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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패러다임으로 거대한 후퇴에 대응하자" 작성일 2018/02/07 조회수 10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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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패러다임으로 거대한 후퇴에 대응하자"

(보건복지포럼 2018년 1월호 권두언)


김미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직무대행

 

 

우리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결합된 사회에 살고 있다. 민주주의는 평등을 우선 가치로 두는 반면에 자본주의는 효율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양자 간에는 모순이 발생한다. 복지국가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 체제 경쟁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1870년대 시작된 제2차 산업혁명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한 효율과 평등 간의 갈등을 완화하기 위한 제도이기도하다. 이렇게 출발한 복지국가는 한동안 사회문제를 완화시키고 삶의 질을 향상시킨, 성공적인 사회 실험으로 인정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득세, 뉴 노멀(New Normal), 저출산·고령화,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산업구조 및 노동시장의 변화, 사회적 지속가능성 저하 등의 도전으로 복지국가라는 인류의 이상은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2017) 등의 책 이름처럼 거대한 후퇴(Die große Regression)상태에 직면해 있다.

 

2008년 국제 금융위기는 지성인에게 지난 반세기 동안 지속된 신자유주의의 폐단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였지만, 아직도 승자 독식으로 표상되는 신자유주의는 계속되고 있다. 돌이켜 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세계 경제는 높은 세율을 유지하면서도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하였고,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2014) 등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매우 평등한 분배 상태를 유지하였다. 소위 황금의 시대(golden age)였다. 70년대 석유파동을 기회삼아 복지국가의 위기를 외치면서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낮은 세율로 성장을 도모하고(Laffer curve), 재정적자를 줄이려고 하였으나 결과는 높은 불평등, 낮은 경제성장률, 늘어난 재정적자라는 초라한 실적으로 귀결되고 있다. 하지만 자본은 속성상 이윤율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므로 신자유주의가 지닌 모순의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에는 대안이 도입될 가능성이 낮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는 향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뉴 노멀(New Normal)은 어쩌면 이러한 비정상(abnormal)의 사태가 만들어 낸 결과이다. 이름은 ‘New Normal’이지만 사실 정상(normal)인 것이 없는 상태이다(조순, 2016). 문제는 저성장, 저물가, 저금리, 고부채 등의 특성을 보이고 있는 뉴 노멀에 대처할 방향을 어떤 나라도 아직 확실하게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세계적인 파고와 저출산·고령화 등이 맞물린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20년대 2%대에서 2030년 후반에는 1%대로 진입할 것으로 추정된다. 시한폭탄인 가계부채는 민간 사채 등을 제외하고도 1400조 원을 넘어섰다. 우리나라는 합계출산율 1.3명 미만인 초저출산 현상이 2001년 이후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인구학자 볼프강 루츠(Wolfgang Lutz)저출산의 덫을 설명하면서 출산율은 가임 여성 인구수(인구학적 요인), 청년 세대의 이상 자녀 수(인구학적 요인), 미래 기대소득(경제적 요인)으로 결정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어느 요인도 긍정적이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2000년 고령화사회(노인인구 7%)에 진입한 이후 2017년 노인인구 비율이 14%를 넘어서 고령사회에 진입하였고,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노인인구 20%)로 들어서게 될 전망이다.

 

