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론이 필요하다

The Need for a New Theory

새로운 이론이 필요한 이유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다. 이번 코로나 팬데믹에서 인류가 확인한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 부족도 있지만,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바이러스-박쥐 등 야생동물-생태환경의 파괴-인간의 행동’을 동시에 아우르는 연구는 거의 이루어진 바 없을 뿐만 아니라 해당 전문가들조차 찾기 힘든 상황이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까?

첫째, 학문의 분절화이다. 기존 자연과학, 더 나아가 사회과학조차 대부분 한 논문에 실릴 수 있는 ‘짧은 인과관계’만을 규명해왔을 뿐이고, 이들 짧은 인과관계들을 모으면 전체를 설명할 수 있을 거라는 데카르트적 환상이 현대 과학의 골간이 되어왔다. 현대 연구자들은 ‘짧은 인과관계/근접 원인의 포로(prisoner of the proximate)’가 되어 버린 것이다(McMichael, 1999). ‘짧은 인과관계’의 규명이 부분적으로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정육점 소고기의 각 부위를 모아 놓는다고 살아 있는 소가 될 수 없듯이 작금의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거대 위기는 이런 분절화된 과학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전체로서의 진리(truth as a whole)”라는 헤겔의 선언(Wallace, 2018)이 지금만큼 절실한 때가 없다.

둘째, 과학의 거대화와 독점이다. 박노자는 코로나 유행으로 ‘미국, 시장, 선진국이라는 신화’가 깨지고 있다 했다(박노자, 2020). 막대한 부와 군사력 그리고 자유시장이 이번 사태에서 별다른 우수성을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꼭 깨져야 할 ‘과학의 신화’는 여전히 견고하다. 작금의 신종 감염병 유행, 기후와 환경 위기의 대부분이 과학 기술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코로나 유행의 해결 역시 백신과 치료제에 기대고 있으며, 과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대중의 희망은 더욱 커지고 있는 양상이다. 과학의 힘이 더욱 커질수록 위축되는 것은 인간이고 시민사회다. 거대과학과 영리기업, 군사력의 결합이 만들어 내고 있는 권력에 일 개인과 시민사회가 비판, 감시, 참여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과학이 무엇을 연구할지, 그 연구 결과를 누구와 나눌 것인가 하는 결정을 소수의 특권층이 독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럴수록 평범한 시민의 관심과 이익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크다. 현재 다국적 제약회사의 수익률은 하늘을 뚫을 정도이고, 선진국에서는 4차 추가 접종까지 진행하고 있지만, 빈곤국에서 한 번이라도 예방접종을 받은 이의 비율이 2021년 12월 25일 기준, 8.3%에 불과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새로운 이론의 속성 또는 조건

그러므로 이 시기 우리는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다. 과학과 과학 이론은 추상적 사고, 즉 패턴에서 의미를 도출하고, 관찰하고 상정된 특이성의 배후에 있는 원인적 과정을 상상하고 포착하는 것이다(Krieger, 2011). 따라서 이론은 현재를 설명하고, 미래의 생존 전략을 수립하는 출발점이 된다. 기존 이론의 분절성과 편중성이 현재 코로나 팬데믹이나 기후 위기의 제대로된 대응책을 만들지 못하고 더 나아가 이런 재난의 원인을 제공했다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이를 극복한 새로운 이론이다.

새로운 이론은 어떤 것들을 포함해야 할까? 해 아래 새것이 없기에 새로운 이론도 무에서 유를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다. 기존에 배제되었던 이론들을 비판적으로 재분석하며 변증법적 사고의 발전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이론은 기존에 간과되거나 배제되었던 다음과 같은 부분들을 포함하여야 할 것이다.

첫째, 정치생태학적 접근이다. 여기서 ‘정치생태학’이란 리처드 레빈스가 말한 “전체성, 복잡성, 상호작용, 맥락, 역동, 역사성의 과학”을 의미한다(레빈스, 2009). 우리 사회는 개인으로 구성되지만, 가족, 지역/직장공동체, 국가, 국제사회 더 나아가 지구 생태계라는 다층적 구조로 보아야 하며, 부분과 전체의 상호침투성(inter-penetration)에 대한 고려가 중요하다(Levins & Lewontin, 1985).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회현상과 그 결과물들은 지극히 정치적인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그것을 이해, 설명하고 더 나아가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기존의 짧은 인과관계의 규명과 분절화를 넘어서는 정치생태학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둘째, 보다 복합적인 인과관계의 설정이다. 기존 연구의 가장 주된 양상은 독립변수와 몇 개의 혼란변수, 종속변수로 매우 단순한 모형을 구축하는 것이다. 대개 그 인과관계의 방향도 한 방향일 때가 많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계나 사회공동체 안에서는 독립변수와 그것에 영향을 받는 종속변수를 명확히 구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역인과 관계(reverse causality), 되먹임(feedback)과 반사실적 의존관계(counterfactual dependence) 역시 고려하는 모형이 필요하다.

