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 의해 은폐된 삶: 특수임무수행자의 사회 복귀와 제도적 배제 경험에 관한 질적 사례연구

Lives Concealed by the State: A Qualitative Case Study on the Social Reintegration and Institutional Exclusion Experiences of Special Operations Personnel

알기 쉬운 요약

이 연구는 왜 했을까?
국가의 비밀 임무를 수행했지만, 그 존재가 오랫동안 ‘은폐’되었던 특수 임무수행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를 수행하였다. 이들이 겪는 개인적 상처와 제도적 배제의 구조적 문제를 당사자의 생생한 경험을 통해 직접 분석하고, 이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정책 대안을 찾고자 한다.
새롭게 밝혀진 내용은?
특수임무수행자들은 전역 후에도 기밀 유지 스트레스, 정신적ㆍ육체적 고통, 사회적 고립 등을 공통적으로 겪고 있었다. 특히 국가의 ‘은폐’가 개인의 상처와 제도적 ‘배제’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확인했으며, 현재의 보훈제도가 이들의 트라우마를 회복시키기에 역부족임을 밝혔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특수임무수행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존의 보훈 정책 패러다임을 ‘경험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트라우마 회복을 위한 전문 상담 체계를 도입하고, 훈련 후유증을 관리할 시스템을 구축하며, 향후 제도 설계 과정에 당사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Abstract

Drawing on the lived experiences of Special Operations Personnel, this study analyzes how state-induced concealment generates moral injury and institutional exclusion, and proposes experience-centered policy interventions to redress these structural failures. Through a qualitative case study approach, in-depth interviews were conducted with six individuals who had performed special missions. Data were analyzed using both within-case and cross-case analysis methods to identify the structural characteristics and shared themes of their experiences.

The findings reveal that participants commonly experienced ongoing stress related to confidentiality obligations, psychological and physical distress, and social isolation after discharge. A key issue raised was the insufficiency of existing institutional systems and support mechanisms to enable meaningful recovery and reintegration. These results highlight the unique status of Special Operations Personnel as “concealed victims” and the enduring nature of their trauma.

The study underscores the need for a paradigm shift toward experience-based policies for veterans. Recommendations include the implementation of recovery-oriented counseling systems, the development of structured support for post-training aftereffects, and the design of institutional frameworks grounded in the active participation of affected individuals.

keyword
Special Operations PersonnelSocial ReintegrationTraumaQualitative Case StudyVeterans Policy

초록

본 연구는 국가에 의한 ‘은폐’가 개인의 ‘상처’와 ‘제도적 배제’로 이어지는 과정을 특수임무수행자 경험을 통해 분석하고, 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험 중심의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다. 질적 사례연구 방법을 활용하여 총 6명의 특수임무수행자들과 심층면담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였고, 사례 내 분석과 사례 간 분석을 병행하여 당사자 경험의 구조적 특성과 공통 주제를 도출하였다. 분석결과 특수임무수행자들은 전역 후에도 지속적인 기밀 유지 스트레스, 정신적ㆍ육체적 고통, 사회적 고립감 등을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특히 현재의 제도와 지원이 삶을 실질적으로 회복시키기에 부족하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를 통해 특수임무 수행자의 ‘은폐된 희생자’로서의 특수성과 트라우마의 연속성을 규명하였으며, 경험 기반 보훈 정책 패러다임 전환 필요성을 제시하였다. 더불어 회복중심 상담체계 도입, 훈련 후유증 관리체계 구축, 당사자 참여 기반의 제도 설계 등 실천적ㆍ정책적 개선 방향을 제안하였다.

주요 용어
특수임무수행자사회 복귀트라우마질적 사례연구보훈 정책

Ⅰ. 서론

2025년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대통령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 희생하신 분들께 충분한 예우를 다하지 못하였음을 인정하며, 국민의 안전과 생명, 국가 공동체의 존속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께 걸맞은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대한민국 대통령실, 2025). 한국에는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기리고 지원하는 다양한 제도가 있다. 그러나 그 제도의 범위와 내용은 ‘드러난 전쟁’과 ‘공식적인 임무’에 치우쳐 있으며, 그 이면에서 은밀하고 비공식적으로 작전 수행에 동원된 이들에 대한 충분한 관심과 배려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한 행정의 누락이 아닌 보훈 정책이 ‘누구를 정당한 대상자로 보느냐’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제도 설계가 맞물려 빚어진 구조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가시적 전투 = 정당한 보훈’이라는 인지틀이 제도와 집행을 통해 재생산되면서, 비가시적 임무수행자는 제도 밖으로 밀려나는 경향이 강화되어 왔다.

특수임무수행자는 과거 국가의 필요에 의해 비밀리에 북한에 침투하여 첩보 및 공작활동에 투입되어 희생을 강요당한 사람들이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수치만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정부는 2003년 처음으로 북파공작원 양성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13,835명의 특수임무수행자들을 양성했으며, 이 중 7,726명이 훈련이나 임무 수행 중 사망했다는 사실을 공표했다(오일환, 2005).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으나 현재(2025년 6월 기준)는 2,808명만이 살아서 보훈 대상으로 인정받고 있다(국가보훈부, 2025).

이들은 인명 살상, 절취, 납치, 폭파 등 일상생활에서 전혀 사용할 수 없는 특수한 기술들을 훈련받았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고강도의 위험한 임무와 훈련을 수행하다 보니 동료들의 죽음을 직ㆍ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경우가 많았다(김성호, 2022; YTN, 2024). 2000년 국정감사를 통해 특수임무수행자들의 존재와 이들이 겪은 피해 현황 및 예우 문제가 최초로 사회적으로 공론화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2004년 특수임무수행자 보상 및 예우에 관한 법령이 제정되어 일정한 예우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실제 현장에서 이들의 어려움은 여전히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심사 단계에서의 높은 증빙 요구, 복합 절차, 심리적 낙인 등은 권리 접근을 추가로 제한하는데, 이는 제도 설계 자체가 초래하는 ‘행정적 부담’의 전형적 양상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심사위원의 재량과 자원의 제약은 비표준 사례인 특수임무수행 경험을 더 취약하게 만든다.

특수임무수행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대다수가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심각한 신체적 장애와 정신적 트라우마를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김성호, 2022; YTN, 2024). 따라서 이들의 사회 복귀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적 지원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한 상황이다.

특수임무수행자들의 사회 복기 지원을 위해 여러 연구가 수행되었는데, 선행연구들은 임상적으로는 특수임무수행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같은 정신질환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김태열, 2013; 이종환ㆍ장문선ㆍ김태열, 2016; 김윤영ㆍ김태열, 2017), 정책적으로는 특수임무수행 당사자 내지 유족에 대한 보상제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강창국, 2008; 김현수 외, 2016; 장다흰ㆍ박용성, 2020; 송병근ㆍ박성수ㆍ유수민, 2023).

정신질환 관련 연구들은 특수임무수행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수준이 일반인보다 높음을 입증하였고, 직업, 소득 등 관련 영향 요인을 함께 분석하여 정신건강 문제의 원인을 일부 밝혀냈다(김태열, 2013; 김태열 외, 2016; 이종환 외, 2016). 그러나 이러한 양적ㆍ임상적 접근은 트라우마의 ‘정도’를 측정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그 트라우마가 ‘은폐된 희생’이라는 특수한 역사적ㆍ사회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경험되고 해석되는지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제공하지 못하는 명백한 한계를 갖는다. 즉, 이들의 고통이 갖는 정서적ㆍ서사적 실체를 드러내지 못하고 개인의 정신병리 문제로 환원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정신건강 문제에 효과적으로 개입하기 위해서는 질적 서사 기반의 접근을 통해 정신질환의 경험적 내용을 심층적으로 확인할 필요성이 있다.

특수임무수행자의 보상제도 관련 연구들은 금전적 보상, 의료서비스, 명예 회복 등 정부의 책임 있는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강창국, 2008; 김태열 외, 2016; 오일환, 2004; 2005). 그러나 대부분의 연구는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 문제를 분석하는 ‘하향식(top-down)’ 관점에 머물러 있어, 전문가 관점의 해석이나 제언 중심으로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정작 제도의 수혜자인 당사자의 목소리가 배제된 채 한계적 진단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 실질적인 제도 개선을 위해 정책의 의도와 당사자가 체감하는 현실 사이의 ‘괴리’가 왜 발생하는지, 제도가 왜 이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회복시키지 못하는지를 제도 밖의 삶의 맥락을 중심으로 직접 청취하고 반영할 필요성이 있다.

한편, 해외 문헌은 이러한 구조적 침묵을 보완할 수 있는 역사적 통찰과 제도적 모델을 제공한다. Logue & Blanck(2018)은 19세기 미국 북군 참전군인의 정신질환 통계를 분석하며, 1890년 인구조사 자료가 자기보고 및 시설보고의 한계와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정신질환 실태를 과소 반영했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당시 정신질환은 제도적으로 배제된 영역이었으며, 이는 참전군인의 복지 체계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남북 전쟁 참전군인의 사회 복귀 경험이 주거 불안, 정신적 고통, 자살 등 다양한 궤적을 포함한 복합적 과정이었음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자살은 단순한 개인의 고통이 아닌 참전군인 집단 전체의 심리적 위기를 경고하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Logue & Blanck, 2018). 이는 특수임무수행자들의 사회 복귀 이후 삶의 고통을 구조적ㆍ장기적 관점에서 재조명할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사례로 기능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특수임무수행자들이 사회 복귀 후 겪는 어려움의 구조적 실체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효성 있는 정책 대안을 모색하는 데 목적이 있다. 기존 연구가 이들의 고통을 현상적으로 기술하거나 제도를 외부에서 평가하는 데 머물렀다면, 본 연구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 ‘은폐성’이라는 특수한 조건이 어떻게 개인의 삶과 제도적 경험 전반을 관통하며 구조적인 문제로 작동하는지를 이론화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연구목적을 설정하였다. 첫째, 특수임무수행자의 사회 복귀 이후 경험 세계를 심층적으로 탐색하여, 이들의 고통이 현재 국가 보훈제도와 어떻게 충돌하고 괴리되는지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이를 통해 ‘보훈 심사의 역설’과 같이 제도의 의도와 현실이 어긋나는 구조적 모순의 실체를 드러낸다. 둘째, 이들의 생애 경험 분석을 통해, 국가에 의한 ‘은폐’가 개인의 ‘도덕적 상처’와 제도적 배제‘로 이어지는 연쇄적 메커니즘을 개념화하고 이론적으로 규명한다. 이는 ’은폐-상처-배제‘의 경로를 밝힘으로써 기존 참전군인 연구만으로 설명되지 않았던 특수임무수행자 문제의 고유한 작동 원리를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셋째, 이상의 분석과 이론화 작업을 바탕으로 ’경험 중심‘의 관점에서 현행 제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실천적ㆍ정책적 대안을 제시한다. 이는 입증 책임의 전환, 사회적 명예회복 절차 마련 등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정책 방향을 포함한다.

