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연구자로 사는 법

How to Live as a Researcher during the COVID-19 Pandemic

학자, 연구자의 역할은 단지 현상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것이라는 보수적 명제는 깨진 지 오래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다양하게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Marx, 1969)라는 한 진보 사상가의 열한 번째 테제도 이제는 새롭지 않다. 아주 오래 전 불의 사용부터 시작해서, 에디슨의 전화 송신기, 축음기를 거쳐 그 뒤를 잇는 비닐, 플라스틱, 가솔린 엔진, 핵 발전기, 인터넷 등 연구자들이 발명한 수많은 연구물은 세상을 급속히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자들의 발명품이 인류와 지구에게 좋은 것만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전쟁으로 인한 대규모 학살과 환경·생태위기의 대부분은 이들 발명품과 연관이 있다. 그렇기에 이제 연구자들에게 윤리와 성찰은 인류와 지구의 생존까지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더욱이 2020년 코로나 대유행처럼 전 지구적 위기의 상황에서 연구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많은 이들이 연구자들을 이 고통을 해결해 줄 희망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2020년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확진자 수가 8000만 명이 넘었고, 사망자도 200만명을 향해 가고 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의 사상자수를 넘어선 것이다. 누구의 말처럼 지금 인류는 제3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쟁이 수많은 비윤리적 비극을 낳듯, 대규모 감염병의 유행 역시 수많은 아픔을 낳고 있다. 또한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거짓 소문이 난무하고, 그런 잘못된 정보를 교정해줄 공론장의 역할도 그 힘을 잃은 상태에서 대중들은 쉽게 상처받는다. 이럴 때일수록 취약집단들은 제일 먼저 그러한 혼란의 희생양이 된다. 연구자들 역시 부당한 압력이나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대규모 위기 시 연구자가 가져야 할 윤리는 무엇인가?

이럴 순간을 대비해서 대규모 위기 시기 연구자의 행동지침들이 존재한다. 2020년 1월 너필드 생명윤리위원회(Nuffield Council on Bioethics)는 21세기에 인류가 경험한 세계 보건 비상사태에 대응하는 연구에서 중요한 윤리적 가치들을 제시했는데, ‘평등한 존중’, ‘고통을 경감하기’, ‘공정성’이 그것이며, 이러한 가치에 기반을 두고 전 지구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윤리적인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NCOB 2020). 세계보건기구는 2003년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SARS), 2009-2010년 H1N1 인플루엔자 유행병, 2014-2016년 서아프리카 에볼라 발병 이후, 응급 상황에서 윤리적 연구를 수행하는 방법에 대한 지침을 만들었다. 여기에 코로나19 유행 상황을 감안하여 보충한 연구 윤리 기준을 제시하였다. 이 지침에서는 특별히 비상 상황 하에서 연구자들의 상호 협력을 강조하며, 취약한 집단들을 우선적으로 보호하고 연구에 참여시킬 것을 명시하고 있다(WHO, 2020). 또한 위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결과들을 신속히 배포하고, 모든 이들이 손쉽게 그 정보에 접근하도록 노력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새창으로 보기

공중 보건 응급 상황에서 윤리 표준 및 연구에 대한 적용(WHO, 2020)

  1. 연구는 비상대응 노력을 방해하지 않을 경우에만 수행되어야 한다.

  2. 공정한 연구협력원칙을 준수하며 전 세계와 지역의 연구자들은 서로 협력해야 한다.

  3. 비상시 연구에는 공정하고 의미 있는 공동체의 참여와 포용적인 의사 결정이 필요하다.

    • 가장 취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포함하여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포함되도록 모든 합리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 관계를 촉진하기 위해 사전에 지역 사회 참여 네트워크를 개발하는 것은 비상 대비의 핵심 부분이다.

  4. 긴급 상황은 지역 전문 지식과 자원의 부족을 초래할 수 있으며, 그 결과 독립적인 윤리적 검토를 제공할 지역사회 또는 국가의 능력이 감소하거나 없을 수 있다. 따라서 독립적인 윤리적 검토를 위해 현지 역량을 지원하고 조정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5. 공중보건 비상사태 동안 행해진 모든 연구는 과학적 타당성과 사회적 가치를 지녀야 한다.

  6. 모든 연구 참가자는 동등한 존중을 받아야 한다. 그들은 위험을 최소화하고, 취약한 인구를 보호(그러나 배제하지 않음)하며, 사회적 가치와 협력적 협력관계를 최대화하고, 연구의 과학적 타당성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 방법으로 선택되어야 한다.

