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226-072X
인구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천만 노인 시대 진입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고령자의 노동시장 참여 기간을 연장하기 위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고령자의 노동시장 참여 기간 연장은 장기적으로 생산인구 감소 시대의 노동력 부족으로 인한 경제성장 저하를 완화하고, 노인부양비 증가로 인한 정부의 재정지출 부담을 줄이면서, 안정적인 소득 확보를 통해 고령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정책 대안으로 제시된다. 다만, 한국의 고령자는 이미 서구 복지국가에 비해 더 늦은 시기까지 더 많은 시간 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령자의 노동시장 참여를 어떤 방식으로, 어느 수준까지 확대해야 하는지는 답을 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다.
고령자의 노동시장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한 정부 정책의 중심에는 생애 주된 일자리의 고용기간 연장이 위치한다. 주된 일자리는 고령자가 살면서 가장 오랜 기간 숙련을 축적해 온 일자리이고, 노동시장에서 안정적인 소득을 확보할 수 있는 일자리이다. 주된 일자리의 고용기간 연장은 우리 사회가 보유하고 있는 고령자의 인적자본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된다. 인구구조에서 고령자 비중이 늘어나는 추이를 고려하면, 고령 인력의 활용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고령자 개인 측면에서도 주된 일자리에서 오래 일할수록 노년기 빈곤에 처할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따라서 주된 일자리 퇴직 이후 재취업을 통한 고령자 노동참여 확대에 앞서 주된 일자리의 고용기간 연장을 우선하는 것은 정책적으로 의미가 있다.
정부는 생애 주된 일자리의 고용기간 연장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관계부처 합동, 2023). 2016~2017년 60세 이상 정년의무화 법안을 단계적으로 시행하였고, 2020년에는 중소·중견기업의 정년퇴직자 계속고용을 지원하기 위한 보조금을 도입하였다. 고령 근로자 고용연장으로 인한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임금체계 개편을 지원하고, 신체 능력 저하와 같은 고령기 특성을 고려한 일터 환경 개선, 다양한 근로 형태 확산 등의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관련하여, 고령 근로자의 주된 일자리 퇴직 연령이 상향되는 변화가 관측된다.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를 보면, 40세 이후에 상용직 임금근로 일자리에서 퇴직한 연령이 2014년 51.9세에서 2023년 53.1세로 높아졌고(이승호 외, 2023), 고용보험 DB로 확인되는 40세 이상 근로자의 주된 일자리 퇴직 연령도 2016년 52.5세에서 2020년 54.5세로 증가 추이를 보이고 있다(김은석 외, 2021). 여전히 법정 최소 정년인 60세에 미치지 못하지만, 정부 정책이 시행된 이후로 고령 근로자의 생애 주된 일자리 퇴직 시점이 상향 조정되고 있음은 분명하다.2)
그러나 생애 주된 일자리의 고용기간 연장 정책만으로는 인구구조 변화 대응에 필요한 수준의 고령자 노동시장 참여를 달성하기 어렵다. 가장 큰 이유는 정책의 대상이 되는 집단이 일부 고령 근로자로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중소·중견기업 보조금 지원,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는 재고용제도 확대 및 정년연장 정책은 모두 정년제도를 운영하는 기업에서 정규직 일자리를 정년까지 유지한 고령자를 주된 대상으로 삼는다. 패널조사로 정년 전후 고령자의 노동시장 이행 궤적을 유형화한 연구에서는 정년까지 정규직 일자리를 유지하는 고령자 비중이 대략 14.5%에 그친다고 보고하였다(이승호 외, 2023). 4차 산업혁명과 노동시장 구조 변화 등으로 고령자의 은퇴경로가 다변화되는 추이를 고려하면, 주된 일자리 정책에 포함되는 고령자 비중은 더 감소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책의 수혜 대상이 고령자 내 일부 집단으로 한정된 조건에서는 정책이 고령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주된 일자리를 정년까지 유지한 집단은 고령자 내에서도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편에 속하고, 주된 일자리에서 정년 전에 이직했거나, 경력단절 후에 노동시장에 재진입한 집단 등 노동시장에서 더 취약한 고령자가 정책의 직접적인 수혜 대상에서 제외되는 문제가 있다. 상대적으로 노년기 빈곤에 진입할 위험이 높은 집단이 제외되면, 정부의 사회복지 지출 부담을 줄이고, 고령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목표는 달성할 수 없으며, 정책의 형평성 차원에서도 주된 일자리 고용연장 정책의 사각지대에 위치한 고령자의 재취업 지원을 정책 패키지 형태로 같이 설계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재취업지원서비스 정책의 의무화 대상 범위를 확대하고, 고령자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서비스를 개발·지원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정책 대상의 제약, 취약 집단의 배제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수준의 노인 빈곤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생애 주된 일자리의 고용기간 연장은 불가피하다. 공적연금의 수급연령이 상향 조정되는 변화를 고려하면, 정년퇴직 이후 노령연금 수급 사이의 간격은 현재 3년에서 2033년에는 5년까지 연장될 전망이다.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고령자는 이직할 때마다 상당한 수준의 임금 감소에 직면하는데, 정년퇴직과 노령연금 사이의 간격이 벌어질수록 정년퇴직자는 생계 유지를 위해 더 많은 일자리를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임금이 지속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정년을 둘러싼 주요 이해관계자의 입장 차이가 크고, 단기간 내 추가적인 정년 조정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단기적으로는 의무 재고용제도와 같은 중간 단계의 제도가 도움이 될 수 있다. 기업은 정년 연장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숙련 노동력을 활용하고, 근로자는 정년퇴직이나 재취업에 비해 안정적인 노동소득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생애 주된 일자리 고용기간 조정의 간접적인 효과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령자 노동궤적 분석에서는 정년제 적용 대상이 아닌 비정규직 고령자 집단에서도 60세 시점에 노동시장에서 은퇴하는 경로가 관측되었다(이승호 외, 2023). 법정 정년이 고령 노동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영향을 미쳤거나, 정년퇴직한 고령자가 재취업을 위해 이차 노동시장에 진입하면서 상대적으로 취업역량이 낮은 기존의 고령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원인이 어느 쪽이든 주된 일자리의 고용기간 연장은 사각지대 고령자에게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에 대한 실증분석이 요구된다.
근로조건이 나은 주된 일자리의 고용기간 연장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크지만, 이를 통해서 정년퇴직과 노령연금 수급 사이의 제도적 소득단절에 대응하고, 고령자의 노동시장 참여를 활성화하기에는 정책 대상이 충분하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상대적으로 빈곤 위험이 높은 고령자가 정책 수혜 대상에서 배제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애 주된 일자리의 고용기간 연장을 지속 추진하되, 정년까지 주된 일자리를 유지하는 고령자 비중을 높이고, 노동시장 취약집단에 위치한 고령자의 고용안정을 높이는 정책이 같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