긍정적인 면에 대해 재평가 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재난 피해자들에게 여러 형태의 사회적 지지를 연속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외상 후 성장을 촉진시키는 촉매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지지 중 가족은 온정, 친밀함, 격려, 지원과 돌봄이 바탕이 되어 개인의 회복탄력성에 영향을 준다고 하였다(재난과 정신건강, 2015). 연구 참여자들은 사고 이후 걱정하고 돌봐주는 가족들을 지켜보며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기도 하고 서먹했던 형제관계가 친밀해지기도 하였으며, 부모님의 이혼 이후에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지냈던 아버지나 어머니를 다시 가족으로 받아들이면서 가족의 형태에도 변화를 경험하였다. 본 연구 결과 외상경험 이후 가족관계의 질과 형태의 변화는 가족이 재난 피해자의 회복에 가장 큰 자원으로서 역할을 하며 심리적 안정기반과 보호를 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재난 생존자 가족의 가족탄력성(family resilience)을 높일 수 있는 서비스 지원이 필요하다(박미현, 2011). Walsh(2002)에 따르면, 미국의 911테러와 허리케인 카트리나 생존자들의 경우 많은 피해자들이 가족의 헌신과 애정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와 같은 후유증을 극복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가족탄력성(family resilience)이 발현된다고 하였다. 특히 재난 생존자 중 아동과 청소년은 성인에 비해 인지적, 정서적, 사회적 발달에서 비교적 미숙하고, 재난을 회복하기 위한 내적 자원이 부족하여 재난이 가져오는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고 하였다(최남희, 2006). 이는 결국 부모가 아동・청소년 재난 피해자에게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고주애, 2017). 이에 재난피해자 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적절한 서비스 지원을 통해 가족 내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고 가족이 피해자를 위한 적절한 보호기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향후 피해자의 회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

