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226-072X
학문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2025년에도 『보건사회연구』는 다양한 연구들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 학술지는 사회복지와 보건의료는 물론 사회과학 전반을 아우르기 때문에 게재되는 논문의 소재와 대상은 무척 다양하다.
분야의 다양성과 광범위함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의 문제의식은 묘하게 서로 어우러진다. 각자 다양한 춤을 추고 있지만, 미리 약속하지 않아도 마치 보이지 않는 원을 맴돌고 있는 존재들처럼 말이다. 크고 작은 이 원들이 바로 연구자들이 작은 거울들이 되어 비추는 이 세계의 조각들일 것이다.
2025년 게재된 연구 주제 중 가장 도드라진 것은 ‘고립’에 대한 관심이었다.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과정은 사회적이며, 역설적이게도 고립과 외로움조차도 사회적이다. 나아가 사회과학적이기조차 하다. 고립에 대한 탐구는 다양한 대상을 통해 변주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이다. 1인 가구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가장 흔한 가구 형태가 되었지만 그 평범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가구 형태는 다양한 취약성의 원천으로 여겨져 많은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여러 연구들은 1인 가구의 사회적 배제, 우울, 외로움을 탐구하였다. 1인 가구 대상 연구와 그 문제의식과 면에서 상당히 중첩된 것이 바로 청년에 관한 연구였다. 올 한 해 보건사회연구에 게재된 총 98편의 논문 중 청년에 관한 연구는 15편이 넘었다. 이렇게 쏟아져 나온 청년에 관한 연구 중 상당수는 ‘고립’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은둔 고립 청년은 물론, 가족돌봄 청년, 자립준비 청년, 1인가구 청년, 지방거주 청년 등 다양한 상황에 처한 청년들에게 공통적으로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행복과 멀어지게 만드는 대표적인 요인이 바로 고립으로 여겨진 것이다. 올해 『보건사회연구』에 게재된 연구물에서는 한창 세계를 탐색할 생애 초기에 있는 청년들이 고용, 의료, 주거, 정신건강 등 다양한 영역에서 고립되거나 혹은 고립을 자초하게 만드는 상황, 그리고 청년이 갖고 있는 외로움, 불안, 결핍 등에 대한 예민한 문제의식과 예리한 분석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고립은 청년만의 것이 아니다. 1인 가구 비중이 가장 높은 세대는 사실 노인이며, 탈시설화 흐름 속에서 자립적으로 살아가는 장애인 1인 가구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에 고립을 주제로 하는 다양한 대상에 관한 연구들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기우에 불과하지만 누구에게 더 고립과 결핍이 심한가를 겨루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우리 학술지에 실린 연구물들은 고립과 결핍의 복잡한 메커니즘에 천착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논의가 속류화된 세대론의 함정에서 벗어나 연대와 상호돌봄이 이루어지는 사회로 나아가는 데 기여하리라 생각한다.
지역에 대한 관심 역시 작년과는 다른, 올해 『보건사회연구』의 특징 중 하나이다. 지난 여름에 우리 학술지가 주최한 포럼의 주제도 ‘지역 보건복지 인력의 미래’였다. 많은 이들이 고립을 넘어서는 연결의 단위와 계기로 지역을 상상한다. 또한 복지국가라는 틀 속에서 시민의 삶을 직접적으로 책임지는 단위로 지역의 역할을 기대한다. 여러 영역의 사회복지와 보건의료가 연결되고 조정되는 단위로 지역이 부각되고 있으며, 내년에는 지역사회돌봄통합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지역은 더 발전된 민주주의와 사회연대를 실현할 수 있는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 모든 이유 때문에 지역에 주목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연구자들의 예민한 감각은 지역의 역할과 가능성만큼이나 인구감소 시대 지역 간의 벌어지고 있는 격차를 감지하고 이를 보여주는 데 집중하고 있다. 게재된 논문들은 교통, 교육, 보건의료 인력, 의료환경 및 서비스 접근성 등의 지역 간 불균형의 현실과 원인을 보여주었다. 이는 지역 단위의 조정만큼이나, 중앙정부가 수행해야 할 서비스 인프라, 인력, 기술, 재정 등에서의 지역 간 조정 역시 요구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구주제와 대상은 매우 다양했지만 공통된 것은 대안에 대한 지향성을 가진 비판적 분석이다. 『보건사회연구』의 논문들을 살펴보면 소중한 원고를 투고해 준 우리 시대의 사회과학 연구자들은 명시적으로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지는 않지만, 느슨하게나마 연결되어 있는 존재들이란 생각이 든다. 아니면 적어도 외부 세계를 감지하는 특정한 감각이 공통적으로 발달되어 있거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에 나오는 것처럼 동종끼리의 소통을 위한 특별한 물질이 분비되고 있는 존재들일지도 모르겠다. 세계를 인식하는 감각의 연대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감각의 연대가 우리 시대 사회과학자들이 갖고 있는 삶에 대한 관심과 연민, 나아가 세대와 인종을 넘어 더 나은 삶을 가능하게 하는 좋은 사회를 향한 바람에 기반한 것이라 믿기에 나 또한 연결되어 있는 존재의 일원으로 감사함과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기후위기, 고용불안정, 다양한 불평등과 격차 속에서 많은 이들이 고립과 불안, 결핍에 처해 있다. 올해에 이어 앞으로도 우리 학술지에 실린 많은 연구들이 이러한 변화에 맞서 싸우며 더 나은 길을 찾는 데 기여하길 기대해 본다. 연구자들끼리 서로 더 많이 소통하고 연결되기를, 공유하는 기반이 더 두터워지기를, 그 지점에서 『보건사회연구』가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러한 바람들과 함께 2025년 내내 수고를 아끼지 않은 편집위원과 실무진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감사함과 안도감에 오래도록 깊숙이 간직한 소망을 좀 더 꺼내보자면, 가끔은 우리 학문이 황혼에 날아오르는 미네르바의 올빼미이기보다는 새로운 아침을 여는 존재가 되는 것을 상상해 본다. 큰 새가 아닌들 무슨 상관이랴 싶다. 작은 참새이든 기러기이든 각자 자유롭게 날되 거대한 무리가 되어 새로운 해를 향해 나아가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하늘은 넓으니 말이다.
2025. 12. 31.
『보건사회연구』 편집위원회 위원장 주은선 (경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