  7. 비상상황 하에서도 개개인에 대한 충분한 설명 후 동의(informed consent)는 연구의 기본적인 윤리적 요건이다. 예비 연구 참여자는 참여의 위험과 이점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8. 참가자와 이해관계자는 인간 생물학적 물질의 수집, 보관, 미래사용, 생물 금융 및 수출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아야 한다. 대응 노력을 지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정보를 생성하는 연구자들은 공개를 위해 품질 관리(예: 동료 검토)되는 즉시 해당 정보를 공유할 윤리적 의무가 있다.

  9. 비상시 수행된 연구의 편익에 대해 모든 사람이 공정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이 내용은 요약문으로 전문 “Ethical standards for research during public health emergencies” (WHO, 2020)을 참조할 것

지난 5월에는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위원장의 성명도 있었다. 여기서도 취약집단에 대한 관심을 강조하고, 특별히 정부와 기업이 백신과 치료제 개발 등에 대한 공적 책임을 인식하고 협조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이윤성 2020).

새창으로 보기

코로나19 관련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위원장 성명(2020.5.22)

  1. 정부는 사회적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합리적 리더십을 발휘하여 책임 있는 판단을 해야 합니다.

  2.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의 변화와 요구를 파악하고 적절하게 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정부는 공중보건의 위기 상황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형태의 취약한 집단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야 합니다.

  4. 정부와 기업은 백신과 치료제 개발 등에 대한 공적 책임을 인식하고 국내 및 국제적 상황을 고려하여 필요한 노력과 협력에 앞장서야 합니다.

  5. 임상연구는 연구대상자의 안전이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합니다.

  6. 국민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자율적 사회적 거리두기와 감염병 예방 수칙 등을 실천하여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유럽의 23개 나라 31개 연구조직의 연합체인 엔리오(The European Network of Research Integrity Offices: ENRIO) 역시, 코로나 유행기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자들이 상황의 위급성에도 불구하고 연구윤리 및 생물안전 표준과 지침을 무시하지 말 것을 요청하고 있다. 주관적이거나 근거 없는 해석을 피하고 정보를 의도적으로 생략해서는 안되며, 무엇보다 부주의하고, 비윤리적인 연구자의 잘못된 해석으로부터 대중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ENRIO, 2020).

대규모 감염병 유행 시기 신속히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인간 챌린지 연구(Human Challenge Studies)가 진행되고 있다. 이 연구는 질병 연구나 백신의 효능 시험을 위해 사람에게 직접 SARS-CoV 2 바이러스를 감염시키는 방법을 말한다. 백신 개발 단계 중 비용과 시간이 가장 많이 소요되는 기존의 3상 시험을 (연구참여에 자원한) 통제된 사람의 감염 시험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 윤리적으로 적합한 것인지는 논쟁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시행하는 이들은 최소한 2020년 세계보건기구가 제시한 『인간 챌린지 연구에서의 윤리적 필수 기준(Key Criteria for the Ethical Acceptability of COVID-19 Human Challenge Studies)』을 준수해야 할 것이다(WHO, 2020).

국내에서도 팬데믹 시기 백신 연구의 윤리에 대한 논문이 발간되었는데, 이 논문에서도 (1) 연구개발의 윤리적 이러한 연구 개발의 긴급성은 연구대상자의 안전, 임상시험의 과학적 윤리적 표준을 손상시키지 않아야 할 것, (2) 독립적인 연구윤리위원회의 심의와 감독에 의해 연구의 과학성을 보장하며,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연구대상자의 안전과 권리도 보장되어야 할 것, (3) 비상한 사태를 맞이하여 윤리성 심의 절차가 연구과정을 지연시키지 않도록 전문성, 신속성과 효율성에 대해 미리 준비가 되어야 할 것, (4) 특히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규모와 국제적인 협력으로 세계적 단위의 대규모 임상시험에 국내 여러 기관에 참여하게 될 때에 연구윤리에 정통한 단일 기관 윤리위원회(IRB)가 다기관연구를 심의하도록 해야 할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백신 연구와 동시에 COVID-19의 치료와 백신에 대한 공정하고 공평한 접근을 위한 정책이 함께 준비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정준호, 김옥주, 2020).