이처럼 기존 연구들은 특수임무수행자들이 겪는 문제의 ‘현상’을 양적으로 측정하거나 ‘제도’를 외부에서 분석하는 데 기여했지만, 정작 그 현상과 제도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고통의 ‘의미’와 ‘과정’을 해석하는 데는 이론적 공백을 남겼다. 본 연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이론적 필요성이 제기된다.

본 연구는 PTSD 진단 수준이나 정책 구조 분석에 초점을 두었던 기존의 실증주의적ㆍ제도주의적 접근에서 벗어나, 당사자의 생생한 목소리와 생애경험에 주목하는 해석적 접근(interpretive approach)을 통해 이론적 기여를 하고자 한다. 국가에 의해 존재 자체가 부정당했던 ‘은폐된 희생자’ 경험은 일반적인 참전군인 트라우마 이론만으로는 온전히 설명될 수 없는 특수성을 지닌다. 따라서 본 연구는 제도 안에서 포착되지 않는 이들의 서사를 심층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국가 주도의 비밀주의와 그에 따른 배제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고 재구성하는지에 대한 ‘아래로부터의(bottom-up)’ 이론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특수임무수행자의 생애사적 접근을 통해 ‘기밀 유지 스트레스’, ‘사회적 고립’, ‘보훈 심사의 역설’ 등 선행연구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한 고유한 해석 범주를 도출하고, 이를 통해 기존의 양적ㆍ정책 중심 연구와의 본질적인 차별성을 확보하고 보훈 정책 담론에 새로운 이론적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Ⅱ. 이론적 배경

1. 특수임무수행자의 삶

특수임무수행자들이 사회 복귀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를 우선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수임무수행자들이 어떤 일을 했으며, 훈련이나 임무 수행 과정에서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를 이해함으로써 그들의 사회 복귀나 적응 문제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특수임무수행자’는 국가의 필요에 의해 차출되어 희생이 요구되는 ‘특수임무’를 수행한, 흔히 ‘북파공작원’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말한다(오일환, 2004).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에 관한 법률에서도 특수임무를 특별한 내용ㆍ형태의 정보수집 등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를 위한 특별한 희생이 요구되는 활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법에 명시된 것처럼 희생이 요구되는 임무를 수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특수임무수행자들은 국가에 의해 은폐된 희생자로 살아왔다. 정부에서 정전협정 위반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 등으로 그들의 존재를 부인했기 때문이다(김보영, 2011). 1999년 국회에서 북파공작원의 실체를 밝히면서 그들의 삶이 조명받기 시작했다(오일환, 2004).

앞서 밝혔듯이 특수임무수행자들은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활동했다.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특수임무수행자를 ‘1948년 8월 15부터 2002년 12월 31일까지 특수임무를 수행하거나 훈련을 받은 자’로 정하고 있다. 법에 명시된 날짜에 비추어 일견 특수임무수행자들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불상시(不詳時)부터 활동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특수임무행자로서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법에 명시된 시기에 특수임무수행자로 활동한 사람들은 대부분 군인이 아닌 민간인 신분이었다. 정부에서는 북파공작원으로 군인을 투입했을 경우 국제법 위반이 되기 때문에 민간인을 데려다 요원으로 훈련시켰다(김성호, 2022). 당시 군에서는 특임무수행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훈련이나 구타 및 가혹행위로 부상을 입더라도 병상기록을 남기지 않았으며, 민간병원을 이용한 경우도 가명을 사용하게 하였다(김현수 외, 2016). 이 때문에 특수임무수행자들은 후유증이 생겨도 기록이 없어 제대로 된 의료지원을 받을 수 없는 실정이다.

특수임무수행자들은 육체적 건강 문제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 문제도 겪었다. 이들은 “상상초월 지옥훈련과 저승으로의 여행”이라고 표현(김성호, 2022)할 정도로 훈련과 임무 수행 과정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특수임무수행자 257명을 대상으로 한 MMPI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연구에 따르면 정상인 집단의 평균 점수를 15점으로 보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진 대상자를 17점으로 구분하는 데, 특수임무수행자들의 평균 점수는 34.3±7.1점으로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김태열, 2013).

또한, 특수임무수행자들은 존재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전역 후에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다. 그들은 계약 당시 금전적 보상과 취업을 약속받았다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김성호, 2022). 특수임무수행자들은 2004년 관련 법이 만들어지고 나서야 합법적으로 보상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연구들도 있다(강창국, 2008; 오일환, 2005; 제성호, 2014).

2. 특수임무수행자의 사회 복귀 어려움

특수임무수행자의 사회 복귀나 적응 문제에 관한 연구가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증언에 기반한 기록이나 참전군인 같은 유사한 대상을 연구한 문헌에 기댈 수밖에 없다. 우선, 특수임무수행자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진 문헌(김성호, 2022: 232)에 따르면 특수임무수행자 중에 “북파되었을 때의 정신적 압박과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자살을 시도한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그만큼 특수임무수행자들에게 있어 사회 복귀는 쉽지 않은 과제였다.

정확히 일치할 수는 없겠지만 참전군인들의 사회 복귀의 어려움을 다룬 연구들에 따르면, 먼저 사회로 복귀한 참전군인들은 군 문화와 민간 문화의 차이로 인해 갈등을 경험한다(Demers, 2011; Romaniuk & Kidd, 2018). 위계, 구조, 순응, 동지애를 강조하는 집단주의 문화에서 덜 구조화되고 개인화된 민간 문화로의 전환을 요구받는 것이다(Romaniuk & Kidd, 2018). 이러한 갈등 상황에서 참전군인들은 새로운 사회의 규칙을 배우고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더불어 참전군인들은 가족과 친구와의 관계 단절을 경험하기 때문에 재연결 과정에서 가족과 친구로부터 소외감을 느낀다(Ahern et al., 2015; Demers, 2011; Doyle & Peterson, 2005; Romaniuk & Kidd, 2018).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비밀주의’이다. 정보 관리는 모든 전쟁에서 필수적이기 때문에 전투에 참여한 군인은 비밀 작업을 수행하게 되고, 이러한 비밀 준수 지시로 인해 군인들은 자신의 행방에 대한 정보를 원하는 가족이나 친구와 많은 정보를 공유할 수 없게 된다(Sørensen, 2015). 이러한 군대의 비밀주의는 가족이나 친구 같은 친밀한 관계를 단절시킨다. 특히, 참전군인이 트라우마를 겪는 경우 감정적 무감각과 분노가 가족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가족의 지원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Ray & Vanstone, 2009). 이때 특수임무수행자에게 ‘비밀주의’는 작전 특성상 더욱 강제되고 장기화되며, 임무ㆍ훈련 기록의 비공개로 인해 ‘경험 검증’이 제한된다. 그 결과 관계 단절과 더불어 ‘제도 접근의 장벽(입증 부담 등)’이 중첩되어 사회 복귀 곤란을 심화시킨다.

참전군인들은 정체성 위기 역시 경험한다. 이들은 군사 훈련과 복무 경험을 통해 임무에 충실한 군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데, 사회에서는 이러한 정체성을 상실하고 다른 정체성을 요구받는다(Demers, 2011; Romaniuk & Kidd, 2018). 이때 정체성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참전군인들은 목적 상실을 경험하기도 한다. 군 복무는 군인들에게 강력한 목적의식을 제공하는데, 이러한 목적의식은 이들을 복무 기간 동안 가치 있고 고귀한 대의에 의미 있는 기여를 했다고 느낀다(Romaniuk & Kidd, 2018). 하지만 참전군인들은 사회에 복귀하는 순간부터 삶의 목적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특수임무수행자는 사회적 인정과 서사가 불충분하여 ‘기여감과 목적감 회복’이 더디게 진행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제도에 대한 신뢰 저하와 ‘제도적 배신감’의 정서로도 연결될 수 있다(McAdams et al., 2025).

일부 참전군인들은 정신적 또는 신체적 손상을 입은 채 사회에 복귀한다(Lapierre et al., 2007; Sayer et al., 2014). 특히, 진단 가능한 장애가 없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사회 복귀를 방해하는 기능적 문제를 경험한다(Sayer et al., 2014). 이는 특수임무수행자에게도 유사하게 관찰되고 있으며,ㆍ대인관계ㆍ취업, 일상생활 등에서 ‘보이지 않는 손상’으로 남아 일상 복귀를 지연시키고 있다(고현종, 2025; 김성호, 2022; 김윤영ㆍ김태열, 2017).

앞서 살펴보았듯이 특수임무수행자들은 군사훈련을 받고 임무에 투입되었다는 점에서 사회로 복귀한 참전군인들이 겪는 어려움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 같은 어려움은 혼자서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회적 차원에서 해결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아직 한국에는 특수임무수행자의 사회 복귀 어려움을 종합적으로 해결할 지원체계가 없기 때문에 대안 마련을 위해서는 해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해외에서는 핀란드와 아일랜드가 참전군인에게 사회 복귀를 위한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핀란드는 전역 후 교육, 심리평가, 가족 대상 상담, 동료지원 모임 등 국가ㆍ민간 협력 기반의 통합적 사후지원 체계를 운영하며, 특히 군 사회복지사의 전역자 전담 상담과 고위험군 연계를 수행하며, 사회 복귀 과정에서의 조기 개입을 중시하고 있다(Seppanen & Maijanen, 2022). 아일랜드는 전역 군인의 사회 복귀를 지원하기 위해 진로설계, 심리상담, 전환기 정체성 재정립을 중심으로 한 사회복지 서비스를 운영하며, 군 복무 경험을 민간역량으로 전환하도록 돕고 있다. 또한, Friday Club을 통해 전역 후 군과의 연결을 유지하고, 주거ㆍ복지ㆍ심리 지원을 통합 제공하는 지속적 개입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Fallon & Hickey, 2022).

이와 같이 해외 문헌은 참전군인들의 사회복귀를 보상 중심이 아닌 회복(resilience)과 재정착(resettlement)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대안을 제공하며, 국내 연구가 놓치고 있는 당사자 경험의 정합성과 제도 설계의 정당성을 확대하는 데 유용한 비교 사례로 기능할 수 있다.