셋째, 빅 히스토리(big history) 기반 접근이다. 분절화되고 짧은 인과관계의 중요한 속성 중 하나는 원인과 결과의 시간을 너무 짧게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만 해도 그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백만 년간 바이러스와 숙주들의 변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바이러스에 대한 인간의 면역변화도 수백만 년에 걸쳐 일어난다.

넷째, 이상과 같은 새로운 이론은 인간을 넘어선 생태 공동체의 평화적이고 민주적 맥락 속에서 탄생, 검증, 이용, 평가되는 기전을 내포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연구자는 과학적 발견이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과학적 발견이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조사가 함의하는 사회적, 생태적 의미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Neumann, 2009). 아울러 이 모든 접근들을 넘어서는 새로운 상상력도 필요하다.

새로운 이론 탄생의 장애물들

새로운 이론은 저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수많은 연구자의 헌신과 노력, 그 연구의 비용을 지불하는 이들과 실험 대상이나 응답자가 되어야 하는 사람들 기여, 동식물 등의 희생과 헌신도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기존 이론, 이론가와의 대결도 불가피하다. “새로운 체계를 만들려는 시도는 성공하기 어렵고, 위험한 일이다. 낡은 질서에서 혜택을 입어온 이들은 개혁가에 반대하고, 반면 새로운 제도하에서 혜택을 입게 될 사람들은 그저 소극적인 지지자로 남기 때문이다(Machiavelli, 2015).” 그렇기에 새로운 이론은 기존 이론과 그 이론에 근거한 분석 및 해석이 편하고 거기서 이득을 얻는 이들의 극렬히 저항을 넘어서는 분투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대립, 갈등은 새로운 이론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 불가피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이론의 탄생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표적으로 기존 학문세계를 주도하고 있던 이론은 개인주의적 접근이고, 의과학 영역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모든 현상을 세포나 분자 수준으로 설명하려는 환원론과 기계론적 접근인 ‘생의학적 모형(bio-medical model)’이다. 새로운 이론은 무엇보다 이 기존의 이론과 대결하고 넘어서야 한다. 그러나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조엘 아이작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서구 사회’ 내에서 개인주의적 접근법이 지배적이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개인주의적 접근법이 강력한 이유는 단순히 설득력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노골적으로 정치적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Isaac, 2007).

소결: 새로운 이론의 탄생을 기다리며

리처드 레빈스의 말처럼, 우리는 일시적인 조건에 매몰되지 않고 불의를 분석하기 위해 이론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명백한 불의를 해소하는 일이 시급하기 때문에 흔히 반지성적 편견과 이론을 경멸하는 단기적 실용주의에 함몰되곤 한다(레빈스, 2009). 이론은 이해할 수 없는 사치가 아니라 실제적 필수이다. 즉, 이론은 경합하는 설명을 정식화하고, 실험하고, 평가하는 데, 즉 ‘좋은 과학(good science)’에 필수적이다. 그리고 ‘좋은 과학’은 결국 이로운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과학의 전제 조건이다(Krieger, 2011). 또한 래이몬드 윌리엄스는 ‘이론이 가진 변화의 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론화 행위는 항상 실행과 실제적인 관련을 가지는데, 행해진 것, 관찰된 것, 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체계적) 설명이다. 이론이 가진 변화의 힘은 “설득력 있는 절망보다 실제적인 희망”이 만들어질 때 나타난다(Williams, 1983).

새로운 이론의 탄생은 단지 학계의 성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팬데믹의 반복적 도래, 기후와 환경위기, 전쟁과 분쟁으로 인해 암울한 인류가 생존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토대를 제공할 것이다. 이는 인간이 공유하거나 접근 가능한 어떤 상정된 준거 현실(referent reality)을 포착하고 다양한 인과관계를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입증하며 새로운 사실들이 일반 대중과도 폭넓게 공유하는 공간으로서 좋은 학술지의 존재가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References

1 

Isaac J.. (2007). The human sciences in cold war America. The Historical Journal, 50(3), 725-746.

2 

Krieger N.. (2011). Epidemiology and the people's health: theory and context. Oxford University Press.

3 

Levins R., Lewontin R.. (1985). The dialectical biologist. Harvard University Press.

4 

Neumann R. P.. (2009). Political ecology: theorizing scale. Progress in human geography, 33(3), 398-406.

5 

McMichael A. J.. (1999). Prisoners of the proximate: loosening the constraints on epidemiology in an age of change. American journal of epidemiology, 149(10), 887-897.

6 

Wallace W.. (2018). The logic of Hegel. BoD–Books on Demand.

7 

Williams R.. (1983). Towards 2000. London: Chatto & Windus. In: The Hogarth Press.

8 

레빈스리처드. (2009). 열 한번째 테제로 살아가기: 건강, 생태학, 과학, 그리고 자본주의(박미형, 신영전, 공역). 파주: 한울.

9 

Machiavelli Niccolò. (2015). 군주론 4판(강정인, 김경희, 공역). (까치에서 재인용. (원서출판 1532))

10 

박노자. (2020. 4. 1.). 코로나가 무너뜨린 신화들.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