다행히 11월 20일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들은 “진단검사, 필수 의료 물품과 서비스의 개발, 생산, 제조와 분배 등에 협력해야 하며 백신 등 의학대책에 공평한 접근이 원활히 이뤄져야 한다”는 쿠알라룸푸르 선언을 채택했다. 또한 코로나 백신을 가난한 나라들을 포함하여 세계 모든 국가에 충분하고 공정하게 배분하자는 목적에 따라 세계백신면역연합(GAVI)과 세계보건기구(WHO), 감염병혁신연합(CEPI)이 다국가 연합체인 코백스 퍼실러티(COVAX facility) 운영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대규모의 위기시기에 상황은 너무 급박하고,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시기는 많은 거짓 정보와 혼란을 틈탄 이익 챙기기, 강자들의 약자 괴롭히기도 극성을 부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런 대규모 위기의 시기에도 연구자가 가져야 할 제1의 연구윤리는 무엇보다 “먼저, 해를 끼치지 말라(Primum non nocere, first, to do no harm)”이다. 또한 연구자들은 연구주제 선정 시에 이러한 위기의 극복에 도움이 될 주제에 대해 우선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으며, 의미 있는 결과를 빠르게 출간할 필요가 있다. 정보는 신속하게 모든 이들에게 손쉽게 제공되어야 한다. 연구자들은 정확한 해석 못지않게 쉬운 해석을 일반인들에게 제공할 필요가 있고, 거짓 연구결과나 해석을 걸러내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연구자들은 스스로를 보호하는 연구수행 지침 역시 준수해야 한다. 위기의 시기 준수해야 할 연구지침들을 상기할 필요가 있으며 그것들이 강조하는 전 지구적 협력에 동참하여야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빈곤국을 포함한 전 세계 모든 나라에 전체인구의 최소 20%의 백신을 공급하자고 만들어진 코백스 퍼실러티(COVAX facility)는 현재 제대로 운영을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미국, 영국, 유럽연합 등 강대국과 영리를 지향하는 다국적 제약회사들 때문이다. 최근 화이자, 바이오엔테크, 모더나 등 제약사들이 희망적인 백신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해 많은 이들의 기대가 높아졌지만 미국 등 부자 나라들은 내년 예상 백신 생산량을 선점한 상태다. 미국은 코백스 참여도 거부했다. ‘백신 민족주의’란 말까지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영리 제약회사는 백신 값을 올려 이참에 큰 이익을 볼 기회를 노리고 있다. 부자나라들이 백신을 먼저 맞는 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할 것인가? 그런 일들이 한 나라 안에서 벌어졌다면 정당화될 수 있었을까? 이것이 정당하지 않다면 세계 시민사회와 연구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소결: ‘시민학자(Citizen Scholar)’로 살아가기

위기의 시기에 연구자들에게는 보다 적극적인 윤리가 필요하다. 미시적 분석 못지않게 그 연구결과가 적절하게 사용되는지 살피고, 그렇지 않을 때 행동하는 것 역시 연구자의 몫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애써 만들어낸 연구결과물들이 연구자의 의도와 다르게 불의를 강화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불의를 조장하고, 정당화하거나 용인하는 모든 이론은 틀렸다”고 말했던 리처드 레빈스(Richard Levins)가 평소 강조했던 다음과 같은 말이야 말로 전 지구적 위기를 살아가는 연구자들의 실천 윤리인 셈이다.

“우리가 과학을 되살리고, 공중보건과 생태학적 관점을 강조하는 동시에 영리적 기업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청렴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최선의 삶의 방식은 ‘시민학자(citizen scholar)’로 살아가는 것이다” (Levins, 2009)

References

1 

이윤성. 코로나19 관련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장 성명,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서울, 2020.

2 

정준호, 김옥주. (2020). 코로나 19(SARS-CoV-2) 백신 연구의 윤리. 생명윤리정책연구, 13, 1-25.

3 

ENRIO. ENRIO, ENRIO Statement: Research integrity even more important for research during a pandemic, 2020.

4 

LevinsR, 박미형, 신영전, 전혜진 (Trans.). (2009). 열 한번째 테제로 살아가기: 건강, 생태학, 과학, 그리고 자본주의. 파주: 한울.

5 

Marx K. Theses on Feuerbach, 1888, 1969, http://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45/theses/theses.htm, 에서 2020. 12. 27. 인출.

6 

NCOB. NCOB, Research in Global Health Emergencies: Ethical Issues, 2020, https://www.nuffieldbioethics.org/publications/research-in-global-health-emergencies, 에서 2020. 12. 27. 인출.

7 

WHO. WHO, Ethical standards for research during public health emergencies: Distilling existing guidance to support COVID-19 R&D, WHO, Geneva, 2020.

8 

WHO. WHO, Key Criteria for the Ethical Acceptability of COVID-19 Human Challenge Studies, 2020, https://www.who.int/ethics/publications/key-criteria-ethicalacceptability-of-covid-19-human-challenge/en/, .에서 2020. 12. 27. 인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