3. 특수임무수행자 관련 지원 제도 현황 및 한계

특수임무수행자에 대한 국가적 지원과 예우는 2000년 국정감사를 통해 이들의 존재가 공론화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사회적 요구 끝에 2004년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에 관한 법률특수임무유공자 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특수임무수행자 관련 법령들은 특수임무수행자와 그 유족에게 보상금, 의료지원금, 생활지원금 등을 지급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며, 이는 국가의 필요에 의해 희생을 감내한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금전적 보상을 목표로 한다(오일환, 2005).

하지만 이러한 제도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서는 여러 한계점이 지적되고 있다. 첫째, 보상 심사 과정의 문제이다. 특수임무의 특성상 훈련 및 임무 수행 과정이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기 때문에, 부상을 입어도 공식적인 진료 기록을 남기기 어려웠다(김현수 외, 2016). 그러나 현행 보훈 심사는 객관적이고 가시적인 기록을 중심으로 상이등급을 판정함으로써, 기록이 없는 대다수의 특수임무수행자들이 정당한 보상에서 배제되는 ‘보훈 심사의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제성호, 2014). 둘째, 지원 내용의 실효성 부족이다. 현행 지원은 일시적인 보상금 지급과 일부 의료비 지원에 집중되어 있어 이들이 겪는 장기적인 트라우마, 사회적 고립, 경제적 불안정 등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 제한된다(강창국, 2008). 특히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상담 및 치유 프로그램, 안정적인 노후를 위한 고용 지원 등은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이처럼 제도는 존재하지만, 그 내용이 당사자들의 실제 삶의 어려움과 괴리되어 있다는 점이 선행연구들에서 지속 비판받고 있다(고현종, 2025; 송병근ㆍ박성수ㆍ유수민, 2023).

따라서 특수임무수행자들이 느끼는 ‘제도와의 괴리’를 분석하기 위하여 법과 현실의 간극이 발생하는 원인을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 심층적으로 규명할 필요성이 있다.

Ⅲ. 연구 방법

1. 사례연구

질적 사례연구는 특정 개인, 조직, 사건 등 구체적이고 맥락적인 사례를 실제 환경 속에서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하나의 현상이나 주제를 깊이 이해하는 연구 방법이다(Creswell & Poth, 2016). 사례는 연구목적에 따라 학습 가능성과 이론적ㆍ실천적 함의를 도출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선정되며, 이때 접근성 및 정보제공자의 존재 여부가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된다(Stake, 1995).

연구자는 사례의 시ㆍ공간적 경계를 명확히 설정해야 분석단위를 분명하게 하고, 자료 수집의 방향성을 확보할 수 있다(Creswell & Poth, 2016). 자료는 심층면담, 관찰, 문서, 사진, 영상 등 다양한 자료원을 활용하여 다각도로 사례를 구성해야 하며(Baxter & Jack, 2008), 단일 사례 내 분석 또는 다수 사례 간 분석을 통해 보다 일반화 가능한 해석을 도출할 수 있다(Creswell & Poth, 2016).

분석은 각 사례의 고유한 패턴을 먼저 파악하고, 반복되는 주제와 의미를 중심으로 사례 주제(case themes)를 도출하고 이를 구조화 한다. 이후 사례 간 유사성과 차이 속에서 패턴 형성(pattern building)을 통해 이론적 설명과 논리 구조를 구성할 수 있으며, 이는 단순한 기술을 넘어 이론적ㆍ실천적 함의를 제공하는 데 기여한다(Yin, 2017; Stake, 1995).

본 연구의 목적은 특수임무수행자들의 사회 복귀 경험을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것에 있으며, 이를 위해 질적 연구방법이 적합하다고 판단하였다. 그 이유는 특수임무수행자의 경험은 정량화된 변수 중심의 접근으로는 그 복합성과 내면적 의미를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고 내부자의 시선과 서사를 중심으로 한 해석적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질적 연구방법론 중 사례연구(case study)를 선택한 이유는 연구 참여자인 특수임무수행자들이 특정 시ㆍ공간 속에서 고유한 경험의 경계를 형성하고 있는 독립된 사례이기 때문이다. 사례연구는 경계가 명확한 하나 또는 복수의 사례를 중심으로 특정 이슈 또는 현장의 심층적 탐색을 가능하게 하는 연구 전략으로 정의된다(유기웅, 정종원, 김영성, 김한별, 2012; Creswell & Poth, 2016). 연구 참여자인 특수임무수행자들은 남ㆍ북 간 군사적 대치 상황에서 국가에 의해 조직된 비공식 임무를 수행했으나 오랜 기간 동안 법적 지위와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주변화된 삶을 살아온 집단이다. 이러한 역사적ㆍ제도적 배경은 그들이 일반 군인과 구별되는 특수한 복무 경험, 신체적ㆍ정신적 상흔, 사회 복귀의 구조적 한계를 갖게 했으며, 이러한 특수성이 사례연구를 통해 다각도로 조명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특히, 여러 사례연구 방법 중에서도 Creswell과 Poth(2016)가 제안한 방법은 ‘사례 내 분석’을 통해 개별 참여자의 삶의 맥락과 경험을 탐색하고, ‘사례 간 분석’을 통해 이들 경험의 공통점과 차이점, 구조적인 특성을 도출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이러한 사례연구 방법이 특수임무수행자들의 개별 사회 복귀 경험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어려움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2. 사례자 선정

본 연구의 사례자(면담 참여자)는 특수임무수행자들이며, 기초정보는 <표 1>과 같다. 사례자는 연구 주제와 관련이 있고 풍부한 자료를 제공할 사례를 확보하는 목적 표집(purposive sampling) 방법을 활용해 선정했다(Yin, 2016). 연구자들은 연구의 목적에 맞는 사례를 확보하기 위해 몇 가지 선정 기준을 정하고 ‘특수임무유공자회’에 사례자 선정을 의뢰했다. 사례자를 선정을 위한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특수임무수행자(수행자) 관련 법령에 따라 공식적으로 특수임무수행자(수행자)로 인정된 자일 것. 둘째, 과거 특수임무(북파 공작, 정찰, 첩보 활동 등)를 실제 수행했거나, 이를 위한 훈련을 이수한 경험이 있는 자일 것. 셋째, 사회 복귀 이후의 삶, 경험, 인식 등을 구체적이고 충분히 서술할 수 있는 의사소통 능력과 회고적 반성 능력을 갖춘 자일 것이다. 이러한 기준을 설정한 이유는 본 연구가 단순히 특수임무를 수행했던 과거의 경험만을 다루려는 것이 아닌 그 이후 이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로부터 강요된 희생 이후 사회로 돌아와 어떤 어려움을 겪었고, 국가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등을 중심으로 분석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과거와 현재의 삶을 비교해 변화의 흐름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례자, 즉 삶의 전환과정을 자기 목소리로 표현할 수 있는 참여자를 선정하는 것이 이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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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사례자 기초정보
구분 나이 성별 군별 소속 신 분 입대 시기 전역 시기 훈련 지역 북파 유무
사례 1 70대 남성 육군 HID 민간인 1970년대 1980년대 경기도 ×
사례 2 80대 남성 해군 UDU 부사관 1960년대 1960년대 인 천
사례 3 70대 남성 해병대 MIU 병 사 1970년대 1970년대 인 천
사례 4 60대 남성 육군 HID 부사관 1980년대 1980년대 강원도 ×
사례 5 40대 남성 육군 HID 부사관 2000년대 2000년대 강원도 ×
사례 6 70대 남성 육군 HID 부사관 1970년대 1980년대 강원도

사례자 선정 초기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를 통해 3명의 사례자를 선정할 수 있었으며, 이후 눈덩이 표집(snowball sampling) 방법을 활용하여 사례자를 추가로 선정하였다. 눈덩이 표집은 초기 참여자를 통해 추가 참여자를 소개받는 방식으로 표본을 확장하는 것이다(Biernacki & Waldorf, 1981). 연구자들은 이 방법을 통해 3명의 사례자를 추가로 소개받았으며 최종 6명의 사례자를 선정할 수 있었다.

3. 자료수집

분석에 필요한 자료는 2025년 2월부터 6월까지 약 5개월간 진행되었으며, 1:1 심층면담 방식을 통해 수집하였다. 각 사례자당 1회 면담을 실시하였고, 면담 시간은 평균 120분 내외였다. 면담은 반구조화된 질문지를 바탕으로 하되, 사례자의 발화 흐름에 따라 심화 질문과 개방형 질문을 융통성있게 활용하였다. 이는 특수임무수행자들의 복무 경험과 사회 복귀 이후 삶에 내재된 정서적ㆍ서사적 깊이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주요 질문 내용으로 “사회 복귀 시 국가가 약속한 것을 얼마나 보상 받았습니까?”, “왜 국가로부터 배신감을 느끼십니까?”, “사회 복귀 이후 특수임무수행자 출신으로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입니까?”, “특수임무수행자를 위하여 어떤 사회적 보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등으로 구성하였다. 면담은 사례자의 의견을 반영하여 각자의 주거지 인근 카페 또는 사적인 공간에서 진행되었고, 면담 전 연구 목적과 녹음 여부, 연구윤리 및 개인정보 보호 방침 등을 충분히 설명하고 서면 동의를 받은 뒤, 사례자의 동의를 얻어 전 과정을 녹음하였다. 녹음된 내용은 면담 직후 연구자가 직접 전사하였고, 의미 왜곡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반복 청취 및 사례자 확인을 거쳐 분석에 활용할 수 있는 원자료로 구성하였다. 전사 자료는 질적 자료 분석에 적합한 구조로 정리하였고, 개인정보 식별이 불가능하도록 가명 처리 및 민감 정보 비식별화 조치를 취하였다.

4. 자료 분석

수집한 자료는 Creswell과 Poth(2016)가 제시한 사례연구 절차에 따라 분석하였다. 사례연구에서 분석은 단순한 자료 정리가 아닌 사례에 대한 기술(description)과 주제 분석, 맥락 정보의 통합을 통해 사례의 복잡성과 고유성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연구자들은 먼저 ‘사례 내 분석’을 시도했다. 이는 각 사례의 삶의 연대기, 특수임무(북파공작원) 부대 복무 경험, 사회 복귀 과정을 중심으로 정황(context)과 사건을 자세히 기술하는 것으로 사례의 역사성과 일상적 활동을 서술하는 기초작업에 해당한다(Stake, 1995). 따라서 연구자들은 사례 내 분석을 수행하여 개별 사례자의 독립적인 경험 세계를 깊이 있게 탐색하고, 그 안에서 핵심 이슈와 주제를 식별하였다.

이후 연구자들은 도출된 주제를 바탕으로 복수 사례 간 공통점과 차이를 비교 및 분석하는 ‘사례 간 분석’을 진행하였다. 이 분석은 사례가 속한 사회적ㆍ제도적 맥락 안에서 사례자들의 경험이 어떻게 구조화되었는지를 파악하고, 보다 폭넓은 해석과 이론적 통찰을 도출하는 데 기여한다(Merriam, 1998).

