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죽음, 우리 사회는 준비되어 있는가?
Are We Ready to Make Death with Dignity Possible?
태어난 순간부터 인간 누구나 그 위험에 노출되는 죽음, 죽음은 피해갈 수 없는 생애주기상의 한 단계라 할 수 있다. 죽음을 개인에게 닥치는 순간의 사건으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 죽음은 많은 경우 당사자에게도, 그리고 그 죽음을 수용하는 주변인들에게도 하나의 과정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2000년대 초반 6만 명 수준이던 80세 이상 사망자는 2022년에 20만 명을 넘어섰고, 전체 사망자 가운데 80세 이상의 비율도 2000년 25.4%에서 2022년 53.8%로 늘어났다(통계청, 2024).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등급인정자의 규모도 매년 증가 추세에 있고, 2022년 현재 전체 노인 가운데 장기요양보험 등급인정자의 비율이 10.2%에 이른다(국민건강보험공단, 2023).
이들 지표들은 한결같이 사고와 같이 어느날 갑자기 준비되지 않은 채 맞이하는 죽음보다,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아온 생애말기의 지난한 과정들 끝에 기다리고 있는 죽음이 갈수록 더 보편화될 것임을 가리키고 있다. 특히 초고령화사회의 도래를 목전에 두고있을 뿐만 아니라, 주요 국가들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경향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2024년 제9회 보건사회연구 콜로키움은 이러한 상황 인식을 바탕으로 ‘존엄한 죽음’에 관한 공론장을 만들었다. “우리는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 이번 콜로키움에서는, 세 명의 발제자와 네 명의 토론자가 각자의 오랜 연구 경험과 이에 기반한 성찰을 바탕으로 각기 다른 측면에서 이 질문에 답을 시도하였다.
우선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정경희 박사는 “한국사회에서의 존엄한 죽음”이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죽음과 존엄의 개념에 대한 소개와 함께, 존엄한 죽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담은 인문학적 개념화를 시도하였으며, 특히 한국사회에서의 존엄한 죽음의 의미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주었다. 정박사의 발표는 죽음의 유형과 단계, 태도, 존엄한 죽음의 요소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소개하면서 죽음의 과정에서 존엄성 확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한국사회에서 존엄한 죽음을 구현하기 위한 주요한 과제로서 죽음 관련 자기결정권 구현, 중요한 타자와의 관계 보존, 상황에 대한 맞춤형 대응, 그리고 인프라 구축과 인식전환이 병행되어야 함을 제시하였으며, 이를 위해서는 중앙 및 지방정부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NGO 등 다양한 주체가 적극적 협업을 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다음으로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의 권역호스피스센터장인 김대균 교수는 “우리 시대의 흔한 죽음, Medicalized Death”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존엄한 죽음에 대한 바람과 현실 사이의 격차를 고찰하면서, 의학적 문제가 아니라 삶의 사건으로서 죽음을 접근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김교수는 좋은 죽음의 핵심요인으로 서구 국가의 경우 ‘개인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반면 아시아 국가들은 ‘가족과의 관계’가 강조되는 차이점이 있음을 제시함으로써 존엄한 죽음이 공동체의 문화, 종교, 그리고 개인적 경험에 의해 영향을 받음을 지적하였다. 그는 한국사회 존엄한 죽음 관련 문제로 질 높은 생애말기 돌봄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증가한 데 비해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적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문제를 강조하였다. 특히, 모든 생애말기 환자의 돌봄에 호스피스완 화치료 서비스(3단계 완화의료)가 필요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비암성질환 말기환자의 질 높은 생애말기돌봄을 위한 제도적 인프라(1단계, 2단계 완화의료)가 부족한 문제가 심각함을 지적하였다. 또한, 죽음을 앞둔 당사자가 선호하는 사망 장소가 주로 가정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대부분의 사람은 의료기관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하였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현실적으로 급성기 병원이나 요양 병원 등에서 이루어지는 임종의 질을 향상하는 방안이 고려되어야 함과, 안전하고 질 높은 임종기 돌봄을 위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마지막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김정회 박사는 “존엄한 죽음을 위한 사회보장 제도의 방향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사회보장 제도적 측면에서의 현황과 과제를 짚어보았다. 김박사는 호스피스 서비스, 완화치료, 그리고 생애말기 치료의 관계와 개념과 개념의 진화과정을 정리하여 소개하면서, 세 가지 서비스의 속성이 거의 비슷하지만 개별 국가별 보건의료제도와 문화 및 역사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해왔으나, 최근 들어 호스피스와 생애말기돌봄의 차이가 점차 줄어들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김박사는 가정에서의 존엄한 죽음 뿐만 아니라 호스피스 병동과 일반 병원에서도 존엄한 죽음을 위한 준비가 부족하다는 점을 결론적으로 지적하면서 생애말기돌봄을 사회보장제도에 포함할 것과, 호스피스 서비스 이용 시기 및 이용자 접근성 강화, 사각지대 해소 등 호스피 스 완화의료 제도의 보완, 그리고 통합적 생애말기돌봄 체계의 구축 등을 주요한 과제로 제시하였다.
이에 대한 토론에 나선 김명희 전 국가생명윤리정책원장은 죽음보다는 삶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존엄한 삶을 위한 사회보장제도의 보완 없이 존엄한 죽음을 준비할 수 없다고 하였다. 서이종 서울대학교 교수는 한국의 문화에 맞는 관계주의적 존엄함에 대한 접근과 이해가 필요하며, 존엄한 죽음, 좋은 죽음(good death)을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있도록 ‘죽음 교육’이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최혜지 서울여자대학교 교수는 죽음의 자기결정권을 중심으로 존엄한 죽음을 논의하면서 결국 존엄한 삶의 토대 위에서만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존엄한 죽음의 실천일 수 있다고 결론 맺었다.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장숙랑 중앙대학교 교수는 생애말기돌봄의 불평등 문제를 노인의 관점에서 고찰하였다. 장교수는 죽음의 과정에 대한 이해를 신체적 조건만으로 이해하는 것은 제한적이며, 사회관계적, 정서적, 영적 조건에 대한 이해가 병행되어야 죽음의 과정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발표와 토론에 이어진 참석자들과의 자유토론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제출되었다.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라는 개념이 신중하게 논의되어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생애말기돌봄에 대한 정부정책의 보수적, 소극적 접근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도 제기되었다.
이번 콜로키움은 한국 사회 ‘죽음’의 문제에 대한 논의를 공론장으로 확장했다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정책전문가뿐만 아니라, 의료현장의 전문가, 학계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존엄한 죽음’이라는 사회적 과제에 대한 현황과 과제에 대한 성찰과 제안을 폭넓게 주고받는 성과를 남긴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보건사회연구』 이번 호에는 김정회의 발제문과 최혜지의 토론문이 특집 논문으로 같이 발간되어 의미 있는 논의의 결과물이 기록으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콜로키움에서 확인되었듯이 ‘존엄한 죽음’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더 많은 성찰과 발전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이는 제도적, 정책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학술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보건사회연구』 편집위원 김진석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