또한 재난 외상사고에 대한 개입 시 청소년의 특성을 고려한 개입마련이 필요함이 나타났다. 재난이 발생 한 후 피해자들에게 나타나는 반응은 시기별로 차이가 있는데 사고 후 3~7일 내에는 피해자가 상황을 파악하고 안정감을 찾도록 돕고 신체적 피해에 집중해야 한다고 하였다(임정선, 2016). 단원고 생존자들은 사고 직후 자신에게 신체적인 특별한 변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사건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이 사건으로 인해 달라질 수 있는 변화에 대해 인지할 수 없었다. 사고 발생 후 초기에 심리 상담이나 집단 치료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는 연구 참여자들에게는 평범했던 자신들이 비정상으로 낙인찍히는 경험이었으며 결국 상담과 치료에 대한 불신이라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Boscarino와 Adams(2008)는 대형재난 사고에 있어 약물치료나 전통적인 심리치료보다 지역사회의 자원을 활용한 개인들의 자기회복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가장 큰 영향을 준다고 하였다. 본 연구의 참여자들도 초기에 의료진에 의한 치료보다 대학생 및 청년들과 함께한 신체활동이 오히려 마음을 여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하였다. 따라서 청소년 재난피해자에게 정신과 상담 및 심리치료가 단계별로 개입의 강도를 조절하여 지원해야 하며 청소년기 발달과업의 달성이 추후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또래관계, 대학입시, 학업수행 등을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의 마련도 필요할 것이다. 단원고 생존자들은 사고 직후 병원 치료를 마친 후 연수원에서 합숙생활을 하며 집중적인 심리 치료 및 상담지원을 받았으며 학교로 복귀한 후에는 교내에 상주하는 스쿨닥터로부터 지속적인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일부 참여자는 사고 직후 심리 치료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으나 일상생활에 복귀한 후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에게 나타나는 강박, 불안과 같은 정신과적인 증상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함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연수원 생활 및 스쿨닥터 지원이 자신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보호해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고하였다. 이에 청소년기에 재난 외상사건 경험자에게는 심리치료서비스와 함께 멘토링 또는 놀이 활동을 접목한 치료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피해자의 일상생활을 모니터링하고 치료적 개입이 필요할 경우 즉각적인 개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한편 외상 후 성장을 이루고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던 참여자가 다시 트라우마 증상을 경험하게 된 경우도 발견되었다. 참여자 E는 대학생활 도중 수면장애 및 트라우마 증상이 발병하여 학교를 휴학하고 휴양할 계획을 하고 있었다. 현재 단원고 생존자들은 대학입학 및 군 입대 등으로 처소가 흩어져 집중적인 사후 관리가 어려운 실정이고 현 시점에서 트라우마 증상이 발병해도 치료 지원에 대한 정보전달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어렵다. 따라서 사고발생 후 일상생활에 복귀한 피해자들의 사후 관리 및 장기적 치료 결과를 추적하기 위해 사후관리가 중요하다. 건강보험 공단에 의해 2년에 한 번씩 전 국민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실시하듯이 재난외상 피해자들이 정기적으로 자신들의 심리검사를 받고 치료가 필요한 경우 각 지역의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을 연계하여 치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중심 역할이 요구된다. 현재 국내의 실정으로는 국립트라우마센터와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가 이러한 역할을 좀 더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실시하고 홍보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재난 피해자 보호를 위한 언론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언론기관과 협력하여 재난상황에 대해 빠르고 공정한 보도가 이루어질 수 있는 전달체계의 확립이 필요하다(김영욱, 안현의, 함승경, 2015). 재난 상황에서 언론보도는 검증된 정보를 수집하고 전달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재난상황에서 피해자는 매우 예민하고 불안한 상태이며, 이러한 상황에서는 작은 부적절한 정보도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재난과 정신건강, 2015). 본 연구에서도 언론의 자극적이고 비윤리적인 취재형태를 통해 연구 참여자들은 ‘단원고 생존자’라는 주홍글씨를 새기며 세상과 타인에 대한 신뢰를 잃고 고립되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 참여자들은 단원고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입학 하였는데 특별전형에 관한 출처 불명의 루머가 퍼지며 SNS에는 단원고 학생들에 대한 인신공격이 이루어졌다(유경한, 2019). 결국 연구 참여자들은 재난으로 인한 2차 피해를 받게 된 것이며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언론단체에서 ‘재난보도준칙’을 준수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사회복지사는 재난피해자를 옹호하고 사회적 지지를 이끄는 대외적인 활동가의 역할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연구 참여자들은 자신들을 향한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이 지속됨에도 불구하고 가족, 친구, 일반시민, 다양한 기관의 전문가들을 통한 지지를 경험하였고, 이는 연구 참여자들이 세상과 타인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사회복지사는 재난 피해자를 위한 사회적 지지를 이끌어 내고 옹호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며 피해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인식개선 활동 및 지역사회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본 연구는 세월호 참사 단원고 생존자의 외상경험을 통해 재난 외상을 경험한 청소년들의 외상사건에 대한 개입방안과 실천적 방향성을 모색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본 연구 결과 일반 외상경험과 재난 외상경험은 다를 수 있으며 청소년기 발달과업 중에 있는 피해자는 외상사건으로 인해 인생의 많은 부분에 변화를 경험하게 되므로 발달과업과 연계된 지원의 필요성이 나타났다.

또한 외상 후 성장 요인으로 사회적 지지가 관련됨을 확인하였다. 후속연구로는 어떠한 사회적 지지가 도움을 주는 지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재난생존자를 위한 사회복지 서비스 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의 참여자들은 생애주기 상 청소년기를 거쳐 현재 청년기를 살아가고 있어 한시적 시점에서 이루어진 횡단적 연구라는 한계가 있다. 재난 피해자의 외상 후 성장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삶에 반영되는지 생애 주기에 기반한 종단적 연구를 통해 살펴본다면 이들의 장기적인 삶의 역동과 다양성을 심층적으로 드러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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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knowledgement

본 연구는 제1저자(한정민)의 석사학위 논문을 수정・보완하여 작성하였음. IRB No. ewha-201812-0010-01, 이화여자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