이러한 과정을 통해 연구자들은 총 7개의 사례 간 공통 주제를 도출하였다. 이 주제들은 특수임무수행자들의 사회 복귀 경험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 심층 구조를 반영하며, 국가에 의해 은폐된 희생 이후 삶의 전환과 그 내면적 흔적들을 보여주는 중요한 분석 결과로 작용한다.

5. 연구의 윤리적 이슈 고려 및 엄격성 확보 노력

가. 연구의 윤리적 이슈 고려

본 연구는 질적 사례연구의 특성상 사례자들의 민감한 경험과 사적 서사가 포함되므로 자료 수집 및 활용 전 윤리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2024년 12월 20일 생명윤리위원회(IRB)로부터 공식적인 연구승인을 받았다.

연구자들은 IRB 윤리 기준에 따라 연구 전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였다. 첫째, 연구자 전원 조사 수행 전 인간대상연구 윤리교육을 이수하였으며, 질적연구에서 요구되는 윤리적 민감성을 사전 숙지하였다. 둘째, 사례자 신원, 주소지, 복무 내용 등 민감 정보는 모두 익명 처리 및 비식별화 조치하였고, 사례자가 식별될 수 있는 모든 정보는 연구 분석 및 결과물 작성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하였다. 셋째, 사례자들에게 연구목적, 진행절차, 면담방식, 녹음여부, 활용범위, 개인정보 보호 방안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후 자발적 참여 여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제공하였다. 모든 참여자는 이에 대해 서면 동의서를 작성하였고, 연구 참여 중 언제든지 탈퇴할 권리가 있음을 고지하였다. 또한, 면담 도중 참여자의 심리적 안정과 존엄성 보호를 최우선으로 고려하였는데, 이러한 윤리적 배려는 단순한 형식 준수를 넘어 트라우마를 겪은 사례자들의 2차 피해를 예방하고, 연구 과정에서 상호 존중 배려를 실현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였다.

나. 연구의 엄격성 확보 노력

연구의 엄격성은 이론과 방법의 체계적이고 일관된 적용을 통해 연구 공동체가 요구하는 학문적 기준과 절차를 충실히 따랐는가 평가하는 기준이다(Dodge, Ospina & Foldy, 2005). 본 연구는 질적 사례연구로서의 엄격성 확보를 위한 다음과 같은 전략을 적용하였다.

첫째, 연구자와 사례자 간 신뢰 관계 형성을 위해 면담 이전 사례자와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이메일 등을 통한 사전 소통을 지속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 연구 취지와 목적을 충분히 설명하고, 사례자가 편안한 상태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둘째, 자료의 신뢰도와 해석의 깊이를 제고하기 위하여 다원화(triangulation) 전략을 적용하였다(Creswell & Poth, 2016). 다원화는 다양한 정보원과 관점을 교차 분석하여 결과의 타당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본 연구에 다음 두 가지 방식의 다원화를 적용하였다. 먼저, 자료 출처의 다원화로 심층면담을 기본으로 하되, 사례자들이 사회 복귀 이후 개인적으로 보관해온 기록물(훈련 당시 메모, 전역 후 작성한 일기 등)을 함께 수집ㆍ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사례자의 경험이 갖는 사회적ㆍ역사적 맥락을 보완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분석자 간 다원화로 두 명의 연구자가 각각 수집된 자료를 분석하고, 교차 검토와 상호 토론을 통해 해석상 일관성과 신뢰도를 확보하였다. 해석 간 불일치가 있는 경우 공동 검토를 통해 합의된 의미를 도출하였다. 셋째, 참여자 검토(member checking)를 실시하여 연구 결과의 신뢰성을 강화하였다(Stake, 1995). 사례자들에게 자신의 진술이 담긴 연구 초고 및 해석 내용을 공유하고, 그 표현이나 의미가 적절히 전달되었는지 직접 확인받았다. 사례자에 따라 초고 작성 단계에서 검토를 요청하였으며, 일부는 자료 수집이 완료된 이후 검토를 요청하여 최종 해석에 반영하였다. 이를 통해 연구자의 일방적인 해석을 최소화하고, 사례자의 서사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해석의 타당성을 확보하였다.

Ⅳ. 분석 결과

1. 사례 내 분석

가. 사례 1

사례자는 1970년대 후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어느 날 정보기관 소속이라고 밝힌 이들이 많은 돈과 국가기관 채용 등을 제안하며 사례자에게 접근하였다. 사례자는 당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기 때문에 국가기관에 채용해준다는 말을 믿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약 4개월간 매주 서울에 있는 호텔에서 만나 지능 검사, 면접 등을 수차례 실시하였으며, 만날 때마다 고급 음식들을 먹을 수 있었다. 채용 전 기억나는 질문으로 “현 시국이 어떤지, 그리고 우리나라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답변했는데, 면접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워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찾는 사람이다. 적격자다.”라는 말을 하였다고 한다.

사례자는 경기도에 있는 안전가옥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첩보원으로서의 정신교육과 함께 비무장지대를 통과하기 위한 장애물 지대(철조망, 지뢰밭, 고압선 등) 극복 훈련, 산악지대에서 30kg의 군장을 메고 뛰는 훈련, 비트 구축 훈련, 중요 지형지물 관찰 및 기록, 사진 촬영 훈련 등 다양한 훈련을 받았다. 잠수 훈련과 공수 훈련은 미국인 교관에게 받았고, 야간 잠수 훈련 중 공기 밸브가 잠겨 죽을 뻔한 경험이 있었으며, 36회 공수 훈련 중 낙하산의 문제로 추락하여 병원에 입원했던 경험을 증언하였다. 병원에서도 철저한 감시와 통제 속에 외부와 교류가 단절되었고, 훈련 기간 내내 가족과의 만남은 전혀 없었다. 3년간 휴가는 단 한 번도 없었으며 교관들과 함께 1회 외출한 것이 전부였다. 훈련 중 교관으로부터 “여기서 죽으면 그냥 개죽음이다. 너 하나 죽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등의 폭언과 심한 구타로 정신을 잃은 경험이 있었으며, 당시 모욕감을 느꼈다고 한다.

3년간 고강도 훈련을 마치고 사회로 복귀했지만, 첩보 훈련 경험은 사례자에게 지속적인 고통을 안겨주었다. 특히, 첩보 훈련을 받던 시기가 10.26 사태와 5.18 민주화 운동이 있었기 때문에 항상 북파될 위기와 죽음을 강요당했던 정신교육은 지금도 그에게 큰 정신적 압박감을 주고 있다고 한다. “제가 수도권에서 제 주변을 살피는 어떤 사람을 본적이 있어요. 그래서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이사를 갔는데 그 사람을 지방에서 또 본 거예요. 아마 제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기밀 유지는 잘하고 있는지 관찰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도 훈련받았던 힘든 상황들이 꿈속에서 악몽으로 나타나요.”라고 토로하며 지금도 후유증 때문에 주기적으로 병원 진료를 받고 있다고 하였다. 사례자는 취업의 어려움도 있었는데 “처음 사회에 나가서 취업하려고 하는데 면접관이 허리가 굽은 것 같다고 왜 그러냐고 물어보는데, 답변할 수가 없었어요. 부상 때문에 취업이 안되니까 우울하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었죠.”라고 하였다.

특수임무수행자법이 제정되어 실체를 인정받고 있지만, 사례자는 “실제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았다.”라고 느끼고 있으며, 특히 많은 특수임무수행자들이 보상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하였다. 즉, 젊은 시절 국가로부터 희생과 강요를 당하였으나 그에 따른 예우와 보상은 열악하여 상실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들의 트라우마와 경제적 어려움의 악순환은 삶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사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트라우마는 내 경험상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고 체념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그리고 특수임무수행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인 의료 지원과 안정적인 일자리, 연금 인상 등 실질적인 지원을 통해 트라우마를 최소화하고 싶다는 강한 바람을 보였다. 나아가 그는 특수임무수행자로서 국가 발전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제대로 인정받고, 국가의 합당한 예우를 통해 명예가 회복되기를 강하게 염원하였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음지에서 고생했던 사람들을 빛으로 끌어올려줘야 한다”고 말하였는데, 사례자는 자신과 같은 이들이 더 이상 ‘음지’에 머무르지 않고, ‘빛’으로 나옴으로써 국가의 진정한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나. 사례 2

사례자는 고등학생 시절 배를 타고 싶다는 생각에 1960년대 해군 부사관으로 지원하였다. 부사관 교육을 받던 중 첩보부대(UDU) 요원으로 선발되었고, 하사 임관 후 정보교육을 이수하고 공작원이 되었다. 그는 “내가 국가를 위해 이 한 몸 바치겠다!”는 강한 사명감과 애국심으로 해군 부사관에 지원했고, 이후 해군에서 공작원이 되었다. 공작원이 되었을 당시 선배들로부터 10명 중 8~9명은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고, 그때 위험한 임무를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례자는 인천에 있는 서북도서에서 이북으로 15회 정도 북파되어 정찰 및 첩보 임무를 수행하였다. 주요 임무는 북한군 기지에 대한 정찰과 첩자 간 메시지 전달이었으며, 7인이 승선하는 보트를 이용하여 팀 단위 침투가 이루어졌다.

훈련 과정은 “말할 수 없이 힘든 훈련”이었으며, “인간적으로 대우해주지 않아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바다수영, 시궁창 통과 훈련, 산악 훈련, 비트 구축 등의 훈련을 1주일 이상씩 반복하였다. 훈련 중 구타와 욕설은 물론, 훈련 중 사망하거나 부상을 심하게 당해도 단순 보고로 끝나 후속 처리나 유가족 연락이 없었음을 증언하였다. “훈련장에서 행방불명 처리해 버린다”라고 말하며 비인격적인 처우에 대해 말하였다. UDU는 공군 실미도처럼 〇〇 지역에 안전가옥이 있었고, 이곳에서 공작원을 교육해 북한으로 보내는 첩보 훈련을 주로 했으며, 교관들도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혹독하게 훈련시켰다고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한 여성 교사를 간첩으로 북파시킨 사례를 이야기 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남한에 정착했던 이북 출신 여교사였는데, 그녀를 교육시켜 해주만(海州灣)에 침투시켰다고 한다. 침투 당시 초소 300m 거리에서 조금 더 접안해달라는 부탁을 외면하고 밀쳐 복귀했던 것이 불쌍하고 미안했다고 고백하였다. 이 여성은 후에 남한에 돌아와 정착하였고, 특수임무수행자 보상 신청 시 사례자가 이 여성을 인우보증(隣友保證)하여 보상금도 수령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례자는 UDU 훈련 중 밧줄에서 떨어져 팔이 휘어지는 부상을 입었지만, 섬이라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고 한다. 사례자는 “그때 당시 치료를 제대로 받았다면 장애 없이 살았을 텐데, 치료를 제대로 못 받았던 그때 상황을 생각하면 화도 나고, 울컥할 때가 많아요.”라고 하였다.

