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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제42권 제2호Vol.42, No.2

editorial

지식과 권력

Knowledge and Power

‘~라 여겨진다’, ‘~라 사료된다’, ‘~라 언급된다’ 등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표현이다.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면 주어가 사라진다. 또한 주장이 마치 일반적인 사실인 것처럼 언급되면서 주체는 왠지 한 발 뒤로 물러서는 느낌이 든다. 결국 수동태 속에 주체가 숨는다. 주체가 사라지면서 주장은 사실에 준하는 것처럼 수용된다. 특정한 주체가 사라지면서 누군가가 말하는 바가 불특정 다수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의심 역시 대부분 거둬들여지곤 한다.

그러나 지식에는 주체가 있다. 지식을 생산하고 유포하는 주체는 자신의 주장을 마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양하며 숨을 수 있을지언정 사라지지는 않는다. 더욱이 그렇게 주체가 숨겨진 채 말해지는 지식은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반복되고, 인용되고, 우리 사고의 틀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치면서 실체로서 힘을 가진다. 나아가 지식은 묻혀지기보다는 인용되고 사고에 영향을 미치고, 주류적 가치에 부합함으로써 그러한 힘을 갖기를 열망하게 된다. 즉, 지식은, 더 정확히는 지식의 주체는 영향력을 갖기를 원하게 된다.

여기에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우리 공동체에서 지식을 생산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러한 지식의 역학에서 벗어나 과연 자유롭고 자율적인 지식인이 되는 것은 가능할 것인가?

지식 행위는 권력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많은 지식들이 사실상 지배적 인식을 재생산해내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지식 행위는 개념을 사용하여 의미를 생성하며, 문제를 설정하고, 목표를 만들며, 의미를 사회적으로 생산 혹은 재생산하는 실천 과정에 다름 아니다. 지식이 지식행위라는 실천과정으로 존재하므로 누가 왜 그러한 실천을 하는가, 그러한 실천의 효과는 무엇인가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한 문제이다. 의식되지 않은 지식행위를 통해 지식인들은 ‘지배’의 전제인 다양한 개념들의 포섭과 배제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지식행위를 통해 주체와 객체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그렇다면 지식행위가 ‘지배’의 전제인 거대한 순응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회정책 연구자에게 지식 행위는 사회문제를 발견하거나 규정해내며, 문제 해결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필요(social needs)는 무엇이며, 사회정책적 개입의 주체와 객체는 어떻게 규정될 수 있는가 등에 대한 여러 전제들이 구성되고 작동한다. 특히 기존의 필요를 개념화하는 방식은 특정한 형태로 방향이 지어져 있고 특정한 영역을 배제하고 있을 수 있다. 또한 기존의 실천은 실천의 대상과 자원을 제공하는 자를 분리시키는 것이었고, 사회정책적 개입은 재생산부문에 국한된 것으로 여겨졌다.

더욱이 연구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가치중립적이며 탈이데올로기적이라고 여겨지지만 그렇지 않다. 일례로 몇몇 연구는 사회서비스가 추구하는 사회정의라는 가치와 무관하게 사회서비스 관련 연구들이 개인주의적이고 낙인화하는 언어를 선택하고 개념화하고 있으며(Vojak, 2009), 사회정의라는 용어를 회피하고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Hawkins et al., 2001).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수행하는 학문에서 개념과 의미를 재검토하고 전환을 이루어내는 작업, 새로운 지식체계를 구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실천과 정책의 구분, 지식행위의 전제, 지배 이데올로기와의 관계를 다시 묻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현재의 권력체계 속에서 기존의 학문이 어떠한 기능을 수행해 왔는지를 묻고, 학문이 담론으로서 지식체계로서 수행해 온 역할을 어떻게 상대화시키고 벗어날 것인가를 묻는 작업이기도 하다. 학문이 이렇게 개념적 재검토를 통해 새롭게 구성되는 것은 새로운 사회적 필요에 부응하여 학문이 현장에서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학문이 고인 물속에서 부패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새로운 학문적 실천을 말할 수는 있지만, 새로운 시대는 쉽게 오지 않는 듯하다. 기존과는 다른 것이 필요하지만 새로운 것이 아직 오지 않은 지금은, 새로운 실천을 하는 이들 없이 그저 기다리는 것만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대하건대 아마도 기존 권력체계로부터 자유로운 지식체계에 대한 모색과 새로운 지식행위는 어디선가 시작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의심 어린 눈빛과 거부의 몸짓에 의해 이미 균열은 시작되고 있을 수 있다. 새로운 사회정책에 대한 지식체계는 사회적 필요와 실천에 대해 기존의 구분법을 넘어서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주체와 객체의 기존의 구분법, 기존 사회정책학 체계의 구분법을 넘어서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라는 면에서 더 대담해질 필요가 있겠다. 편집위원으로서 『보건사회연구』에 실리는 연구들을 통해 새로운 지식체계와 지식행위를 추구하는 데 실마리를 찾길 기대해 본다.

의심받지 않는 지식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의 대상이다. 지식이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사실상 순응을 유포할 수 있다는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누구나 내가 생산해내는 지식이 의심받지 않는 진리의 언저리에 있게 되는 것을 동경한다. 하지만 지식의 권력에 대한 본래적 연계는, 사회과학연구자로서 내가 생산해내는 지식이 누구를 위해 어떻게 사용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긴장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는 특히 지식행위와 사회적 실천의 역동이 도드라진 사회정책연구자에게는 서릿발 같은 칼날 위에 서 있는 긴장감이 필요한 이유이다.

지식에는 주체가 있고, 주체에게는 책임이 따른다. 그 책임의 무게 속에서 자유로운 날갯짓을 시도하는 것이 지식을 생산하고 유포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딜레마가 아닐까 싶다. 사회경제적 위기가 거론되고, 미래가 불투명한 지금은 적어도 마냥 자유롭기보다는 그러한 무게를 느껴야 하는 시대이다.

References

1 

Vojak Colleen. (2009). Choosing Language: Social Service Framing and Social Justice. The British Journal of Social Work, 39(5), 936-949, July 2009.

2 

Hawkins L., Fook J., Ryan M.. (2001). ‘Social workers’ use of the language of social justice. British Journal of Social Work, 31(1), 1-13.



Health and
Social Welfare 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