4차 산업혁명 등 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기도 하지만, 창출하는 일자리보다 더 많은 저숙련 노동자의 일자리를 감소시킬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20161월 개최된 세계경제포럼(WEF)고용의 미래(The Future of Jobs)보고서에서 로봇이 일자리를 대체함으로써 향후 5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약 51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더 나아가, 저명한 미래학자인 토머스 프레이(Thomas Frey)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20억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일자리의 양뿐만 아니라 질에도 영향을 미친다.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으로 노동시장에서는 전통적인 사용자-근로자고용 형태가 아닌 다수의 사용자-무소속 다수 근로자 간의 경쟁[, (gig) 노동자]’ 형태의 플랫폼 노동이 증가한다. 여기에 종사하는 프레카리아트(precariat)들은 대부분 연금·고용·산재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그러므로 근로 시기 삶의 불안정이 노후 빈곤으로 이어지는 ‘2중 차별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복지제도가 제2차 산업혁명의 부작용을 부분적으로 치유하는 데 기여하였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봄옷을 겨울에 입을 수 없듯이, 2차 산업혁명()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태어난 근대적 복지제도로는 4차 산업혁명(겨울)을 맞이하기에 한계가 존재한다. Occupy Wall Street, 헬조선 등이 이를 대변한다. 그러므로 노동시장과 복지제도 간의 부정합성(mismatching)을 바로잡는 것도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그동안 우리는 경제적 지속가능성에 정책의 무게중심을 두었다. 한쪽으로 치우친 압축 성장은 압착 위기로 나타나는 법이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 청년들의 희망 빈곤(3, 5, N, 헬조선), 세계 최고 수준의 노인 자살률 등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의심케 한다. 여유진(2017)의 연구에 의하면, 불평등도(지니계수)와 자살률은 매우 유사한 패턴(상관관계)을 보이는 반면에 지니계수와 출산율은 역행하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 이 연구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함축적으로 시사한다. 간단하게 살펴본 바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은 녹록지 않다.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2000년에서 2020년까지의 저부양비 기간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저부양비 기간에 국가의 핵심 역량을 강화하고, 사회정책에 대한 패러다임을 전환하여 경제적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담보해야 한다. 이를 위한 몇 가지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국정 목표를 성장에서 행복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22위 수준인 반면에 삶의 만족도(행복 수준)는 조사 대상 155개국 중 55(UN, 2017세계행복보고서)이다. 이와 같은 결과는 국정 목표의 우선순위와 무관치 않다. 그러므로 수단(경제)과 목적(행복) 간의 도치 현상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둘째, 교육-경제-일자리-복지가 선순환하는 황금 사각형 모델(Golden Quadrangle Model)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교육/경제/일자리/복지 간의 분절적 접근으로는 복잡한 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 예컨대,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을 양산한 후에 복지로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이윤 주도 성장(Profit-led Growth) 패러다임으로는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교육을 포함하는 통합적 모델이 필요하다. 하지만 경제-일자리-복지만의 관계를 설명하는 황금 삼각형 모델로는 4차 산업혁명 등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 또한 자원이 부족한 우리로서는 인적 자본(human capital) 축적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셋째, ‘복지 수준-부담이라는 2축 사고에서 벗어나 복지 수준-부담-시스템이라는 3축 모델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우리 현실은 저부담-저복지사회이다. 일부에서는 중부담-중복지로 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는 못하는 복지 수준을 감안하면, ‘중부담-중복지로의 이행도 쉽지 않다. 여기서 월급 500만 원을 받아도 살기 힘든 사회보다는 월급 300만 원 받고 여유있는 사회가 더 나은 사회가 아닌가?’ 하는 다소 엉뚱한 발상을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보자. GDP 대비 의료비(2013)의 경우 미국 16.4%, 영국 8.5%, 한국 6.9%이다. 하지만 영국이나 우리나라보다 미국의 의료 만족도가 높지 않고 평균수명도 길지 않다. 만약 우리가 미국의 의료시스템을 따른다면 가계지출이나 복지지출이 GDP 대비 약 9.5%(=16.4-6.9) 더 필요하다. 그러므로 한 사회의 비용을 야기하는 시스템(제도 비용)이 매우 중요하다. 고비용을 야기하는 사교육비, 실손보험 등에 대한 개혁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낮은 복지 수준을 그대로 두자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한편으로 복지 수준을 높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비용 체계를 구축하여야 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저비용 체계-중부담-고복지를 지향하여야 한다. 달리 표현하면 병이 많고 의사가 많은 사회(고부담-고복지 사회)’보다는 병이 적고 적정 의사가 있는 사회를 지향하자는 개념이다.

 

넷째, 포용적 복지(Inclusive Welfare)가 역동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기제를 마련하여야 한다. 김대중 정부에서 생산적 복지를 복지철학으로 제시한 후, 이후 정부들은 참여복지(노무현 정부), 능동적 복지(이명박 정부), 맞춤형 복지(박근혜 정부)를 제시한 바 있다. 이와 같이 복지철학이 바뀐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정부마다 그 정부의 성격과 철학에 부합하는 바른 이름(正名)을 갖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각 정부가 내세웠던 복지철학이 기대한 담론(3의 물결)의 끝자락에 있었거나(생산적 복지), 복지만을 고려함으로써 새로운 담론에 미치지 못한 한계 때문이다. 이는 새롭게 제시된 복지철학이 한국 복지 문제 해결의 단초를 제공하면서 나아가 세계적인 복지 담론을 형성하고 선도할 수 있다면 다음 정부로의 내용적 승계가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점은 포용적 복지를 내세운 정부, 관련 학자에게 주어진 과제이기도 하지만, 몇 가지 긍정적인 측면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포용적 복지가 거대한 후퇴에 대응하는 복지 패러다임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이다. 포용적 복지가 사각지대를 줄이고 낮은 복지 수준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소득 주도 성장(Incomeled Growth)과 맥을 같이하고, 약간 결을 달리하는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과도 맥을 같이한다. 다음으로, 포용적 복지는 사회통합의 핵심 요소라는 점이다. OECD(2011, p. 54)는 사회통합의 요소로 사회적 이동, 사회적 자본, 사회적 포용을 들고 있다. 여기서 포용적 복지는 사회적 포용을 위한 수단이자 결과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포용적 복지는 황금 사각형 모델의 핵심축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포용적 복지의 철학적 함의, 비전, 목표, 추진 전략을 공고히 하여 역동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기제를 마련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참고문헌

여유진. (2017). 한국 복지국가의 현 좌표. 보건복지

ISSUE & FOCUS. 339. p. 1.

조순. (2016). 우리의 뉴 노멀: 그 본질과 처방. 2016

경제학 공동학술대회.

Bauman, Z., Geiselberger, H., Appadurai, A., Porta,

D., Fraser, N., Illouz, E., et al. (2017). The

Great Regression. Wiley.

Helliwell, J. F., Layard, R., & Sachs, J. (2017). World

Happiness Report 2017. New York: Sustainable

Development Solutions Network.

OECD. (2011). Perspectives on Global Development

2012: Social Cohesion in a Shifting

World. Paris: OECD Publishing.

Piketty, T. (2014). Capital in the 21st Century.

Cambridge: Harvard 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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