사례자는 사회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고 공작 임무에 대한 회의감이 생기면서 인천 첩보부대에서 진해 방첩부대로 전출을 갔다. 64개월의 군 생활을 마무리하고 사회에 나왔지만, 오랜 기간 UDU 근무 사실을 가족들에게까지도 말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결혼 전에 입대를 했고, 형제들이 많아서 집에서는 누구나 가는 군대인 줄로만 알았어요. 안전가옥에 있어 편지 등 연락도 전혀 할 수 없었죠. 내가 일반적인 군대 생활을 했으면 편지도 쓰고 일기도 썼겠죠”라며 일반적인 군 생활과 다르게 평범한 기록들도 불가능했던 특수한 상황들을 회상하였다.

80대 중반의 사례자는 “그때 당시 그 젊음을 5년 이상 바쳤다는 것이 참 억울하긴 합니다”라며 국가의 열악한 예우에 대해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는 보상금도 예상보다 적게 받았고, 특수임무수행자법이 제정되었어도 사회적 예우나 인식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사례자는 군에서 이중적으로 자신들을 이용하였고, 국방의 의무 외 간첩 임무를 시켰다고 지적하며 정부가 특수임무수행자들의 육체적ㆍ정신적 피해 회복에 일차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자신과 같은 출신들은 군 생활을 자랑할 수 없었으며, 그저 음지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버림받은 도구와 같다고 표현하였다. 또한, “제대로 된 보상과 지원을 받지 못해서 노후를 보내는 것이 힘듭니다. 정부에서 일자리라도 제공해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며 국가에 대한 깊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다. 사례 3

사례자는 해병대에 입대하여 훈련소에서 교육을 수료하고 자대 배치를 기다리고 있던 중 사복을 입은 사람들로부터 “고아 출신이던데 보안대에서 근무해보지 않겠냐?”라는 제안을 받고 첩보부대로 차출되었다고 증언하였다. 사례자는 “보안대라고 하니까 사복 입고 근무하는 줄 알았죠”라고 말하였으며, ‘고아’라는 취약한 사회적 배경으로 인해 국가가 자신을 이용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차출 당시 말했던 많은 돈과 국가기관 채용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

사례자는 훈련 중 ‘동물 취급’을 받았다는 강한 표현을 사용하며, 극심하게 인권을 침해당했고, 총검술, 격투기, 살상훈련 등을 받으며 인간성이 말살되었던 것 같다고 하였다. “동물 취급 받으며 훈련을 받았으니까 모욕감도 들고, 내가 인간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했죠. 그때 당시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라고 말하며, 훈련은 단순히 군사 훈련이 아닌 생존의 투쟁이자 육체적ㆍ정신적 고통의 정점으로 각인되었다고 하였다. 특히, 훈련 중 추락한 경험이 있는데, 당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지금도 후유증으로 남아있지만 상이등급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에 분노감과 실망감을 표출하였다. “지금까지도 악몽을 꾸고 힘들어하는데 치료 기록이 없다고 상이등급으로 인정해주지 않요”라고 말하며, 특수임무에 대한 경험이 평생 지속되는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다.

사례자는 “군 생활의 특수성 때문에 친구들을 만나도 아무런 이야기를 못했어요. 군대를 갔다 왔다는 말도 제대로 못했어요.”라고 말하며 극심한 소외감과 정체성 혼란을 겪었음을 토로하였다. 그는 전역 후 일반 회사에 취업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였고, 운전 등을 하며 경제활동을 했지만 어려움이 많았다고 하였다. “지금은 ‘특수임무유공자회’라는 공법 단체가 생기면서 과거를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전에는 훈련 받은 이야기를 전혀 못했어요. 그리고 내가 그곳을 다녀온 이후로 눈빛이 강해졌는지 주변에서 저를 다 무서워했어요.”라고 말하며 사회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설명하였다.

사례자는 특수임무수행자 보상법 발의 후에도 실질적인 보상이나 사회적 예우가 미흡하다고 주장하였다. 보상금을 받는 과정에서 불합리한 금액 산정에 대한 불만과 국가에 대한 배신감이 여전하였으며, 국가가 진정으로 책임지기보다 ‘생색내기’에 급급했다고 느끼고 있었다. 사례자는 훈련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후유증을 “평생 갖고 살아야죠”라고 말하며 체념하듯 말하였다. 사례자의 트라우마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삶의 일부가 되었으며, 국가가 노후 안정을 위해서 의료 지원과 연금 등 실질적인 지원과 함께 진심 어린 사과와 명예 회복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보이기도 하였다. “나는 국가에 바라는 것이 물질적인 보상보다 나를 편안하게 해달라는 거예요.” 라고 말하며 국가가 진정성을 갖고 특수임무수행자들의 트라우마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라. 사례 4

사례자는 1980년대 원하는 대학 진학에 실패하여 삼수를 하던 중 군 입대를 결심하고 해병대나 특전사와 같은 ‘힘든 부대에 대한 로망’을 갖고 병무청에 방문하였다. 이때 첩보부대 ‘물색관’을 만나게 되었고, 사례자에게 커피를 사주면서 “3년만 고생하면 나올 때 3,000만원을 받는다”거나 “권총을 지급해주고 휴가 때 집에 멋있게 갈 수 있다”는 등의 조건을 제시하며 입대를 권유하였다. 당시 은마 아파트가 2,000만 원 정도였음을 감안한면 매우 파격적인 제안이었으며, 물색관의 거짓말에 의해 첩보부대 훈련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첩보부대에서의 훈련은 비과학적이고 혹독하였다고 한다. 체력단련은 턱걸이, 평행봉, 팔굽혀펴기, 산악 구보 등 다양하게 하였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선임들의 폭력이었다고 한다. “밤에 소변보고 싶으면 양 옆에 둘을 깨워야 소변을 보러 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쉽지 않으니 군장에 있는 반합에 소변을 보는 경우가 많았어요. 다음 날 바로 치우면 괜찮은데, 치우지 못하면 냄새도 올라오고 하니까 선임들한테 엄청 맞는거죠”, “선임들이 자기들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후임들을 때리는게 일상적이었어요. 취침 중에 아령으로 맞는 경우도 있었고, 평생 맞을거 그곳에서 다 맞은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훈련대 생활에서 인권이 보장되지 않았음을 강조하였다.

훈련 중 가장 큰 고통 중 하나는 가족과의 단절이었다고 한다. 사례자는 가족에게서 오는 편지를 보며 견뎠지만, 편지는 이미 뜯겨진 상태였고, 편지를 보낼 때도 사실 그대로를 작성할 수 없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사서함을 찾아 주문진 우체국까지 왔다가 부대를 찾지 못하고 돌아가신 일을 들었을 때 눈물이 났다고 하였다. 하루하루가 가혹한 훈련과 선임들이 가하는 구타 및 가혹행위로 힘들었고, 매일 바라는 것은 ‘오늘 하루 안 맞고 잘 잤으면 좋겠다’라는 것이었다고 하였다.

30개월 복무 후 전역했는데, 전역 전 서초동 근처에서 보안교육을 받았다. 교관은 사례자에게 “입 조심해라. 나가서 헛소리하면 언제든지 잡아올 수 있다”라고 말하며 협박하였다고 한다. 사례자는 “당시 계급뿐만 아니라 군번도 몰랐어요”라고 말하며 이들의 존재가 그만큼 비밀리에 관리되었음을 강조하였다. 1980년대에 입대한 경우 병역 인정을 받았지만 1970년대 입대한 선배들은 병역 인정을 받지 못해 군대를 한 번 더 갔다 온 사람도 있었다고 언급하며, 이들의 인권과 처우가 그만큼 열악했음을 표현하였다.

사례자는 “특수임무수행자들은 전시를 대비한 혹독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관절과 근육들이 좋지 않아요. 하지만, 보훈 심사 시 X-ray나 MRI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명되지 않는 한 인정을 해주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며 보훈 등급을 받는 것보다 일반 장애 등급을 받는 것이 훨씬 수월한 역설적인 상황을 비판하였다. 힘든 훈련으로 관절과 근육을 혹사시켜 비정상이 되었지만 진료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상이등급 인정을 못 받는 불공평함에 강한 배신감을 느낀다고 하였다.

사례자는 “군대에서 전투체육 시간에 축구를 하다 다쳐도 상이등급을 주고, 보훈 급여를 받고 있는데요. 저희는 목숨을 거는 강도 높은 훈련을 받다가 골절되고, 근육이 파열되었는데도 병원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상이등급을 못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몸 상태에서 앞으로 노후가 또 걱정되는데 어떻게 우리가 자부심을 갖고 우리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하며 국가가 자신들을 “음지에서 이용만 하고, 국가유공자로 제대로 된 예우도 해주지 않아 배신감과 실망감이 많이 크다”라고 하였다. 또한 보훈 심사 시 특수임무수행자들이 받았던 훈련의 위험성이나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많이 표출하였다.

마. 사례 5

사례자는 학창시절부터 직업군인이 되는 것이 목표였다. “군인이 멋있어 보였고, 힘든 부대에서 군 생활을 하고 싶어서 해병대나 특전사를 지원하려고 했어요” 라고 말했으며, 형님의 친구 중 특전사로 복무하는 분이 계셔서 특전사를 지원했으나 시력이 좋지 않아 신체검사에서 불합격하였다고 한다. 그래도 직업군인에 대한 꿈이 있어 시력 교정술까지 고려하며 강한 의지를 보였고, 병무청에서 정보사령부 물색관의 눈에 띄어 사무실에서 면담을 하게 되었다. 당시 물색관은 사례자의 이야기를 듣더니, 대통령을 경호하고, 비밀스럽게 움직이는 부대가 있다고 하면서 현혹하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조금만 고생하면 1억 5천만 원을 모으고 나올 수 있고 국가기관에도 채용되기 때문에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하였다. 사례자는 직업군인이라는 원래 목표와 더불어 ‘멋있고 비밀스러운’ 부대에 대한 유혹에 넘어가 지원하게 되었다.

사례자는 훈련 경험에 대해 “거의 인간이 아니었죠.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늘 서 있었던 것 같다”고 하였다. 훈련 중 동료의 사망을 목격하면서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라고 증언하였다. 산악훈련과 해상훈련을 받으며 하루 종일 정신없이 훈련받았고, 매일 수면이 부족한 상태에서 훈련을 받다보니 육체적ㆍ정신적 극한을 경험했다고 하였다. 당시 받았던 가혹한 훈련들은 사례자의 육체와 정신에 깊은 흔적을 남겼지만, 역설적으로 “사회에서 어떤 것을 하든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라고 말하며 현재의 삶에서 힘든 순간들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하였다.

사례자는 전역 후 회사에 취직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현역 시절 혹독한 훈련은 정신적ㆍ육체적 트라우마를 남겼지만, 어떤 것이든 이겨낼 수 있다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강조하였다. “훈련을 받으며 육체적으로 힘들기도 했지만, 선임들로부터 구타당하고 혼나는 것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 상황들을 겪다보니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도 옛날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라고 말하였다.

사례자는 특수임무수행자 관련 법안이 발의된 후 “당당하게 군 생활을 말할 수 있어 좋았다”고 밝혔으며, “주변에서 HID 근무했다고 하면 새롭게 본다”라고 말하며 비밀의 굴레를 벗어나 자신의 과거를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게 되었다고 하였다.

2004년 특수임무수행자 관련 법령들이 제정되었는데, 법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특수임무수행자 분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지 않았음을 강조하며 아쉬워했다. 특히, 정부가 보상을 약속하며 서명을 요구했는데, 서명하고 나니 더 나은 2차 보상이 진행되지 않았음을 강조하였다.

사례자는 국가가 특수임무수행자들을 “음지에서 이용하기만 하고, 정당한 보상과 예우를 해주지 않았다”며 배신감과 실망감을 표출하였다. 국가가 진정으로 유공자들을 보호하고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된 법 제정 과정을 반성하고, 실질적인 지원과 진정성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바. 사례 6

사례자는 23세의 나이로 첩보부대에 입대하였다. 입대 전 종로에서 주먹으로 유명했던 김두한(김좌진 장군의 아들, 전 국회의원) 조직에 있었던 김〇〇의 행동대원으로 일하며 싸움이나 돈을 받는 일 등을 처리하였다고 한다. 그때 어떤 사람이 특수부대에 갈 생각이 있는지 제안을 하였는데, 높은 급여에 혹하였다고 한다. 당시 제안한 금액은 주 20만 원, 월 150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급여를 제시하였고, 1970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매우 큰 돈이었기 때문에 입대를 결심하였다.

사례자는 첩보부대에서 15년간 복무했으며, 북한으로 3회 침투하였다. 침투했던 지역에 대해서는 보안사항이기 때문에 알려줄 수 없다고 하였으며, 첩보부대에서 받았던 훈련을 침투, 장애물 극복 훈련, 북한군 화기 조작술, 살상훈련 등이었다. “당시 받았던 살상훈련 때문에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사람을 죽일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요. 그때를 생각하면 제 자신이 혐오감도 들고 그러더라고요” 라고 말하였다. “전역 후 사회에 나와서 일을 하는데 어떤 사람이 자꾸 시비를 거는 거예요. 몇 번 참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주위에 있는 칼을 던져 그 사람 허벅지를 관통시킨 적도 있어요” 라고 말하며 분노 조절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부대에서 자신을 ‘평양 사람’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행동하는 훈련을 받았는데, 이는 북한에서 포획되었을 경우를 대비한 것이었다. 첩보부대 생활은 훈련보다 영내 내무 생활이 더 힘들었는데, 선임들이 너무 때려서 탈영병도 많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탈영하다 잡히면 땅을 파서 머리만 내놓고 며칠씩 묻는 경우도 있었는데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가혹행위였다고 하였다.

사례자는 첩보부대에서의 혹독한 훈련, 영내 생활의 어려움, 탈영병에 대한 잔혹한 처벌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고 하였다. 15년간 복무를 했지만, 전역 후 사회생활을 할 때 군 생활에 대해 전혀 말할 수 없어 아쉬운 점도 많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사회에 나왔을 때 어떤 사람이 사례자 주변을 오랜 기간 계속 따라다니며 동향을 파악했다고 하는데, 이는 비밀을 잘 유지하고 있는지 정보기관에서 확인했던 것 같다고 하였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했지만, 당시 훈련받았던 내용이나 임무를 말했을 때 기밀 누설에 대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아직도 남아있으며, 그래서 남의 눈을 피해 소극적으로 살아왔다고 한다. 더불어 사례자는 “15년간의 첩보부대 생활로 공격성이 있어요. 그래서 누군가와 갈등이 생기면 저도 모르게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상대방을 죽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 조심해왔어요” 라고 하였다.

사례자는 국가가 특수임무수행자들에게 충분한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우선적으로 “의료비 지원과 취업에 대한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였다. 각 지방자치단체 ‘행정복지센터’에서 노인 일자리를 제공할 때 국가유공자들은 가산점 및 최우선 채용 혜택이 있다고 들었는데 실제 잘 지켜지지 않는다며 불만을 표출하였다. 국가유공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하며 “특수임무수행자도 국가유공자 유형 중 하나인데, 상이등급을 받지 못했다고 돈 내고 병원을 다니는 것이 자랑스럽겠냐?”라고 말하며,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최소한의 예우와 혜택을 제공했으면 좋겠다”라고 호소하였다. 사례자는 “국가가 첩보부대 출신들을 음지에서 이용하기만 하고, 국가유공자로서 제대로 된 예우를 해주지 않아 배신감과 실망감이 크다.”라고 말하며, 보훈 심사 시 훈련의 위험성과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주장하였다.

2. 사례 간 분석

연구자들은 21개의 사례 내 주제들을 도출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7개의 사례 간 주제를 범주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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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2
사례 간 주제 범주화
사례 내 주제 사례 간 통합 주제
전역 후 정보기관에서 사례자 주변을 주기적으로 감시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기밀 유지에 대한 불안감이 증대됨(사례 1, 6) 기밀 유지 스트레스 (내면화된 통제 경험)
전역 전 보안교육 시 기밀 유지를 하지 않는 경우 잡혀올 수 있다는 말에 두렵고 무서움(사례 4)
전역 후 일반 회사 취업에 성공하였으나 첩보부대 근무 사실을 동료들이 알까봐 불안했음(사례 5)
무의식적으로 훈련 내용이나 임무를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여 기밀 누설로 인한 처벌을 받을까봐 불안하고 두려움(사례 6)
훈련 당시 큰 부상 경험이 우울감으로 표출됨(사례 1, 2) 정신적 고통
훈련 당시 힘들었던 상황과 기억(동료 사망)이 악몽으로 표출되어 괴로움(사례 1, 3, 5)
훈련 당시 받았던 모욕감과 두려움으로 자존감이 낮아짐(사례 1, 3)
인간성이 사라진 내 자신을 혐오하게 됨(사례 3, 6)
훈련으로 인해 생긴 공격성으로 분노조절 어려움을 느낌(사례 6)
훈련 중 부상으로 인한 일상생활 유지의 어려움(사례 1, 2, 3) 육체적 고통 (부상으로 인한 어려움)
훈련 중 부상으로 인한 일상생활 유지의 어려움(사례 1, 2, 3)
부상으로 인해 생긴 신체 구조의 변화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음(사례 1)
훈련 중 밀봉교육(사회와 단절)으로 인한 사회생활에 소극적으로 변함(사례 3, 5, 6) 사회적 고립감
훈련으로 인한 공격성으로 잦은 대인관계 갈등 발생(사례 3, 6)
주변인들과 군 생활에 대한 담화에 낄 수 없어 소외감을 느꼈음(사례 1~6)
사회복귀 시 약속된 금전적 보상과 취업이 이행되지 않아 빈털터리가 됨(사례 1~6) 경제적 어려움
나이가 먹을수록 병원 진료비에 대한 부담감이 생김(사례 3, 6)
보훈 급여가 없어 노후가 불안함(사례 2, 3, 4)
훈련 및 임무 당시 가명 사용으로 진료기록을 찾을 수 없는데 보훈 심사 시 진료기록을 요구함(사례 3, 4) 보훈 심사에 대한 모순적인 차별 (보훈 심사의 불합리성)
드러나지 않았던 훈련 후유증은 인정 받기 어려움(사례 3, 4)
전역 후 약속이 이행되지 않아 국가에 대한 실망감이 생김(사례 1~6) 정부에 대한 불신 강화
법안 발의 시 특수임무수행자들의 의견 수렴 없이 진행되어 소외감을 느낌(사례 5)

가. 기밀 유지 스트레스: 내면화된 통제 경험

사례자들(사례 1, 4, 5, 6)은 복무 당시 받았던 ‘보안교육’으로 인해 훈련과 임무의 기밀성을 사회에 복귀한 이후에도 강박적으로 유지해야 했다. 사례자 4의 경우 기밀 유지를 하지 않는 경우 잡혀갈 수 있다는 보안교육 담당자의 말에 두려움을 느꼈으며, 사례자 5는 직장에서 동료들이 알까봐 불안했고, 사례자 6의 경우 주변사람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말해서 처벌을 받을까 불안해했다. 게다가 일부 사례자들(사례 1, 6)은 전역 후 정보기관에서 주기적으로 감시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기밀 유지에 대한 불안감이 증대되었다고 한다. 이는 단순한 기밀 유지 차원을 넘어 일상적인 대화조차 검열되는 내면화된 통제 경험이었다. 기밀 유지는 군의 ‘비밀주의’를 다룬 선행연구(Sørensen, 2015)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들에게 자기검열과 불안, 불신의 상징으로 기능하며, 사회적 관계에서의 거리감, 고립감, 심리적 피로를 야기하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

“전역 전 서초동 근처에서 보안교육을 받은적이 있어요. 당시 교관들이 저희들한테 사회 나가서 입 조심하라고 하면서 나가서 헛소리 하는 순간 언제든지 잡아들일 거라고 했어요. 끝났지만, 끝난 것이 아닌거죠. 무서웠어요(사례 4)”

“동네 친구들이나 회사 사람들과 술 먹다 보면 군 생활 이야기를 하잖아요. 저는 군 생활 이야기를 전혀 할 수 없었어요. 보안 서약서를 작성하고 나왔고, 보안 유지 잘하라는 교육을 수도 없이 들었으니깐요. 특수임무수행자 관련 법령이 통과되고 나서야 자랑스럽게 첩보부대 출신이라고 말할 수 있었죠(사례 5)”

나. 정신적 고통

특수임무수행자들의 증언을 기록한 문헌(김성호, 2022)에 드러난 것처럼 사례자들은 지옥훈련과 저승 문턱까지 가야만 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사례자들(사례 1, 2, 3, 5, 6)은 이러한 훈련 및 임무 수행 과정에서 받은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전역 이후에도 지속적인 악몽, 불안, 자존감 손상, 자기혐오 같은 심리적 고통을 겪었다. 특히, 큰 부상 경험, 동료의 죽음, 훈련 당시 받았던 모욕감은 단순한 기억이 아닌,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후속작용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일부 사례자들(사례 3, 6)은 살상훈련으로 인해 인간성이 사라진 자신을 혐오하게 됐다. 사례자 6은 사회적 갈등 상황에서 공격적인 충동을 경험하거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자신조차 두렵다고 진술하기도 하였다. 사례자들과 비슷한 경험을 한 특수임무수행자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관련 연구에 따르면 특수임무수행자들의 PTSD 수준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김태열, 2013), 이 점을 고려할 때 사례자들의 겪는 정신적 고통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수준으로 보인다. 또한 참전군인 관련 연구에서 제시된 것처럼 트라우마는 가족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Ray & Vanstone, 2009). 따라서 사례자들이 겪은 정신건강 문제는 뒤에서 언급하게 될 사회적 고립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교관이 저에게 말하기를 여기서 죽으면 그냥 개죽음이다. 너 하나 죽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라고 말하며 폭언과 심한 구타를 했어요. 모욕감이 들었지만 두려움이 더 컸던 것 같아요(사례 1)

“첩보부대 다녀오고 나서 제 눈빛에 살기가 나타났나 봐요.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제 눈빛이 무섭다고 했고, 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저를 피하려고 했어요. 그러면서 사회적으로 고립이 된거죠(사례 3)”

다. 육체적 고통: 부상으로 인한 어려움

특수임무수행자들의 증언 기록에서 제시한 것처럼 이들은 “상상초월 지옥훈련”을 받았으며, 목숨을 건 임무를 수행했다(김성호, 2022). 훈련과 임무의 특성상 부상은 필연적이었다. 사례자들(사례 1, 2, 3) 역시 훈련 중 큰 부상을 입었고 사회 복귀 후 불편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특히, 사례자 1, 2, 3은 훈련 중 큰 부상을 입고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으며, 전역 후 육체적인 고통과 장애로 인해 취업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참전군인 관련 연구에서도 앞서 언급한 정신적 손상과 더불어 신체적 손상은 당사자들의 사회 복귀를 방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Lapierre et al., 2007; Sayer et al., 2014). 이는 사례자들이 겪은 육체적 고통이 사회 복귀를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공수 훈련 중 추락하여 대학병원에 한달 간 입원했어요. 병원에 있는 동안에는 치료를 제대로 받았는데, 어느 정도 회복됐다고 생각했는지 안전가옥으로 복귀해서 고강도 훈련을 강행하더라고요.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으니까 너무 힘들었고, 그때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해서 지금도 후유증이 남았어요(사례 1)”

“전역 후 회사에 취업하려고 면접을 보러 갔어요. 저보고 똑바로 서보라고 하더니 허리가 조금 굽은 것 같다고 하면서 다쳤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런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면접에서 떨어져 일자리를 다시 알아보러 다녔어요(사례 1)”

“훈련 중 밧줄에서 떨어지면서 팔이 휘었어요. 하지만, 섬에서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고, 그래서 지금도 팔이 휘어져 있어 일상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있어요(사례 2)”

라. 사회적 고립감

기밀 유지 의무와 훈련으로 형성된 공격성은 사회적 관계망의 형성과 유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모든 사례자는 자신의 군 복무 경험을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없었는데, 이는 가족, 친구, 직장동료들과의 관계에서 감정적 단절과 위축, 자기검열을 초래하였다. 일부(사례 3, 6)는 자신의 눈빛이나 분위기만으로도 타인이 거리를 둔다고 느꼈으며, 자칫 타인을 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에 사회적 접촉을 피하는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또한 훈련과 임무 수행 과정에서 체화된 공격성과 감정 통제 문제는 잦은 대인 갈등과 자발적 고립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곧 사회 복귀 실패의 주요 요인이 되었다. 사회적 고립은 훈련과 임무 수행 경험의 잔재가 삶의 방식으로 전이된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가족, 친지, 지인 그 누구에게도 첩보부대에서 받았던 훈련이나 임무에 대해 말할 수 없어서 답답했죠. 남자들이 군대 갔다오면 늘 하는 이야기가 군대 이야기인데, 저는 그런 대화를 할 때마다 낄 수가 없으니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죠(사례 4 )”

“15년간의 첩보부대 생활을 하면서 공격성이 생겼어요. 그래서 누군가와 갈등이 생기면 저도 모르게 폭력적으로 변하더라고요. 자칫 잘못하면 상대방을 죽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 조심해왔어요(사례 6)”

마. 경제적 어려움

모든 사례자는 훈련 당시 약속받았던 높은 급여나 공공기관 취업 등은 전역 이후 대부분 실현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사례자들은 빈곤, 고용 불안정, 의료비 부담 등 현실적인 경제적 위기에 직면하였다. 특히, 고령의 사례자들(사례 2, 3, 4, 6)은 건강 문제와 소득 부재가 겹쳐 노후 생활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 있었다. “보상을 약속했으나 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공통된 진술은 국가의 약속이 이행되지 않았다는 구조적 배신의 경험을 상징하며, 이러한 배신감은 단순한 개인의 실망을 너머 정의롭지 못한 국가의 모습에 대한 집단적 인식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이는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음에도 여전히 실질적인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선행연구들의 주장을 지지하는 결과라고 볼 수 있다(강창국, 2008; 오일환, 2005; 제성호, 2014).

“우리가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했는데, 보상금이라고 준 것은 턱 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첩보부대로 유인할 때도 급여 많이 준다고 했는데 제대로 주지도 않았거든요. 그럼 보상금을 책정할 때 그 당시 물가와 급여를 고려해서 줘야 하는거 아닌가요?(사례 1)”

“20대에 국가를 위해 내 젊음을 바쳤는데, 몸이 다 망가졌어요. 정말 억울하고 비참합니다. 우리는 음지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버림받은거에요(사례 2)”

“제가 원래 직업군인이 꿈이었어요. 병무청에서 멋있고 비밀스러운 부대가 있다고 하며 지원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더라고요. 조금만 고생하면 1억 5천 만원을 모으고 나올 수 있고 국가기관에도 채용되기 때문에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해서 지원했는데 전역 당시 전혀 이루어진 것이 없었어요(사례 5)”

바. 보훈 심사에 대한 모순적인 차별: 보훈 심사의 불합리성

특수임무수행자 관련 문헌들에서 드러난 것처럼 이들의 존재는 정부에 의해 철저히 은폐되었다(김보영, 2011; 김성호, 2022; 김현수 외, 2016; 오일환, 2004). 이러한 맥락에서 사례자들(사례 3, 4)은 훈련 및 임무 수행 과정에서 대부분 가명 사용, 비공식 공간의 이동, 비밀 유지 조치 등을 감수해야 했고, 그 결과 공식적인 진료 기록이나 서류 증빙이 부족한 상태로 전역하였다. 그러나 국가의 보훈 심사는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반적인 병력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사례자들(사례 3, 4)은 정당한 보상과 예우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제도가 이들의 존재 조건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애초부터 외면하려는 방식으로 설계되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구조적 모순이다. 이 불합리성은 결과적으로 ‘국가유공자 대상자임에도 불구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유공자’라는 역설적 지위를 발생시켰다.

“군대에서 전투체육 시간에 축구하다 다쳐도 진료기록이 있으면 상이등급을 받고 보훈 급여를 받을 수 있어요. 저희는 목숨을 담보로 강도 높은 훈련을 받다가 골절되고 근육이 파열되었는데 병원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상이등급을 못 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자부심을 갖고 우리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할 수 있겠습니까?(사례 4)”

사. 정부에 대한 불신 강화

사례자들(사례 1, 2, 3, 4, 5, 6)은 복무 당시 국가로부터 “좋은 일자리”, “높은 급여”, “사회 복귀 후 공공기관 취업” 등을 약속받았지만, 전역 이후 실체를 부정당해왔다. 2004년 특수임무수행자보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 실체를 인정받기 시작했으나, 형식적인 예우 수준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사례자들이 가지고 있던 정부에 대한 불신을 강화시켰다. 모든 사례자는 정부에 대한 깊은 실망감과 불신을 표현했다. 또한 법률 제정 과정에서 유공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사례 5)은 이들이 여전히 제도의 주변부에 머물고 있음을 방증한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특수임무수행자들이 자기 존재를 역사적 주체로 정립하는 데 가장 큰 장애 요소로 작용하고 있었다.

“3년만 고생하면 나올 때 3,000만원을 받을 수 있고, 국가기관에 취업도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첩보부대로 유인했어요. 당시 은마 아파트가 2,000만원 정도였으니까 매우 파격적인 제안이었죠. 하지만, 전역할 때 얼마 받지도 못하고 나왔어요. 배신감과 실망감이 컸지만 어쩔 수 없었죠(사례 4)”

“특수임무수행자 관련 법령 제정 당시 우리들은 법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우리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거죠. 정부가 2차 보상을 약속하며 서명을 요구했는데, 막상 서명하고 나니 추가 보상이 진행되지 않았어요(사례 5)”

“국가가 첩보부대 출신들을 음지에서 이용만하고, 국가유공자로서 제대로 된 예우도 해주지 않아 배신감과 실망감이 너무 커요. 국가유공자를 등록하려고 해도 보훈 심사 때 훈련의 위험성과 상황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요. 어떻게 정부를 믿겠어요?(사례 6)”

Ⅴ. 결론

본 연구는 특수임무수행자들의 사회 복귀 이후 경험한 삶의 어려움을 심층적으로 탐색하고, 이들의 생애 경험과 국가 보훈제도 간 괴리를 분석하여 실효성 있는 정책적 대안을 도출하는 데 목적이 있다. 특히, 제도 밖에 존재하는 특수임무수행자들의 서사와 경험을 중심으로 고통의 구조적 실체를 조명하고자 하였다.

나아가 본 연구는 ‘은폐성’이 개인의 정체성, 대인관계, 정신건강의 층위에서 ‘도덕적 상처’를 강화하고, 동시에 기록 부재ㆍ증빙(입증) 곤란을 통해 행정적 배제의 경로를 형성한다는 ‘은폐-상처-배제’ 연쇄 메커니즘을 개념화함으로써, 기존 참전군인 연구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던 특수임무수행자의 고유 난점을 이론화하였다.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사례 내 분석’과 ‘사례 간 분석’을 통해 특수임무수행자들의 사회 복귀 어려움에 관한 7가지 범주를 도출하였다. 첫째, 훈련과 임무 이후에도 지속되는 ‘기밀 유지 스트레스’는 이들의 일상에 내면화된 통제와 자기검열을 유발하고 있었다. 둘째, ‘정신적 고통’은 악몽, 불안, 자기혐오, 분노 등 트라우마 증상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사회적 관계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셋째, ‘육체적 고통’은 훈련 중 입은 부상이 장기 후유증으로 남아 일상생활과 취업에 장애가 되었다. 넷째, ‘사회적 고립감’은 군 복무의 비밀성과 공격성 내면화로 인해 지속적인 사회 부적응을 초래했다. 다섯째, ‘경제적 어려움’은 약속된 보상이 이행되지 않고, 고령화된 이들의 노후 생계화 치료비 부담으로 이어졌다. 여섯째, ‘보훈 심사의 모순’은 보안상 남기지 않은 진료 기록과 가명 사용 등으로 인해 상이등급 심사에서 불합리한 결과로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정부에 대한 불신’은 구조적인 배신감과 역사적 소외감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이러한 7가지 범주는 ‘은폐로 인한 가시성 결핍 → 관계ㆍ정체성의 침식 → 심리ㆍ신체적 손상 → 기록ㆍ증빙의 결여 → 심사 배제 → 제도 불신’으로 이어지는 연쇄 구조로 수렴하며, 이는 본 연구가 제시하는 이론적 기여의 토대가 된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도출된 이론적 함의는 다음과 같다. 이론적 함의로 첫째, 일반 참전군인과는 다른 특수임무수행자의 ‘특수성’에 관한 함의이다. 연구 결과 특수임무수행자들은 ‘은폐된 희생자’로 살아왔다. 이는 기존 참전 군인 관련 연구(Ahern et al., 2015; Demers, 2011; Doyle & Peterson, 2005; Lapierre et al., 2007; Ray & Vanstone, 2009; Romaniuk & Kidd, 2018; Sayer et al., 2014; Sørensen, 2015)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특수임무 수행자의 ‘특수성’이다. 이러한 특수성으로 인해 사례자들은 ‘기밀 유지 스트레스’를 겪었으며, 보훈 심사에서 제외됐고, 보훈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정부를 불신하게 됐다. 물론 참전군인 관련 연구에서도 군대의 ‘비밀주의’가 정보를 공유할 수 없게 하여 가족이나 친구 같은 친밀한 관계를 단절시킨다고 본다(Sørensen, 2015). 그러나 특수임무수행자들에게 있어 ‘은폐 경험’은 단순한 정보누출 방지 수준이 아닌 그들의 존재를 부정당한 사건이었다. 이러한 특수성 즉 ‘은폐성’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특수임무수행자의 삶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특수임무 수행자의 사회 복귀나 적응 문제를 탐구할 때는 이러한 특수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더불어 ‘은폐성’이 개인 차원의 도덕적 상처(배신감, 자기부정)와 제도 차원의 행정적 부담(학습, 순응, 심리 비용)을 동시적으로 증폭시키는 교차 효과를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도덕적 상처’와 ‘행정적 배제’가 분리된 논의가 아닌 하나의 경로 상에서 맞물려 작동함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이론적 차별성이 있다. 둘째, 관련 정책담론 전환에 관한 함의이다. 기존의 특수임무수행자 연구들은 제도 구조 및 정책 평가를 전문가 시각에서 분석하였으나(강창국, 2008; 김태열 외, 2016; 장다흰ㆍ박용성, 2020), 본 연구는 “국가로부터의 보상 약속을 믿고 헌신했으나 이행되지 않고 버려졌다”는 당사자(사례자)들의 증언을 통해, 제도 밖 삶의 경험을 통한 제도의 정당성과 작동방식을 재조명하였다. 이는 ‘보훈정책 = 공무원 주도 정책’이라는 전통을 극복하고, 특수임무수행자 관련 정책담론을 ‘제도 중심’에서 ‘경험 중심’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했음에 그 의의가 있다. 셋째, 특수임무수행자가 겪은 트라우마의 복합성·연속성에 관한 논의이다. 사례자들은 훈련 중 겪은 동료 사망, 고문성 구타 및 가혹행위, 자살 충동 등 고통의 기억이 꿈속 악몽으로 반복되고, 현재의 분노조절 어려움, 대인기피, 자존감 저하로 이어진다고 증언하였다. 이러한 경험은 정신질환을 단순히 DSM 기반 진단 범주로 환원하기 어려운 복합적ㆍ연속적 트라우마이다. 기존 연구에서도 특수임무수행자의 PTSD 평균 점수가 일반인 대비 2배 이상 높았지만(김태열, 2013; 김윤영 외, 2017), 그 원인과 서사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본 연구는 개인의 고통을 시간성과 내러티브 속에서 재구성하고, 생애사적 접근을 통해 이들의 트라우마를 분석하고 해석했음에 그 의의가 있다. 특히 ‘보이지 않는 상이(invisible injuries)’ 범주를 도입하여, 진단명으로 포착되지 않지만 기능 저하, 관계 붕괴, 목적 상실로 나타나는 손상의 정책적 가시화를 제안하였고, 이는 향후 평가 및 급여 체계 설계의 개념적 기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학술적ㆍ정책적 파급력이 있다.

실천적 함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특수임무수행자들을 위한 회복중심 상담 및 트라우마 개입 프로그램 도입이 필요할 것이다. 사례자들은 “인간성이 말살됐다”, “눈빛이 살기로 변했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스스로를 혐오하거나 두려워하였다. 이는 단순 정신과 진료로 회복되기 어려운 서사기반의 회복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현재 국내에는 참전군인을 위한 PTSD 상담 체계는 존재하지만, 특수임무수행자를 위한 맞춤형 개입 체계는 전무하다. 핀란드의 군 사회복지사 체계(Seppanen & Maijanen, 2022)처럼 동료상담, 집단 치유, 트라우마 재해석 교육 등 회복중심의 상담 체계를 구축한다면 이들의 원활한 사회 복귀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특수임무수행자들을 위한 훈련 후유증 중심의 일상적 돌봄 체계 구축이 필요할 것이다. 사례자들은 “골절ㆍ장애가 있어도 진료기록이 없어 상이등급을 못 받는다”고 말할 정도로 특수임무수행자들은 임무 및 훈련 당시 의료 체계와 현재의 보훈 심사 체계의 한계를 역설하였다. 고강도의 특수 훈련은 이들에게 장기적 관절 통증, 신체불편, 불면증 등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고 있으며, 주기적인 병원 치료뿐만 아니라 일상적 관리와 주거환경 개선 등의 중요성도 시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핀란드ㆍ아일랜드 사례처럼 전역자 사후관리 모델을 도입하여 고위험군을 추적 및 관리하고 주기적인 건강 모니터링을 하는 등 특수임무수행자들의 훈련 후유증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보이는 증빙’이 부족한 대상에게 적용할 수 있는 대체 증빙 패키지(동료 인우진술, 미식별 임무ㆍ훈련기록 열람위원회, 의료기록 대체 진술서, 사건ㆍ기간 중심의 확률적 판정 등)를 실천적 도구로 제시한다. 이는 후유증 돌봄 연계의 관문을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정책적 함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특수임무수행자 맞춤형 보훈 심사 기준을 신설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사례자 다수는 “가명으로 치료받아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보훈심사에서 부인정되었다. 이는 현행 보훈심사가 가시적 기록 중심의 심사 체계를 고수함으로써 특수임무 특성을 배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사후기술서, 인우보증, 교육자료 등 정황 증거를 반영한 심사기준, 또는 비가시적 상이등급 제도 도입이 필요할 것이다. 이는 국가책임의 법적 보완과 행정 신뢰 회복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특수임무수행자 지원 제도 설계 및 운영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참여를 제도화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사례자들은 “법안에 우리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가 약속하고 서명만 받았다”는 배제 경험을 통해 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았다. 이는 제도 운영에서 의사결정 구조 내 당사자 부재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향후 특수임무수행자 관련 제도 및 정책을 설계함에 있어 당사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 이는 법의 정당성, 정책의 수용성, 행정의 책임성을 높이는 핵심 수단으로 작용할 것이다. 셋째, 본 연구의 분석 결과에서 나타난 ‘경제적 어려움’ 해소를 위한 실질적인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사례자들은 국가가 약속했던 금전적 보상과 취업이 이행되지 않아 청ㆍ장년기에는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있었고, 노년기에는 의료비 부담과 소득 부재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이에 따라 이들의 생애주기를 고려한 맞춤형 경제적 자립 지원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 구체적으로 이들의 특수한 경험과 역량을 민간 부문의 직무(보안, 위기관리 등)와 연계하는 ‘특화된 직업 훈련 및 맞춤형 취업 연계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고령으로 근로가 어려운 이들에게는 장기복무 군인에 준하는 ‘생활안정연금’ 등의 지급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는 단순한 시혜적 지원을 넘어 국가의 약속 불이행으로 인해 발생한 구조적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책무라 할 수 있다.

이 연구의 한계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연구는 특수임무수행자의 생애경험을 중심으로 함의를 도출하였으나, 보훈 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제도 담당자의 인식과 행위는 분석되지 않았다. 따라서 향후 연구는 국가보훈부 담당 실무자, 정책 입안자 등 제도 구성자 집단에 대한 면담이나 정책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보훈 제도에 대한 구조적 질문의 다층적 해답을 도출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둘째, 연구 참여자의 복무 시기나 부대 경험의 이질성에 비해 삶의 이행 경로나 복귀 유형 간의 차별적 양상을 충분히 비교되지 못하였다. 향후 연구는 시기별, 세대별, 임무유형별 분화된 비교 사례연구를 통해 특수임무수행자의 집단 내 이질성과 계층적 차이를 보다 정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는 한국적 맥락에서의 정책적 과제를 중심으로 논의하였으나, 참전군인에 대한 사후관리체계를 구축해온 핀란드, 아일랜드, 미국 등의 제도 모델에 대한 분석은 이론적 보조선에 그쳤다. 향후 연구는 이들 국가의 회복 기반 모델을 사례자 경험의 구조와 직접 연결하여 비교 연구를 수행한다면, 특수임무수행자 정책의 국제적 설계 가능성 및 제도 수용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본 연구의 발견을 검증 및 확증하기 위해 ‘질적(생애서사)-양적(행정자료 및 설문)-행정 실험’을 연결하는 혼합방법 설계를 제안한다. 이는 ‘보이지 않는 상이’의 정책적 가시화를 높이고, 본 연구가 제시한 ‘은폐-상처-배제’ 경로의 인과 타당성을 향상시키는 데 발판을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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